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미술관》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현대 사회의 예술은 문화예술을 공공의 문화소양 고취를 목표로 삼은 정부정책이나, 미술품에 투자하고자 하는 아트 컬랙터들이나, 예술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높이 사는 학구적 세계나, 예술로 커다란 경제적 그림을 그리는 상업계의 큰 손까지 많은 이들이 관여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실제적인 예술과의 만남은 언어로 찬미하는 미학적인 배움과는 달리 마음속에서 커다란 변화를 주기에는 관람자에게 감동의 실패와 감상이 사라진 무능하고 딱딱한 느낌을 전해준다. 작품이 품고 있는 미로에 대한 해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으나 여유가 사라진 사람들에게 그림이나 조각, 건축이나 디자인은 일말의 감동은커녕 하나의 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예술은 외부적인 가르침으로 전해지는 교육적인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내부적인 동력에 의해 발휘될 때만이 진실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요술단지로 변화한다. 디자인, 건축, 공예, 그림, 조각 등 예술은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다루는데 명약까지는 아니어도 갈증이 가득한 심상에 목마름을 가시게 하는 하나의 물병과도 같은 치유의 도구가 된다.
배움의 시기에 질문이 많았던 사람으로서 항상 내용물을 실어 나르는 형식의 문제에 접근할 때면 성가시게 물음을 쏟아내었다.
"실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형식을 꼭 갖추어야 하나요?
"형식이 중요하다면 어떤 형식이 바람직한 가요?"
"대상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평가는 형식에 집중된 경우가 많은데, 내용이 부재한 상태에서 형식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 건가요?"
"만약 내용물을 새롭게 전달할 방법이 있으나 현재 사용하는 방식과 부합되지 않을 땐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타인이 해석할 수 없는 개인적 경험의 내용들이 표현하는 개인에게만 의미롭다면 시차를 두고서 발현되는 공중성의 획득과 공감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요?"
"형식을 갖추지 않으면 타자가 볼 수 없다고 했는데, 형식을 갖추어도 실제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거나 공허함만 담고 있다면 우리가 집중하는 형식의 기능은 무엇인가요?"
보통 이런 질문이 시작되면 모두들 황당하기 마련이다. 눈살을 찌푸리거나 실소가 터져 나오는 현장에서 형이상학적이면서 본질적인 질문에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기초 학문이 실생활에서 전혀 실무적인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에 실망한 나머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데 서툴다.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정보를 잘 잊어버린다. 글쓰기는 분명 망각의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고, 미술은 그다음으로 중요한 방편이다. 예술은 왜 우리에게 중요한가? 예술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성취할 수 있다. 즉, 사랑하는 대상이 떠난 후에도 계속 그 대상을 붙잡아둘 수 있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싶은 충동은 우리의 지각이 시간의 흐름에 약하다는 불안한 자각에서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타지마할을 잊고, 시골길을 잊고, 무엇보다 아이가 일곱 살 하고도 구 개월일 때 거실 카펫에서 레고 집을 쌓던 바로 그 순간의 표정을 잊는다."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 존 암스트롱 ART as THERAPHY, Alain de Botton and John Armstrong 》
디테일을 기념하는 방식에 있어서 구체적인 상황과 문제에 골몰하는 방식은 예술을 다루는 이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이며 그 경험을 보존하기 위해 자아의 불평을 잠재울 수 있는 사물의 형태와 색과 질감에 집중해야 한다. 인생이 고되기 때문에 현실에서 대비되어 보이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웃음과 기쁨은 관찰자의 회상 속에서 아름답고 가슴 아픈 것이다.
"미를 사랑할 줄 아는 로봇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구상한다면 그 로봇이 인생을 증오하고 혼란과 좌절을 느끼고 고통을 겪는 동시에 그럴 필요가 없기를 희망하도록 아주 잔인한 조건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름다운 예술이 단지 좋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소중해지는 배경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과제는 균형 잡힌 좋은 삶을 영위하는 법에 대해 피곤할 정도로 익숙하지만 중요한 비판적 기준이 되는 개념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우리의 닫힌 눈을 비집어 여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예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인생을 이끌어야 할 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다."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 존 암스트롱》
작품의 성찰은 완벽히 해석할 수 없는 존재적 상태와 현재의 감정을 돌아보게 한다. 내면을 깊숙하게 바라보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예술의 이상화가 비판적인 오명을 얻게 된 것은 어색하고 부정적인 면을 깨끗이 제거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예술은 자기 인식을 누적시켜 타인에게 결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편안하고 행복한 긍정적 기분만이 아니라 절망과 고통, 힘겨움과 좌절까지 부정적인 경험을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존재의 씻김을 통해 영혼을 바라보는 투명한 창을 제공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창은 자신의 창을 열고 타자의 창 너머를 갈망함으로써 타자의 표면적 상태에 집중하게 만든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닿을 수 없는 세계는 풍요로움과 치장으로 인해 물질적인 열병을 불러일으키며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러나 예술은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관조함으로써 현실의 실상을 바로 보게 만들며, 실제는 그런 화려함에 모든 것이 놓여있지 않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말하는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를 정리해 본다. 먼저 예술의 치유기능을 믿는다면 심리적 취약점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1.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린다. 중요하지만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경험을 좀처럼 붙들고 있지 못한다.
