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OMNIA

SLEEPLESS NIGHT, 사형장의 도시, 불면의 상실

by CHRIS
HALOGEN NIGHT


피사체에 매력적인 광채를 띠게 하여

사람의 시선을 끌게 하는 할로겐 빛이라...


소유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빛을 뿜어내기 위해 온몸은 지글지글 타오르겠지.
공기 중에 산화되어 그 빛도 사그라들겠지만.


할로겐 가스와 금속이 만나다.
무엇이건 보통보다 다른 모습이 더할 때
사는 의미가 곱절 더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에 눈여겨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그림자에 시선을 던지고
웃는 눈가에 접힌 주름이 정겹게 생각될 때처럼.


나에게도 할로겐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이 고파 등이 굽었다
20040818.WED.


미칠 것 같다
가슴이 멈추지 않는다
슬프지 않다 아픔도 흔적일 뿐이라고 되뇌어도
심장은 울고 있다

들판을 소슬치게 쓸고 가는 바람이 소리 낸다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얼룩진 몸은 생채기로 무늬를 더한다
작은 이슬에도 떨리는 눈망울을 잠재울 수 없다

거친 자아로, 무심한 얼굴로
나와 달라

나와 달라
돌아보고 싶지 않지만 눈에는 선명하다


소금기에 멀어버린
보이지 않는 눈
슬퍼 버리고 웃어보지만 슬프다
또 눈물이 흐른다

무심한 가면을 써본다
제어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아도
멍한 눈가에 그 모든 모습이 그려진다

지울 수 없다
심장에 박힌 굳은살도
피를 타고 흐르는 그리움도
아픔으로 굽어버린 주름도

살고 싶은데
웃고 싶은데
온몸은 울먹이며 작게 속삭인다
죽자. 죽자




사형장의 도시
20050222.TUE.
[CITY OF GALLOWS] 2005. 2. 22. NOTEPAD. MEMENTO SKETCH by CHRIS


잠이 들기까지 한낮의 수정은 깨어있다
잠이 오지 않아 그늘진 천장
숲도 있고 도시도 있다
반가움에 서둘러 든 손가락
그림자는 검었네
보이지가 않았네
창문을 비추고 하늘을 비추고
동네를 비추고 천장을 비추더니
어이해 이 마음
비추지 않는가
누워보니 발그레한 그림자
길게 뻗은 가지
고개 숙인 몸통
해가 솟고 도시는 사라지네


<불면이 가득한 어느 날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습관보다 집착이 되었다. 쉽게 불러낼 수 없는 수면에 대한 욕망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삶의 의지를 흔들어 놓는다. 낮에 가진 발랄함도 모두 거짓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뜸하게 진심일 뿐이다. 다 귀찮아지는 우울함. 그것을 떨치고 밖으로 나간다는 건 자신을 없애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대리역할을 하면서 나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인형이라고 생각해 왔다. 밝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목소리를 다양하게 쓰는 나는 내가 아니다.

어느 날 밤에는 억지로 자려해도 잠이 안 와서 눈만 멀뚱 거리며 천천히 밤을 즐기기로 했다. 몸을 꼿꼿이 한 채로 천장을 몇 시간째 바라보았다. 그러자 작은 공간에 도시가 걸려있었다. 흡사 교수대의 형상처럼, 회색의 흔들의자는 걸터앉으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게 왜 친밀했을까? 왜 그리 아름다웠을까? 이 순간이 아니면 못 볼 것 같아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거긴 아무 그림도 없었다. 새벽빛이 다가오면서 교수대가 사라졌다. 뭉그러져가는 도시는 얼마나 슬프던지.

매일 밤 가슴에 붉은 흔적을 본다. 누가 남긴 건지도 알 수 없는 표시.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이야기. 그걸 보면 잘 수가 없다. 남몰래 죄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 살 이유가 꼭 있어야 하는데 살 이유가 별로 없을 땐 흔들의자에 걸터앉고 싶다. 노래 부르던 그녀를 보았는데 그녀도 새벽, 참을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름날의 불면
20050806.SAT.


I.

아침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잘린 뒷모습이 싫었는지

옆 자리 가리키며

잠 자라 보채는 이 있다


부채를 부치는 여름은 급행열차

비행이 길어야 하겠지만

땅과 하늘과의 마찰은 짧기만 하다


시무룩하게 꺾인 제비 날개

깃털도 누워버린 그 어깨엔

그 누구도 지우지 않았다던

해 묵은 상처가 가로누웠다


갈 곳은 보이지 않고

잠은 오지 않고

똑같은 질문 던지며

잠 자라 보채는 이 있다



II.

