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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은 위궤양에 걸리지 않는다.

by 김명희

얼마 전 TV에서 현직 대통령이 포커페이스를 하며 "갈등은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싸움이든 협상이든 이기는 사람들은 이성을 잃지 않는다.


영화에서 조폭이 싸우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능숙한 싸움꾼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두려움에 떨며 헛스윙을 하며 넘어지거나 얼어붙어 도망치는 사람들 대부분 초보 싸움꾼이다. 능숙한 싸움꾼은 아무리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도 침착함을 유지한다.


왜 우리는 갈등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가?


우리가 갈등에 보다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amygdala)라는 영역이 있는데, 아몬드 모양의 이 작은 구조물은 뇌의 감정 중추이자 위협 탐지기 역할을 한다. 일종의 '감정의 경보기'인 셈이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공격적으로 말하거나, 내 아이디어를 무시하거나, 나를 모욕한다면 의식이 개입할 틈도 없이 편도체가 즉각적으로 활성화된다.


이는 진화의 관점에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뇌가 기능하도록 설계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바나에서 사자를 마주쳤을 때, 편도체의 빠른 반응은 생사를 가른다. 편도체는 시상(thalamus)에서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받아 단 12밀리 초 만에 반응한다. 의식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이 정보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절반도 안 된다.


문제는 편도체가 21세기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석기시대 초원에서 포식자를 보았을 때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사의 날카로운 비판이든 사자의 포효든, 편도체에게는 똑같은 생존의 위협일 뿐이다.


만일 상사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제안 한 아이디어에 대해 비난과 무시를 섞어서 피드백을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마치 존재 자체가 거부당하고 무시당한 기분에 분노와 당황스러움에 휩싸일 것이다. 심장은 격렬하게 뛰고, 손에는 땀이 난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목구멍이 조이는 느낌이 든다. 화가 치밀어 올라 상사를 한대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fight or flight)' 모드로 전환되는 편도체 하이제킹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택이 아니라 자동적인 신경생리학적 반응의 결과다. 편도체 하이제킹이 일어나면 감정이 뇌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이성적 사고의 중추를 무력화시킨다. 부신에서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대량으로 분비된다. 심장박동수가 분당 20-30회 증가하고, 혈압이 올라가며, 혈당이 치솟는다. 동공이 확장되고, 근육이 긴장하며, 소화 기능이 억제된다. 심지어 말초 혈관이 수축해서 손발이 차가워진다. 이 모든 반응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즉각적인 신체 행동 - 도망치거나 싸우는 것.


하지만 주먹을 날렸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에 이를 꽉 물고 참는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뇌의 영역이 바로 전전두엽 피질이다. 폭발로 인해 쇠막대기가 왼쪽 뺨을 뚫고 머리 위로 튀어나간 사고를 당한 피어니스 게이지의 사건을 통해 복내 측 전전두엽 피질이 충동조절과 사회적인 행동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문제는 억눌린 채로 갈 곳을 잃은 에너지들이 몸속에 갇혀서 맴돈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다음에 벌어진다. 회의가 끝난 후 집에 가서도, 저녁을 먹으면서도,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 순간을 되새긴다. "내가 뭘 잘못했지?" "팀장이 나를 싫어하나?" "내일 팀장을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하지?" "이번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동료들이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다음 인사 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창피해서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다니나?"


며칠이 지나도 그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며 상사를 마주하는 것도, 팀원들을 마주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머리가 뿌옇게 변한 느낌에 생각도 잘 안 나지만, 또다시 무시를 당할까 두려워 제안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


갈등이 아닌 갈등에 대한 생각이 우리 몸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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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조직의 탁월함을 일깨우는 코치로 인피니티코칭 대표이자 고려대 노동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일대일 코칭 외에 갈등 지능, 1 on 1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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