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ORS, Opens all Doors to reincarnation] PHOTOSHOP. PHOTO COLLAGE DESIGNED by CHRIS
운명의 여신이여 세계의 왕비여
그대는 달처럼 변하는구나
끊임없이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되풀이하는 그대
혐오스러운 인생을 억압했다가 다시 위로해 주네
달은 찼다가 다시 기우는 법
성공과 실패도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구나
[운명의 여신이여 in Carmina Burana]
달과 묶었다 풀기를 반복했던 날들. 이젠 달을 보며 점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달은 연인의 얼굴. 짝으로 점찍은 지는 오래됐다. 그리움 투성이가 오늘은 하늘을 보지 않았다. 아침에는 수레를 돌려야 하는데 위로도 싫다. 일찍 잠을 자려다 신경이 쓰이는지 머리가 지끈해서 커피에다 약을 타 마셨다. 몸이 후덥지근해서 이불을 차고 천장을 응시했다. 짐 모리슨, 그가 보고 싶다.
2005. 1. 26. WEDNESDAY
Opening all the doors to reincarnation
환생을 위한 모든 문을 열면서
마니아들이 들으면 우습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은 거의 영화나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웅장하고 운명적이며 성음이 높은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조차 영화 <도어즈 The Doors 1991>를 보며 알게 되었다. 바람 같던 인디언의 시선. 영화를 본 한참 뒤 TV 광고 음악으로 사용된 [운명의 여신이여]. 음악을 들으며 코믹하게 느껴진 건 단순히 ‘광고’였기 때문이었는데, "이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운명이다", 정말 잊지 못할 진부한 발언이었다. 달과 바람처럼 잡지 못할 역한 운명에 바쳐질 노래가 상품에 적용되다니 실소가 절로 나왔다.
물론 영화 <도어즈 The Doors> 또한 석연치 않았다. 한 인물의 생을 사실대로 전달했지만 내공이 부족했다. 발 킬머(Val Kilmer)의 카리스마와 악명은 높아졌어도 욕된 삶을 내뱉는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한탄을 전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이 굴리던 바퀴는 달의 눈동자에 반한 짐의 광기를 풀어내기엔 어딘가 나사가 빠졌다. 영화를 보며 실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를 다뤄준 것만으로도 비판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짐은 몸이 더웠던 걸까? 중학교 시절, 컬컬하고 시적인 목소리보다는 탄탄한 반라사진에 먼저 반했었다. 기호학적으로 역삼각형의 우락부락한 몸매는 관심 없지만 암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불분명한 경계심에 매혹을 느꼈다. 남녀를 섞은 물 단지. 간혹 남성이면서도 여성의 냄새를 풍기는 음악가가 종종 있는데 모리슨 역시 그랬다. 그는 도어즈를 이끌면서 어떤 문을 열고 싶었던 것일까? 삶과 죽음이란 백지장을 가로지른 문을 보고 싶었던 것인가? 엿 같은 세상에서 Reincarnation? 그렇게 울면 안 됐는데...
허탈하게 부푼 물 풍선에서 물이 빠져간다. 연옥성(煉獄城)에서의 우정, 일, 사랑, 음악. 짐을 둘러싼 암흑의 계곡에는 타인과의 깊이의 차이가 드러났다. 친구도, 애인도, 팬들도, 제작자도 그의 주변인들은 어리석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체하는 사람들은 정상이던가? 분열하는 넌 너무 현실적이지 않는가? 파란 거짓말.
스쳐간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린다.
붉게 타버린 영혼에 홀린 춤 바람.
먼지를 일으키고 다시 돌아서
너를 마중하러 올 거야.
바지춤을 올리고 슈트케이스를 들던 날,
불시에 찾아오겠지만.
"진정한 시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가능성들을 나열한다. 모든 문을 열어주고, 당신은 그중 마음에 드는 문을 선택해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내 시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느끼는 제한된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이다." <짐 모리슨>
"Real poetry doesn't say anything, it just ticks off the possibilities. Opens all doors you can walk through any one that suits you. If my poetry aims to achieve anything, It's to deliver people from the limited ways in which they see and feel." Jim Morrison said of himself.
2005. 1. 27. THURSDAY
"파주에 음악만 듣는 곳이 있어. 물만 주고 말없이 음악만 세네 시간 듣는 거야. 주인장이 의사 선생님인데 취미로 최신 사운드 기기와 고가 스피커를 사다 모아서 열었나 봐. 통유리 건물에 풍경도 탁 트여 있더라. 음악 들으면서 힐링했지. 저번에 다녀왔는데 관심 있어?"
지금은 락을 듣거나 시끄럽고 리드미컬한 음악에 심취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리 멋진 음악도 갇힌 공간에서 듣는 것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한창땐 홍대에서 애들 따라 클럽을 전전하며 스탠딩 음악도 들었는데 번잡한 분위기는 취향이 아니었다. 음악을 들어보겠냐는 제안만 솔깃했고 음악을 들으러 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시간을 계산하는 것을 보니 그다지 관심이 없나 보다. 생활형 탈출 모델을 제작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음은 분명하다.
"예전에는 실패하는 것에도 관대했는데, 이젠 실패할 거 생각하면 아찔해. 넌 어떻게 계속하는 거야."
"실패해야 인생이지. 성공만 하면 뭔 재미냐. 그냥 다 던졌어. 나도 모르겠다. 빈털터리 되면 미련 없이 새로 할 거야."
