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1편, 다시 보니 보이는 것들

- 영화에는 마석도가 있지만, 현실에는 장첸이 있다.

by 오피스 사가Saga

범죄 도시, 다시 보니 다르게 보인다.


며칠 전 범죄도시 1편을 다시 봤다.

개봉한 지 9년이 지났지만 웃음을 주는 대사들은 여전했다.


“아이, 내 아입니다! 와 맨날 나라고만 생각합니까!.”
“합법된 지가 언젠데.”
“진실의 방으로.”

그리고 인천공항 화장실에서의 짧은 대화.

“혼자야?”
“어, 아직 싱글이야.”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이미 직장생활 14년 차였다.
지금은 어느덧 23년이 지났다.

대기업에서 해외영업으로 시작해
여러 조직을 거쳤고
지금은 연구와 기획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영화가 조폭 영화가 아니라
조직 이야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는
장이수를 찾아와 못살게 구는 사람이
마석도다.

하지만 현실의 조직에서는
갑자기 찾아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마석도가 아니라 장첸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최근 몇 년 사이 나는
그 장첸을 네댓 명을 한꺼번에 만났다.


장이수를 찾아온 사람, 마석도


영화에서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조폭 장이수의 사무실 문이 갑자기 열리고
마석도가 들어온다.

장이수는 이를 눈치채고 책상밑으로 숨어있다.

마석도가 책상을 쾅 내려치자

장이수가 못 이긴 척 책상 위로 얼굴을 내민다.

“아이, 내 아입니다! 와 맨날 나라고만 생각합니까!”

장이수가 마석도에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마석도는 가리봉동을 담당하는 강력반 형사다.
거대한 체격과 압도적인 힘으로 범죄자들을 제압하지만
단순한 주먹이 아니라 사건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요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찾아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장이수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협조한다.

왜냐하면
그 압박이 정의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장이수 역시 독특한 인물이다.

가리봉동에서 잔뼈가 굵은 조폭이지만
허세와 능청스러움이 섞여 있고
상황을 읽는 눈이 빠르다.

그래서 그는
마석도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결국 협조한다.


그런데 현실의 조직은 다르다


현실의 조직에서도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몰아붙이고
문제를 만들고
황을 흔든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으면
거짓으로 소문을 만들고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현실 조직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은
장첸이다.

장첸은 중국에서 넘어온 잔혹한 범죄 조직의 두목이다.
말수는 많지 않지만 냉혹하고 계산적이며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그가 등장하자
가리봉동의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장첸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일 때가 있다.

나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그런 시간을 보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장첸을
한꺼번에 만나는 시간.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다가도
나는 이상한 장면에서 열광했다.


인천공항 화장실 격투씬


영화 범죄도시 1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인천공항 화장실.

격투 끝에
마석도는 장첸을 제압한다.

그리고 부서진 소변기 지지대에
그를 묶어 놓는다.

마석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걸어 나간다.

그 장면을 볼 때
관객들은 묘하게 통쾌해한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을 좋아한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조직에는
마석도가 많을까.

아니면
장첸이 많을까.

영화는 두 시간 만에
정의를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의 조직에서는
그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린다.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장첸을 묶어 두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마석도.

그리고 생각한다.

23년 직장생활 동안
내가 기다렸던 사람은

어쩌면

그런 마석도였는지도 모른다.


“혼자야?”, "어, 아직 싱글이야"


인천공항 격투신 바로 직전
장첸이 묻는다.

“혼자야?”

마석도가 대답한다.

“어, 아직 싱글이야.”

처음에는 웃으며 지나갔던 대사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조직 생활도 어쩌면 비슷하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억울한 일도 있고
가끔은 밤잠을 설치는 날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날 다시 출근한다.

23년 동안 내가 배운 건
대단한 전략이 아니었다.

그저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묻는다면
나도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아직 버티고 있냐고?”

“어.”

"아직 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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