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벤 휘태커에게 배우는 情스러운 리더십
요즈음 사회 조직을 들여다보니
‘사람’보다 ‘시스템’이,
‘마음’보다 ‘속도’가 앞서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AI를 쓰며 효율에 감탄하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문득 동료들의 표정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함께 찾아온다.
그래서 묻게 된다.
AI 시대가 리더십의 본질도 바꾸는 걸까?
초연결의 시대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한 기술과 함께 일한다.
질문 하나면 보고서가 완성되고, 데이터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오차 없이 예측한다.
효율은 극대화되었고, 의사결정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지치고, 외로워진다.
왜일까.
우리는 지금 ‘정답’은 넘쳐나지만, ‘마음’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 '인턴(The Intern)'의 벤 휘태커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답을 건넨다.
화려하지 않지만, 삶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로.
참고로 벤은 은퇴한 노년의 인물로,
과거 전화번호부(옐로페이지)를 발간하던 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뒤 부사장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그는 은퇴 후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해 스타트업에 들어온다.
그 회사의 CEO가 바로 줄스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창업해 급성장시킨 인물이지만,
투자자들의 압박과 개인적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리더이기도 하다.
벤은 인턴으로 배치된 뒤 자연스럽게 줄스의 곁에서 그녀를 보좌하며,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버팀목’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것을 ‘정(情)스러운 리더십’이라 부르고 싶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벤이 인턴 면접에서 자기소개 영상을 통해 남긴 말이다.
그는 페이스북 계정도 겨우 만들 만큼 디지털에는 서툴렀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분명해진다.
그가 얼마나 ‘일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인지.
정갈한 슈트, 시간을 지키는 태도,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눈빛.
그는 최신 기술 대신, 오래된 ‘기본’으로 조직 안에서 신뢰를 쌓아간다.
AI 시대에도 이 장면이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술은 매일 바뀐다.
하지만 사람을 설득하고, 관계를 만들고, 신뢰를 쌓는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리더는 결국
새로운 도구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본질을 지키는 사람이다.
AI는 입력된 질문에만 반응한다.
그러나 사람은 질문하지 못하는 순간이 더 많다.
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어질러진 책상을 새벽에 정리해 둔다.
그 행동은 ‘업무 효율’ 때문이 아니라, 그 책상을 보며 매일 지쳐 있었을 누군가를 향한 배려였다.
리더십은 여기서 갈린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
AI는 데이터를 읽지만,
리더는 침묵을 읽는다.
그 차이가 조직의 온도를 바꾼다.
“The best reason to carry a handkerchief is to lend it.”
줄스가 무너지는 장면이 있다.
젊은 CEO인 그녀는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압박을 받고,
동시에 남편의 외도라는 개인적 위기까지 겪는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던 순간, 그녀는 결국 눈물을 터뜨린다.
그때 벤은 당황하지도,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미리 준비해 둔 깨끗한 손수건을 건넨다.
그리고 말한다.
손수건은 상대에게 건네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라고.
벤은 상대의 약한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것을 평가하지 않고,
품격 있게 지켜주는 리더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 장면이 오래 남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AI는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리더는 마음을 회복시킨다.
성과 중심의 시대일수록,
사람은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에서 다시 일어난다.
리더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완벽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You built this.”
줄스가 CEO 자리를 내려놓을지 고민하던 순간,
벤은 조용히 이 말을 건넨다.
“당신이 세운 제국이다.”
투자자들은 더 경험 많은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라고 압박하고,
줄스 역시 스스로의 한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때 벤은 화려한 논리를 펼치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어떻게 이 회사를 만들었는지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증인’으로서 말한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다시 붙잡아주는 말이다.
AI는 성과를 숫자로 정리한다.
하지만 리더는 그 숫자 뒤에 있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마음을 기억한다.
사람은 누구나 흔들린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당신은 충분히 해냈다”는 누군가의 확신이다.
“You're never wrong for doing the right thing.”
줄스는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고민한다.
회사를 위해 타협해야 할지,
아니면 끝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책임질 것인지.
투자자와 조직, 그리고 개인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 순간,
벤은 조용히 기준을 제시한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리더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말이다.
AI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옳은 선택’을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리더는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언제나
성과가 아니라, 가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벤은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조직 운영과 비즈니스의 기본을 몸에 익힌 인물이다.
한때 기업의 부사장까지 지냈던 그는,
이제 인턴이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묻고, 배우고, 관찰한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자신의 통찰을 꺼내어 상대를 돕는다.
특히 줄스의 곁에서 비서처럼 일정을 돕고, 운전을 하고, 사소한 일까지 챙기며
‘직함이 아닌 태도로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이 무엇인지 증명한다.
이것이 진짜 실력이다.
지식이 아니라 판단력,
권위가 아니라 태도.
AI 시대의 리더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해질 것이다.
하지만 끝내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누군가의 고여있는 눈물을 발견하고,
그 온도가 식기 전에
조용히 손수건을 건네는 일.
그것은 데이터의 연산이 아니라,
사람의 ‘곁’을 느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기술이 아닌 사람을,
속도가 아닌 관계를,
효율이 아닌 ‘정(情)’을 다시 이야기하기 위해.
기술이 세상을 지휘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인간적인 리더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성과라는 차가운 숫자 뒤에 숨겨진
팀원의 고단함을 먼저 안아주는 리더,
‘정답’ 대신 ‘진심’을 건넬 줄 아는 리더.
오늘 당신의 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날카롭게 다듬어진 논리인가,
아니면
언제든 건넬 준비가 된 따뜻한 손수건 한 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