예전의 기록을 보면 현재와 분리된 자아가 보인다. 시간이 흐르다가 어느 순간 나의 한 순간과 부합되는 내가 등장할 수 있겠지만, 과거의 감정은 알겠어도 그때의 생각과 기분, 그 모든 것이 공감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 선상에서 스스로 변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하나의 기록적인 증거가 된다. 가끔 시간이 흐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이전과 동일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할 말이 없다.
"너 이거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게 언제 적 이야기냐고. 인간의 심성은 변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고집스럽게 하나만 고수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만의 요새를 짓고 있는 인간들도 말을 나눠보면 변화를 꿈꾸나 탈출할 방법을 모르고 있어 답답한 것이다. 나에게 변치 않는 것은 신랄한 말발과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삶의 진행 정도일 것이다. 다만 머리가 복잡해선가 심사가 꼬인 것인지 말하기가 귀찮아졌다. 고급스럽고 조리 있게 말을 해서 뭔 이득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가볍게 던지는 말에 심각하게 대답하면 그것도 모양새가 안나는 것이다. 엉뚱하고 퉁명한 회답만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적인 대화법이다.
"도대체 뭔 생각이야?"
통속적인 오락물과 대중문화를 혐오했던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와 다르게 나는 일부는 좋아하고 일부는 그저 그렇다. 취향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공중 매체에 대한 관심을 끊으면 된다. 헉슬리가 살았던 한 세기 이전의 삶을 비교해 본다면 그 통속적인 취향에 있어 굉장히 과격해진 지금의 대중문화를 대조했을 때 기호의 취향에선 헉슬리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 있어 대상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있으면 기호가 사라진 것이고, 한 곳에 매몰되어 있으면 굉장한 관심이 생긴 것이다.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비판은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됐고, 필요할 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긴 했다. 간혹 수십 년 전의 기록들 속에서 현재와 비슷한 말들도 있고, 사라진 말들도 있고, 달라진 말들도 있고, 잊힌 말들도 있다.
짐 모리슨이 "도어즈 The Doors"의 이름을 헉슬리의 작품인 《인식의 문 | 지각의 문 The Doors of Perception 1954》에서 차용한 사실을 알고 얼마나 유쾌하던지 한참을 웃었다. 역시 센스 있는 사람들은 짓궂다니까. 정신적으로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들러붙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원조 환각(Proto-Pshychedelic)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전개했던 올더스 헉슬리는 지성적인 인식자로서는 예외성을 가지는 다양한 약물의 사이키델릭 한 경험과 혼성의 성적교류를 즐겼다. 누구나 엇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보통 대중적으로 권위가 생기거나 지성적인 힘이 생기면 그 찬란함에 불나방처럼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심적으로 시니컬해지면서 도덕적인 형태가 어그러질 땐 모든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나른한 권태, 타자에 대한 불성실한 오만, 강렬한 실험정신이 결합되면서 인식의 전환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짙은 환각 중에도 정신을 똑바로 차린 듯한 비판적인 혀와 별나라 생각을 가진 헉슬리는 군중의 열망에 자신을 모두 불살라야 했던 스타들에게 파괴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간과한 것은 헉슬리는 어린 나이부터 외부적인 눈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내부적인 세계에 대한 눈을 뜨고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외면적 형태의 보여줌에 대한 강조가 집중된 현대사회에서 내면을 바라보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열망하는 대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좀처럼 중심을 잡기 힘들다.
"만약 지각의 문이 정화된다면, 모든 것이 인간에게 있는 그대로, 즉 무한하게 보일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닫아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 동굴의 좁은 틈을 통해서만 본다."
《천국과 지옥의 결혼, 윌리엄 블레이크》
"If the doors of perception were cleansed, everything would appear to man as it is, infinite. For man has closed himself up, till he sees all things through narrow chinks of his cavern."
《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 William Blake》
헉슬리의 저서 《지각의 문 The Doors of Perception 1954》은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글에서 영감을 받았다.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서 "인간의 지각의 문이 정화된다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무한하게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 개념들이 사실은 상호 보완적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현실을 넘어 의식을 정화하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즉 무한하게 볼 수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이 문구를 통해 헉슬리는 인간의 지각이 필터링되고 제한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헉슬리의 《지각(인식)의 문》은 현대 사이키델릭 연구의 초석이 되었으며, 특히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전쟁의 잔혹상이 넘쳐흐르던 현실 세계에서 반항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60-70년대 히피 문화와 사이키델릭 한 음악들, 몽환적이면서 시적인 대화를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차원의 인식과 지각을 조망하게 되었다. 헉슬리는 약물을 통해 경험한 비일상적인 인식 상태를 바탕으로, 인간의 지각과 인식의 본질을 탐구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의 제한성과 이를 넘어서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몫도 다르고 부가되는 인생의 강도도 다르다. 나는 운명은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를 찾는 순간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미련이 없으려면 뒷길에 불을 놓는 수밖에 없다. 퇴로가 막히면 앞으로 갈 것이다. 어차피 돌아갈 생각은 없다. 환생을 넘어선 인식의 문은 과거의 길이 아닌 저 앞에 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와 다르게 길을 걸어감에 있어 거창한 분석도 없고 미래에 대한 염려나 전망은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계속 간다. 난 인식의 문을 꼭 열고 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