눈을 뜬다

네 시 삼십 오분

어슴푸레 날이 파랗다

버스가 정류장으로 미끄러진다

잠시 멈추었다 사람들을 태우고 떠난다

창문 밖 전깃줄엔 새가 우네 어이해 우나

끝도 없고 시작도 없어 매연이 부는 새벽 정류장, 그리고

쓸쓸한 가로등 빛이 흐느끼는 구석방 한 편의 뒤척임


III.

“잠 안 자요?”

- 불면증이 있거든요.

“잠 올 때는 없어요?”

- 불면증이 잠잘 때요.


불면증이라고 또박또박 말하면 부끄럽지 않았다. 교복에 다는 배지 같기도 했다. 현 상태를 말하는 짤막한 단어. 일반의 퍼센트에서 멀어질 수 있는 유난한 설명. 그건 장애가 아니었다. MBA 출신보다 지적인 명함이었고, 우유 빛의 비단피부를 유지하려면 여덟 시간의 수면을 지켜야 한다는 성화들을 한 순간 걱정으로 돌변하게 만들 그럴싸한 이유였으며,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잠자리에 든다는 상식을 일찍이 거부하게 만든 몰상식의 자유였다. 할 말이 없을 때면 으레 등장하는 생활시계로 향한 뻔한 물음이 지겨웠다.


“몇 시에 일어나죠? 몇 시에 잠드나요? 잠들기 전에 무슨 음악을 듣곤 하나요? 일어나면 뭘 먹어요?”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불면증', 그 단어만으로 질문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관심 있다면 상대는 또 묻는다.


“잠 안 자요?"

- 불면증이 있거든요.

“잠 올 때는 없어요?"

- 불면증이 잠잘 때요.


빈혈기가 있는 듯 술에 취한 듯 몽롱하게 비틀대는 발걸음은 매끄럽고 관능적인 무희들의 춤사위로 탈바꿈할지 모른다. 그 기대감에 외국어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대방의 말에 헛기침을 하고 싶을 때는 사전을 찾지 않는다. 목구멍을 오므리고 간지럽게 가르랑 불러보는 거다.


"불면증. 불면증."


가장된 발랄함은 심각한 인간이란 인상으로 기울기를 가지게 되겠지. 불면으로 지새운 날이면 눈 밑으로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꽤 근사한 장식이 되었다. 포터블 양산이었고, 피곤함만 가시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갈 안심 마술스티커였고, 아침에 만날 레토르트 포장이었다. 은밀하게 상상을 할 때면 창문으로 고개를 내미는 빛이 성가셨다. 그때마다 창을 덮던, 모직커튼의 씨실과 날실이 힘겹게 뱉어낸 저 햇살의 묵직한 기침들을 한숨에 제압하는 짙고 거뭇거뭇한 불면의 흔적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매번 나른한 기분을 뻔뻔스럽게 늘려준 증상에 완전히 빠지고 말았다. 어느새 불면증은 행복해도 우울해도 슬퍼도 아파도 기뻐도 무감각해도 참착하니 머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걱정이 주는 불면은 아무런 이유가 없고 의미가 없이 무작위로 당첨된 불면증과 새벽을 헤매는 즐거움의 강도에서 달랐건만, 만성으로 돌입하는 수면거부 반응으로 육체라는 섬을 떠돌며 닻을 내리지 않는 잠을 거둬가 버렸고, 오늘도 새비눈을 둥그렇게 뜬 채 목덜미로 흐르는 땀과 싸움을 하게 되었다.




For Your Eternal Sleep, Rest in Peace.
20240122.MON.
[SPLEEPLESS NIGHTS] 2024. 1. OPEN-AI DALLE·3 Prompt Design by CHRIS


어두운 밤, 사면이 조용하고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간에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면 어깨가 아프다. ‘자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장면들에 호흡이 가빠진다. 오후부터 올라온 기분이 묵직하게 베개와 맞닿은 뒷목을 누른다. 멍하니 서있던 순간의 기억과 수치스러웠던 대화와 내일에 대한 불안이 실뭉치처럼 엉켜서 숨 쉬는 기도와 콧구멍까지 막아버린다.


