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 아름다운 시절
열정이 숨 쉬는 시점의 활기와 언어들은 공기 중의 대류순환처럼 나머지 인생을 따뜻하게 덥히고 그 이유를 풍성하게 만든다. 자신이 만든 마네킹들의 표정을 묘사하고 각각의 위치를 배정하여 사건의 동작과 내용을 만들어낸 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 그는 순간을 기록하고 한 시절을 간직하는 인간의 동기에 의문을 표한 작가이다. 생명이 없는 곳에서 탄생의 의미를 엮어냄으로써 새 생명을 불어넣는 설치는 주로 청소년기에 집중되었는데, 그는 그 시절이 불안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에게서 사진의 역할은 곧, 유년의 시간을 낚는 한 통의 마법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게 아닐까? 세트설치가이자 마네킹제작자,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미술작가가 되어 자신의 내면을 그려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베르나르 포콩을 알게 된 것은 여름방학 시리즈부터. 그리고 발견한 사실은 아주 간단한 것인데, 청춘은 사람마다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흰 빛이라는 것이었다. 결국엔 조작된 현실일 뿐이지만 그의 내면의 거울에서 나를 목격하고는 당황스러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사람들은 소중한 순간에는 그 의미를 보지 않는다. 현재에 몰두할 뿐이다. 화려한 선율을 가린 이중의 덮개를 열고 제(諸) 의미를 파고드는 것은 번잡하고 수고스러운 일일 수 있다. 객관과 주관은 가상과 현실이라는 조작과 실천의 경계에서 선택을 요구하고 폐기를 강요한다. 결정적 순간을 드러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나르시시즘을 강타했던 반면, 로버트 프랭크 (Robert Frank)는 결정적 순간과 결정적 순간들에 걸쳐져 있는 낱장의 사건들로 수많은 관람자들의 인생을 돌이켰다. 나는 갓 잡은 생선 같은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에 좀 더 많은 흥미를 느끼고 생각을 얻어왔지만, 그것 또한 보는 이의 주관적인 반응과 태도를 반영해 온 것이라는 점에 약간 혼동을 느껴왔다. 나를 지배하는 시절의 추억은 머릿속 환영이 불러낸 가상세트를 사실감 있게 만들 변형된 놀이 재료일 수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미장센은 시점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 베르나르는 행복한 청춘의 기억을 더 이상 찍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청춘기를 맞은 각국 청소년들에게 일회용 사진기를 제공하여 사진을 회수하고,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취사하여 구성하는데 작업의 초점을 돌렸다. 이것도 작가의 손에 길들여진 청춘의 한 소절이 아닐까? 주제를 선정하는 손에 의해서 26번째 얼굴이 된 한국의 청춘들, 스스로 그 프로젝트를 실현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누가 인형이고 누가 작가일까? 인간의 말은 신을 대신한 텍스트이고 형상은 신의 행로를 대신 걷는 인형인 것이며 정신이란 신의 의지가 갈래 퍼진 한낱 불꽃이 아닐지 프레임 속의 그림에 생각을 띄워 보낸다.
2005. 10. 1. SATURDAY
작가들의 시선과 동일하게 망원경을 댄 듯이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벗어나서 스스로 육안으로 드러난 세계를 바라보는 경험은 바로 어느 날의 자신으로 회귀하는 한 덩어리의 감각을 소환한다. 인간의 경험은 한참을 돌아서 보면 앞을 향해 달리면서도 시선은 과거로 향하고 있다. 과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이전의 기억이 유쾌하지 않은 나는 언어적인 습관이나 생각의 구조가 회의적인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고, 그에 대한 감상은 씁쓸한 미소나 비유쾌한 동조, 혹은 무심한 회상으로 돌아서곤 한다.
순간을 천착하는 작가들은 경험의 자국들을 적어 내리며 시간의 흐름에 감정과 기분이라는 잉여의 에너지를 쏟게 된다. 마네킹의 모습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자아이자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며 소꿉놀이 하던 어린 시절을 투영한다.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피사체들의 모임은 동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비해서 <델리카트슨 사람들 Delicatessen>의 비성숙한 미래의 디스토피아로 곧장 직행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멀리 있지 않다. 있고 없음의 부재적(不在的) 재료인 사진과 찰나적 순간의 사라짐 속에서 덩그러니 남겨진 정지된 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모두가 멈춰있을 때 혼자만 움직이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에서 내버려진 듯한 이질감에 문득 내버려진 빛들이 한 곳에 쏟아져내리는 환각이 밀려온다. 굳어진 심장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인간이 추구하는 노스탤지어는 각자의 시간에서 다른 온도의 맥박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