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근육을 단련시키는 실패의 힘

by 김명희

이번에 중1 올라가는 둘째 아이가 한국정보올림피아드 본선에서 최종적으로 중등부 금상을 수상했다.


간절히 기대했던 결과라 당연히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껏 경험했던 시행착오와 실패의 시간들이 모두 오늘을 위한 것처럼 느껴져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것은 초1 겨울방학 때였다. 타자로 배우라고 보낸 2주간의 컴퓨터교실이 아이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학교에서 진행한 컴퓨터교실에서는 타자 뿐만 아니라 블록코딩도 가르쳤던 듯 한데, 아이는 자신의 생각대로 코드를 짜서 동영상 형태로 움직임을 구현시킬 수 있는 코딩이 마음에 확 다가왔나보다. 8살짜리 아이가 코드를 짠다고 밤을 새우더니 간단한 게임같은 것도 만드는 것이다. 그때부터 아이는 놀이 대신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육아 초보이고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 경험이 전부였던터라 신기한 마음에 아이의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우연히" 그 영상을 본 미국의 공대 교수님께서 아이에게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제대로 가르쳐보라고 조언하신다. 빈말이었을 수 있지만, 모든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천재라는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기에 별볼일 없는 재능이었음에도 어떻게든 개발시켜 보겠다고 바로 코딩학원을 등록했다. 당시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비싸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동내 코딩학원 중 비싼 곳을 선택해서 등록했다.(결론은 아니었음)


그 학원에서 1년을 배우다가 뭔가 방향성이 결여된 느낌이 들어 체인으로 운영되는 코딩학원으로 옯겼다. 학원에서 대회 정보를 열심히 알려주셔서 이때부터 경시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학원에서는 아이가 코딩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아쉽게도 참여하는 대회마다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실패를 대단한 사건으로 여길까 우려되어 그냥 아무 일 아닌 듯 무심히 행동했다. 그리고 아이의 도전과 장점을 칭찬해 주고, 대회 참여 자체가 즐거운 이벤트로 느끼게 배려해 주었다.


"너는 도전하는 아이야. 그건 정말 대단한 태도야. 너 나이 또래에 너처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는 아마 없을 거야.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2022년 6월. 교대에서 개최된 SW 경진대회. 무척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이때도 수상 못함)


이렇게 성과 없이 학원과 대회 출전을 이어가던 중 "우연히" 설명회 문자를 보게 되었다. 평소 광고성 문자를 확인 안 하지만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설명회 참여 신청을 했다.


그 설명회를 통해서 알고리즘의 개념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혹시 아이가 알고리즘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아이가 분명 코딩에 재능이 있는데도 수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참여한 대회들이 창의성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창의성은 아이의 장점이 아닐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해서 설명회를 주관한 학원으로 옮겨서 알고리즘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는 알고리즘 수업이 재미있다며 제법 잘 따라갔다.


물론 이 과정도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성취감은 느꼈지만, 그때마다 하위 수준에서 다시 올라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니 아이가 많이 힘들어 했다. 그 이전까지는 공부는 너무 쉬웠고 노력하지 않아도 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하위그룹에 속할 수 있고, 공부가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정체성에 큰 혼란이 온 것 같았다.


"내가 못할 수 있다는 점, 잘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알고리즘 분야에서도 실패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 두려웠는지 대회 직전에 아이는 자포자기하는 듯 학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하고, 학교에 안 간다고 드러 누어 무단결석을 하기도 했다. 학원에 안 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선생님과 학원 직원분들이 모두 나와서 설득하며 데려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표를 내지 않았을 뿐 대회에 출전하여 반복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큰 상처이자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실패가 두렵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우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해서 계속 나아가게 격려했다.


다행히 알고리즘을 배우고 6개월 만에 응시한 정보올림피아드에서 1차 동상, 2차 장려상을 수상하며 대회 참여 이후 처음으로 수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작은 수상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첫 수상이기에 어마어마한 사건이자 보상이었던 것 같다.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잘하게 된다"를 깨닫게 된 아이는 이후부터 겁없이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음 해에 초등부 전체 9위로 은상을 수상했고, 그다음 해인 올해는 중등부 전체에서 5위로 금상을 수상했다.


오랜 실패의 과정을 통해 아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일까?


지금은 잘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의 실력은 단지 과정일 뿐 최종 목적지도 아니고 나 자신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엄마로서 잘한 점은 실패의 상황에서 아이의 진짜 재능을 찾았고, 아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준 점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다면 설령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행복한 시간, 도전하는 시간, 성장하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지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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