참을 수 없는 구토감에 벌떡 일어났다. 주섬주섬 주변을 훑다가 둘둘 말려있는 휴지를 보면서 기도 가득히 응고된 가래침 덩어리를 뱉어냈다. 막혀있는 가슴속 응분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허공에 한 번, 두 번, 세 번. 후- 하고 숨을 뱉어도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막힌 속은 그대로다. 모니터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보니 못 다 뱉은 이야기를 꿍쳐놓은 마냥 기분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추레하기만 하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눈을 감아도 눈동자까지 떨리게 만드는 생각이 많아서 일 것이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리는 의식을 막을 수 없다. 젊은 날에는 불면이 일상이었다. 단순히 휘몰아치던 것이 그저 지나가는 폭풍우였으면 했지만 그럴 수 없음에 슬퍼했고 그렇지 않음에 절망했다. 누군가가 놓아버린 동요의 흔적은 잠들 수 없었던 어느 날 밤을 떠올리게 했다. 젊었고, 하고 싶은 게 많았던, 하지만 묶여 있던 그 어느 날 밤 말이다. 그와 나의 불안은 근본부터 다르다. 질기게 살아남은 나와 달리 여렸던 그 남자를 떠올린다. 팔딱거리며 살아있는 심장 위에 손을 대어 본다. 떨리는 박동에 경의를 표한다. 완전히 잠들 때까지 살아있자.




현재의 상실점 : 불면의 상실
20240721-28.SUN.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맞닿아 있다. 교착점에서 우리는 현재를 상실한다.


"얼마나 안 자봤어?"

- 일주일에서 모자란 2시간.

"난 잠을 안 자면 죽을 거 같던데."

- 넌 예전부터 그랬잖아.

"비결이 뭐야?"

- 시간이 아까워서.


소중한 시간이 아까웠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수 없게 고요가 사라진 어둠은 환영처럼 귀에 울려 퍼졌다. 쓸데없는 일에 하루를 허비하면 시체처럼 누워있는 기억을 안아줘야 했다. 낮에는 눈을 떠야만 했고 밤에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손발이 묶인 구속은 침대를 관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렇게 불면의 밤은 긴 시간 동안 어둠을 지배했다. 가슴이 썰리는 서걱한 소리와 머리를 짓누르는 두통은 눈을 뜨고 있으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 봤니? 5년이면 드라마 3편 정도 보나 싶은데... 종종 생각하고 싶은 드라마... 혹 안 봤으면 시간 날 때 봐. 너 만나고 나서 공유하고픈 대화라 겸사 보낸다. 나도 요즘 내가 믿던 내 내력이 시시해져서 말을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


"TV 드라마 안 본 지 오래됐다. 이 드라마 재밌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랬는데, 아직 안 봤다. 그래도 '인생의 내력'에 대한 말은 생각거리가 있구나. 소유하기도 그렇고, 재능도 그렇고, 살아감도 그렇고. 치열할 필요가 있나 싶더라. 속이 잔잔하니 살만 하더라고. 사람은 역시 사는 게 중요해. 이젠 하고 싶은 거 천천히 해도 될 듯하다. 추천 고마워. 잘 볼게."


내력이 있는 친구는 미술을 그만두고 제품 디자인을 하고 있다. 가끔 작업하지 않을까 싶지만 묻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에서 열정을 쏟기로 한 다짐은 날아간 것인가? 이제는 툴툴 털고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시간은 잡을 수 없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추석 때 잠깐 보고 서로 안 본 지도 삼 년이 되어간다. 뭐가 이리 바쁜가. 드라마 <아저씨> 보라고 이야기 한 지가 2021년이었는데, 회신문자를 남기고선 드라마도 못 보고 친구도 못 봤다. 그동안 <아저씨>의 남자 주인공은 세상에 없다. 내력과 외력의 이야기는 속이 이미 사라진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전엔 확실히 불면증이 심했다. 거의 잠을 안 자고 살았다. 사람들이 잘 시간에 눈을 뜨고 있었으니까 최소한 현재 나이의 곱절은 눈뜨고 산 것이다. 단어 하나에 꽂히면 의학적 증세부터 심리적 원인과 관련 인물들 및 관련 효과와 성격의 변화까지 파고들어 살폈다. 관련 책을 보고 관련 없는 영화를 봤다. 잠이 들지 못할 땐 몽롱한 기분을 즐기기도 했다. 간혹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지난 습관에 대해 말하곤 한다.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열의에 들떠 무언가를 하면서 마시기만 줄기차게 마신다고. 그랬나? 아마 성격이 이렇게 까칠해진 데는 불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편한 사이는 챙겨주기 귀찮다. 예의상 밥숟갈을 뜰 필요도 없다. 소화도 안 되는 더부룩한 일상의 예식들에서 멀어지고 싶다. 생활에 있어선 각자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감정 정리에 수월하다. 수 십 년의 반항이 결국 원하던 형태를 만들어내긴 했다. 밥 먹는 거 신경 안 쓰고 안 챙겨주다 보니 정 없는 인간으로 치부되곤 한다. 배고프지 않으면 아예 안 먹어버리는 것도 배고픈 자들의 자가 동력을 자극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수면은 예외성이 있다. 동반 자살이나 타자에 의한 살해, 스스로의 마감이 아니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죽음처럼 개별적인 의식의 캡슐 속으로 들어가는 잠은 타인과 같이 잘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친구가 잘 사는지 문자 연락을 했다. 확실히 심적인 여유가 없다. 관계적으로 누군가를 챙기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겠다.


