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나를 갉아먹는다곤 하지만 멈출 수 없는걸요

by 소사리

2025년 10월 10일.

나는 우연히 브런치에 들어와 첫 글 '시작'을 쓰면서 희망적인 미래를 마치 눈으로 본 것 마냥 들떠 있었다.


매일매일 브런치 스토리를 하나씩 올려야지. 그러다가 잘 되면 책도 출간 하는거고, 나를 세워 보는 거야!


뭐 이런 생각을 한 채 꽤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웬걸. 지금, 10월 27일, 나는 오히려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갔다. 나는 더 살찌고 더 아파졌다. 설상가상으로 50대에나 걸린다는 대상포진을 30대에 맞이하게 되었다. 몸이 아프니까 지금 남편과의 관계고 뭐고 1순위가 아니었다. 발목이 나으면 다시 하려던 달리기도 최소 6주 정도는 할 수 없게 되었고, 걸어서 하던 출퇴근도 4주 정도는 후에나 할 수 있게 됐다.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시켜먹은 배달 음식과 불규칙한 수면 습관은 내 몸무게 앞자리를 바꿔 놓았다.



집에서 칩거만 하고 있는 나날들이 2주 가까이 되니까 확실히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거나 핸드폰을 붙잡고 컨텐츠를 소비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남편과의 관계를 떠나고 나서도라도 그 자체가 혐오스러웠다. 내 나잇대 중에 나는 상위 99.8%이다. 내가 제일 뚱뚱하다는거다. 직장에서도, 그냥 길거리에서도 나보다 더 살찐 사람을 찾기 힘들다. '아픈데 어쩌라고'싶지만, 사람들이 내가 아픈걸 알 턱이 있나? 대상포진이 얼굴로 온 것도 아니고, 허리가 꼬부라진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게을러 보일 뿐이다.



후회가 된다. 더 젊은 날 더 관리할걸. 더 운동을 많이 할 걸. 따지고 보면 내가 운동을 안했던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전반적인 가정 환경이나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런 결과를 불러온 것 같다. 분명 50kg대 후반일 때도 있었지만, 그때도 나는 내가 살이 아주 많이 쪘다고 생각했고, 60kg을 넘어서부터는 늘 뚱뚱하다고 생각해왔다. 거기엔 내가 만났던 과거의 남자친구의 의견들과, 내 애증의 대상인 아버지로부터의 지속적인 겉모습 평가가 큰 몫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난 늘 내가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 지금 있는 후회는 돌리려면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으로는 가야된다.



정신적으로는 어떤가. 정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나오는 MRI가 있다면 내 뇌는 검거나 붉거나 할 것이다. 정신이 건강한 뇌를 초록색으로 가정한다면, 내 뇌의 10분의 1정도는 은은한 초록색을 띌 지도 모르겠다. 그 외 나머지 부분은 검은색이나 붉은 색. 검은색은 되돌리기엔 너무 멀어진 부분이고, 붉은 색은 상처받아 불타오르는 부분이라고 해 두자.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됐더라? 그래도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는 비교적 행복했던것으로 보이니까, 이 후회를 돌리려면 8살때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안다. 안다. 아는데 안된다. 내 뇌는 그렇게 고정돼버렸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니야, 네가 어때서, 다시 하면 되지,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멋지다, 좋아, 잘했어, 그렇지'와 같은 말을 숨쉬듯 내뱉으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말이 닿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도 나에겐 닿지 않는다. 내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단 한 마디의 긍정적인 말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없도록 철통 방어를 하고 있으니까. 내가 나에게 허용하지 않는 말들을 남이 주면 뭐하나. 아, 뭐가 있긴 하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데 인색하니까, 다른 사람의 평가에 목매게 된다.



후회된다. 진짜로. 다시 태어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되니까 죽는게 무서워서 그런 기회가 주어진대도 잡지 못할 것 같다. 후회된다. 나를 이렇게 망가지도록 놔둔 내가 싫다. 똑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어도 내 동생은 그래도 나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잘 컸다. 그러니까, 이건 내 기질적인 문제라는거다. 기질이 별로면 성격이라도 잘 발달시켜야 되는데 나는 둘 다 망했다. 불행하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도 누가 읽을까 싶다. 이런 걸쭉한 검은 페인트 같은 글을 읽고나서 '괜히 읽었다'고 후회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를 망가뜨리고 싶다. 더 망가뜨려서 도저히 복구할 수 없을 정도까지 만든 다음에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절대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무너뜨린 다음 다시 세우고 싶다. 후회로 나를 갈고 또 갈고, 갉아서 톱밥처럼 변해버린 나를 조심스럽게 모아 다시 뭉치고 싶다.



그러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무수히 후회하더라도 제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