코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지만, 굳이 구분해 본다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과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코칭을 시작하려면 대상자가 적어도 변화의 동기가 있어야 하고, 변화 동기는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변화가 필요 없다는 사람을 설득해서 코칭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가정은 실존주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실존주의의 기본 가정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것으로, 사람은 물건과 같은 완성체가 아닌 미완의 존재이기에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 개인은 삶의 주인이기에 변화의 방향과 성장의 정도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가정한다.
실존주의의 반대말은 바로 본질주의이다. 플라톤에게서 시작되는 서양의 철학의 역사는 바로 본질을 탐구하려는 역사였다. 본질은 존재하는 것들의 원인이자 목적으로, 이러한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 사조가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질은 규범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에 본질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예술가들은 자기의 개성을 마음껏 펼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예술의 본질을 구현하는 그런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살아야 한다. 인간에게 본질이 있다면 신이 부여한 운명이나 사회의 보편적 이념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기에 자신의 개성을 억눌러야 한다.
이러한 보편주의에 저항하고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실존주의이다. 우리는 동일한 재능, 동일한 능력, 동일한 취향, 동일한 조건들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모두 다르고, 각기 다양한 개성들과 능력과 취향과 조건과 여건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삶의 방식도, 미래에 대한 꿈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사람들을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격 안에 집어넣고 보편적인 이념을 따르라고 주장한다면 자유가 억압되고 말 것이다. 내가 원하는 자기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어떤 규격 안에 나를 집어넣고 남들과 똑같은 취향과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과거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드물지 않은 풍경이라 하겠다. 이러한 체계 안에서 개인은 주제적인 개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맹목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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