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객관화를 하고싶은 순간

by 오이오

밤이 길었다. 하루가 끝났지만 머릿속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 속에 있어도 늘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말이 서툴렀고, 내 속마음과 다른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누구나 편히 웃고 떠들 때, 나는 혼자 지지않기 위해 억지로 대화에 끼어들고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돌아오면 늘 같은 질문이 남았다. 왜 나는 저들처럼 편안하지 못할까.

사람들은 나를 꼼꼼하다, 진중하다, 시키면 잘하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를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내 안의 모습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나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만큼 나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부족했다.

며칠 전 참석한 스터디 모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각자 사업 아이디어를 나누고, 계획을 점검했다. 대부분은 ‘1인 기업가’라 불리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직장인으로서 그들과 다르게 느껴졌다. 그들의 고민은 서로 이어졌지만, 내 고민은 쉽게 끼어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준비해둔 생각들을 억지로 주제에 맞춰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사이트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 내내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얘기에는 늘 그다지 공감을 받지 못했기에 큰반응은 없었고, 언제 무가치하다는 평가를 받을지 몰라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말할 때 공기가 잠시 멈추는 느낌은 유난히 선명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리더의 한마디였다. 그는 내 장래희망을 웹소설가라고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건 내가 원한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문장으로 내가 규정돼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나조차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선명히 말하지 못했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뒤섞였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알지도 못하던 분야에서 기획자가 되었으며, 좋은 회사에서 자리를 지켜왔다. 그럼에도 늘 작아 보였던 건, 내가 달라서였다. 그리고 그 다름을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 어린아이의 뇌가 필요한 자극을 받아 어른의 뇌로 발달하듯이, 사람은 지지와 공감을 받음으로써 자기 확신이 생기고 생각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명확해지면 행동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인생을 바꾼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게 부족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다소 까다로운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자기 세계가 강해서인지 남들과는 사고방식이 조금 달랐다. 딱히 틀린건 아니지만 이해받기 힘든 사람.

나는 그래서 이해받는 대신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매달렸던 것 같다.


하지만 왤까? 아무리 증명해도 나는 여전히 무슨 생각인건지 스스로도 알기 힘든 모호한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남의 작은 말에도 쉽게 흔들렸고 남에게 이해받지 못할 나의 모습들을 자발적으로 부정하며 살아왔다.이 답답함, 이 불편함...삶이 힘겹다. 내가 뭐가 문제인걸까? 나의 능력이 아직도 부족한걸까?

아니,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는것을 이제는 안다. 내 삶이 답답했던 이유, 그건 스스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나는 자기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던것 뿐이다. 이해받지 못할까봐...


그래서 글을 쓰려 한다. 자기객관화를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조금 다를뿐이니까. 내가 어떤 생각인건지, 내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느끼고, 나한테 필요한것은 무엇인지, 내가 할수 있는것은 무엇인지 그런 나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알고싶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될 수록 나에 대한 생각이 모이고, 그렇게 모인 생각이 나의 인생을 바꿔주지 않을까?

나는 그렇기에 기록을 해나가려 한다.

나의 객관적인 모습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