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황금기를 뽑으라면 당연히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찬란하게 기억되는 시간이 있다면 독일 뮌헨에서 홀로 유학을 하던 시절이다.
과거의 기억은 종종 미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당시에도 행복감을 많이 느꼈고 독일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것으로 미루어 실제로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 독일은 개인주의가 강하고 날씨도 춥고 안개도 많아서 외로움이나 우울감에 빠지기 쉬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만났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스몰톡 주제가 날씨였고, 날씨와 기분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도 관심을 가질 만큼 특히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뮌헨에서의 시간이 외로움보다는 충만감으로 가득 가득찼던 이유는 아마도 문화예술을 언제든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나 싶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발레, 음악회 등의 연간 스케줄표가 여행 브로셔처럼 한 곳에 상시 배치되어 마음이 내키거나 시간이 되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었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려한 티켓 정책으로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미술관은 시간 구애 없이 불쑥 찾아가 마음과 정신을 차분하게 할 수 있는 편안한 휴식처였다.
공연이나 미술이 정신적 건강과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라면 마음껏 자유로운 상상에 빠져들 수 있었고, 현실적으로는 표현거나 충족하지 못하는 극적인 감정에 젖어들며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랑의 황홀경에 빠지다가 사랑이 이루어져 극도의 행복함을 경험하거나 인생을 바쳐 사랑했지만 상대의 배신으로 슬픔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결심하는 주인공들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 마치 내가 그런 경험을 직접 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충족하기 어려운 수준의 감정 강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미술의 경우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에 한계나 경계가 없고, 흰 캠버스 위에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서 안전하게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정치적, 제도적, 관념적 틀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가능해 무한한 정신적 자유를 선사해 주었던 것 같다. 그것을 담아낼 정신적인 그릇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꼭 직접적인 경험을 해야만 정신적인 충족이 일어나는 건 아닌 것 같다. 간접적이었지만 나는 예술을 통해 감정과 상상력의 전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었고, 불만족이나 불충족의 여지를 남겨놓을 수가 없었다. 정신적으로 나를 구속하는 것도 없었고, 해소하지 못하는 정신적 찌꺼기도 없었기에 건강하고 충만한 홀로서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더블어 다양한 생각에 대한 수용성이 키워져 편견을 내려놓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왠지 문화예술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편견 없는 자유로운 사고, 건강한 정신, 다양한 감정의 경험을 통한 공감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을 것 같은 느낌이다.(한번 검색해보려 한다)
긴 시간을 한국에 덜라와 머물며 느끼는 아쉬음이라면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만이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의 티켓 가격이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한 여러 미술시장에 대한 소식이다.
예술이 얘술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예술가 뿐만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도 보다 주체적인 태도로 예술을 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