2. 우리는 희망을 쉽게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삶의 나쁜 면들에 과민하게 반응한다. 어떤 것을 향해 계속 나아갈 이유를 깨닫지 못해 정당한 성공의 기회를 놓쳐버린다.
3.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일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없기 때문에 고립감과 피해의식에 쉽사리 이끌린다. 우리는 곤경의 의미를 의미를 잘못 판단하는 탓에 너무 쉽게 당황한다. 우리는 외롭다. 하지만 이것은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나의 고통을 충분히 깊이 있게, 정직하게 인내심 있게 이해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꾸준하지 못한 인간관계, 질투, 이루지 못한 꿈으로 인해 고통을 보여주려 해도 그 방식 때문에 자칫 상대방이 경멸감과 모욕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고통을 겪고 이 고통에는 존엄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낀다.
4. 우리는 균형감이 없는 데다 자신의 가장 좋은 면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단 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다수의 자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보다 나은 자아가 있음을 안다. 우리는 보다 나은 자아를 대개는 우연히 그리고 너무 늦은 때 만난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큰 꿈에 관련해 의지의 박약에 시달린다. 행동하는 법을 모르진 않는다. 다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형태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최고의 통찰에 따라 행동하지 못할 뿐이다.
5. 우리는 어렵게 깨닫는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수수께끼이며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타인에게 설명하거나 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사랑받는 일에 대단히 서툴다.
6.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많은 경험, 사람, 장소, 시기를 거부한다. 이는 그런 것들이 잘못된 포장에 싸인 채 다가오고 그래서 그것과 연결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상적이고 편파적인 판단의 먹이가 된다. 우리는 너무나도 수동적으로, 모든 것이 '낯설다'라고 생각한다.
7. 우리는 친숙함 때문에 둔감해져 있으며, 화려함을 부각하는 상업 지배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는 게 단조롭다며 불만족에 빠진다.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고민이 우리를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이 일곱 가지의 심리적 취약점과 예술을 연관시킬 때 예술은 도구로서의 목적과 가치를 지니게 되고 우리에게 일곱 개의 보조수단을 제공한다.
1. 나쁜 기억의 교정책: 예술은 경험의 결실을 기억하고 재생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술은 소중한 것과 우리가 찾은 최고의 통찰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메커니즘이며, 그것들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예술에 우리의 집단적 성취를 안전하게 예치한다.
2. 희망의 조달자 : 예술은 즐겁고 유쾌한 것들을 시야에 붙잡아둔다. 예술은 우리가 너무 쉽게 절망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3. 슬픔을 존엄화하는 원천 : 예술은 삶에서 슬픔이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를 깨우쳐주고, 우리는 그로 인해 곤경 앞에서 덜 당황한다. 곤경을 고귀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4. 균형추 : 예술은 우리가 가진 좋은 자질들의 핵심을 특히 명료하게 암호화해 다양한 형태의 매개로 우리 앞에 내놓고, 그럼으로써 우리 본성의 균형을 회복시켜 준다. 예술은 우리에게 허락된 최고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5. 자기 이해로 이끄는 길잡이 : 예술은 나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인간의 많은 부분은 언어로 쉽게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아트 오브제를 집어들고 혼란스럽지만 강한 어조로 말할 수 있다. "이게 나야."
6. 경험을 확장시키는 길잡이 : 예술작품에는 타인의 경험이 대단히 정교하게 축적되어 있으며, 잘 다듬어지고 훌륭하게 조직된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문화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가장 웅변적인 예들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예술작품과의 교류는 우리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이해력을 넓혀준다. 많은 예술이 처음에는 단지 '남의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순간 우리 자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생각과 태도가 그 안에 담겨 있음을 발견한다. 보다 나은 존재로 발돋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손 닿는 거리에 와 있는 것은 아니다.
7. 감각을 깨우는 도구 : 예술은 우리의 껍질을 벗겨내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버릇없이, 습관적으로 경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준다. 우리는 감수성을 회복하고, 옛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본다. 예술은 색다르고 화려한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가정하는 오류를 막아준다.
알랭 드 보통과 존 암스트롱은 치유에 관점에 의해 재구성된 미술관을 제안한다. 기념품 가게, 카페, 고통의 전시실, 자비의 전시실, 두려움의 전시실, 사랑의 전시실, 자기 이해의 전시실로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작품의 배열과 전시방법을 바꾸어 시대의 출처가 아닌 작품들을 통해 균형감을 회복해 나가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이렇게 층층이 높은 전시의 탑을 쌓기 위해선 작품들을 모으는 공간도 커야 할 것이고 공간 속에 담기는 내용도 알차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소규모 미술관에서 실행할 개념보단 역사적인 유물과 그림을 모아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도해야 할 문학적인 상상이 가미된 예술사적인 제안로 보인다.
머리를 자를 한가한 시간에 빠르게 읽어 내린 《영혼의 미술관》은 시간이 날 때 다시 읽어봐야겠다. 급하게 받아들이면 섭취한 시간만큼 빨리 잊어버리기에 머리에서 떠나가기 전에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잡아둔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한 곳으로 꽂아지는 날카로움으로 명료하게 삶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지겹고도 반복되는 이야기는 어지럽게 되돌아가는 횟수만큼 우리의 인생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소리일 것이다. 다만, 나는 나의 영혼이 미술관이나 박물관 안에서 박제되길 바라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