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
글쓰기를 멈춘지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을 공유하고 내가 알게 된 정보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어느새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글탱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편의 코인 중독이 원인이었을까?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만 가득했던 내 마음이 문제의 씨앗이었을까? 원인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쓸 수록 나는 더욱 깊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 구덩이를 파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인스타그램과 다음 카페, 그리고 좋아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나를 녹였다. 분명 뭘 하고 싶긴 한데. 분명 뭔가를 시작하고 싶긴 한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그 시작점을 영원히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방에서 나와 문을 열고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김치냉장고에서 마지막 남은 우롱차 한 잔을 꺼냈다. 이미 얼음은 다 녹아 없어져 압력 차이에 의해 여기저기 찌그러진 팔공티 우롱차와 함께 너저분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2025년 다이어리를 꺼냈다. 육심원 다이어리. 쓰지도 않는 다이어리를 나는 매년 사 모으고 있다. 역시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아 비닐채 새것인 그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날짜인 10월 10일을 찾는다. 어쩜 날짜도 이렇게 완벽한지. 10월 10일이라니. 마침 연필이 있고, 잘 깎이는 연필깎이도 있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 2025년 첫 일기를 써 내려갔다.
'10월 10일이 되어서야 첫 글을 쓴다. 분명히 뭘 하고 싶긴 하다. 그런데 시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현재의 내 인생이 불행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내 사고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매일을 그냥 보내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다음 카페, 그리고 커뮤니티에 나를 녹이고 있다. 분명히 뭘 하고 싶긴 하다. 나는 아직 젊고, 지나간 날을 후회하면서 살기엔 너무 아깝다.'
쓰고 보니 정말 그랬다. 다시 읽어봐도 그렇다. 지독하게 내 삶을 망가뜨리고 싶다가도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살아내고 싶은 내 진심을 마주하면 지나보낸 날들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나를 주저앉히고 다시 내가 판 젖은 구덩이에 철푸덕 엉덩방아를 찧고 앉아 '나 힘들어, 나 괴로워'만 외치고 있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그래서 일기를 이어나갔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엔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이 다이어리에 쓰곤 했다. 그러다가 그 중 어느 것도 대부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목표 세우기를 멈추었다.'
그래. 목표부터 세워야 했다. 그때 내 눈에 띈 것이 외할아버지의 mive 폰이었다. 디지털 디톡스.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디지털 디톡스처럼보였다. 그래서 검색했다. '스마트폰 중독 피처폰'. 그리고 어떤 브런치 작가의 글을 보게 됐다. https://brunch.co.kr/@pjw7109/130 바로 이 글이다. 신기하게도 나와 같은 mive 폰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했다는 글이었다.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 궁금해서 이어진 글을 찾아 보았지만 아쉽게도 저 글을 끝으로 더 이상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안타까워하고 있는 와중에 브런치를 카카오계정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에 대해서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어서 관심이 갔다. 그리고 여기, '시작'이라는 글쓰기에 다다랐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벌써부터 한계를 정해 놓고 싶진 않다. 어차피 내가 나를 한계짓지 않아도 언젠가 내 인생은 끝나게 될 테니까. 어쨌든, 그래서 시작이다. 2025년 10월 10일. 나는 새롭게 시작한다. 브런치도, 나의 하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