"안녕! 잘 지내고 있지? 갑자기 소식이 궁금하네. 뭐 하고 지내?"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고, 웬일로 그녀는 즉각 받았다. 그녀는 후배 데려다 고생시킨 이야기를 듣고 엄청 웃어댔다.


"그러니까 왜 밥을 안 줘?"


실컷 설명하는 와중에 번잡한 차량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정신없음이 발휘됐다. 예상과 어긋나지 않는 행동은 재미있다. 우린 바뀔 수 없는 종족인가 봐. 한참 후에 문자가 왔다. 친구와는 곧 볼 것 같다.




결국 친구가 왔다. 가까운 이들과 만나기 위해 움직이지 않은지 꽤 됐다. 이번에는 필히 전환을 해야 한다. 그녀도 자극이 필요한 것인지 겸사겸사 온 듯 보인다. 변화를 선택하면 일순간에 휘몰아친다. 모두에게 격동의 시기가 다가올 것 같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처한 상황을 잘 모른다. 말을 해도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 밑에 묻어둔 속을 꺼냈다는 시원함과 비성숙한 생각의 결정을 눈앞에서 가시적으로 발견했다는 정도가 의미롭다고 하겠다. 가끔 심술 섞인 변덕 같은 한 마디를 내뱉으면 가까운 이들도 놀라곤 한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모두들 내 갈길 가는 것이 좋아 보인다고 하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고 이제 하려고 한다면 왜 그리 놀라는 거야. 잘 살고 있는 것은 맞는가? 우리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라는 말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다 들고 엎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 상황을 주절이 말하는 게 익히 들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 같아 귀찮다. 그래도 실행해야 할 다짐이므로 스스로에게 자극을 줘야 한다.


우리들은 수많은 말속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대화의 시간이 길어지면 넋두리가 되기 십상이다. 한쪽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한쪽은 접시에 코를 박고 밥을 먹거나 딴짓을 하고 있으면 입을 턴 부주의함을 저주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하고는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듣기만 한다. 소통제로. 식사를 하든 차를 마시든 서로에게 집중을 하면서 견해차가 있는 것은 환영이다. 우리의 생각은 같을 수도 없고 살아가는 모습도 같지 않다. 앞에 앉은 친구의 눈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감수성은 전처럼 불안한 꽃사슴은 아니다. 차분해졌고, 진중해졌고, 텃밭을 사랑하는 자연주의자의 감성은 여전했다. 나는 그린 핑거(Green Finger)는 아닌데 말이야. 우리들이 익히 알던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살고 있는 게 예술이야. 먹고살려면 돈은 벌어야 하는 거고."

그녀의 예술과 나의 예술은 실행방식에서 약간의 뉘앙스적인 차이는 있어도 추구하는 바는 같다. 나에게 예술은 바로 삶이다. 죽음이 다가오기까지 책임을 가지고 만들어가는 나의 삶. 그 안에서 저마다의 선율과 형태를 가지는 것은 개성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알리지 않는 행위에 대한 잔소리를 들었다. 난해한 말투와 글에 대해서도.


"미로가 좋아. 쉽게 쓰려면 쓰겠지. 그림도 그런 거 아니야? 너무 쉬우면 뻔하고 재미없잖아."


보이는 것만으로 존재를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도 모르는 예술은 한편으로는 허황되고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상과 꿈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젊어진 기분이 들었다. 사춘기 때는 꿈이 없었고 지금에서야 꿈이 생겼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가.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을 채워주는 걸 포기하고 있다. 겉보기로 좋아 보이면 그 안은 그리 즐겁지 못하단 소리다. 겉이 황폐하면 안은 충만할까? 거칠게 말할수록 잘 나가는 신화는 만들지 말자.


"요즘은 잠은 자?"

"아주, 잘."


지금은 간헐적으로 깨곤 하지만 잠을 잔다. 계속 자다가는 영원히 깨지 못할 정도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ART as THE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