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속에서 발견되는 경향성

by 현수

1. 내 경험을 이끄는 경향성


우리 경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의 경험에는 어떤 경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특정 사건에 대해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경험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저는 어떤 문제를 풀 때 문제가 안 풀리면 짜증이라는 감정이 먼저 올라오고, 이어서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성이 있다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짜증이 나면 계속 앉아 있기가 힘들고, 자리를 피하고 싶어 지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식으로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향성을 알아채지 못했을 때는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이것이 하나의 경향성이라는 것을 목격하게 되자 이전과는 다른 선택지가 올라왔습니다.



2. 자동반응에서 선택지로


문제가 안 풀려서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짜증이라는 감정이 올라온 걸 확인하고, 바로 다음 감정이나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잠시 지켜보다 보면, 다른 선택지가 올라오는 걸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안 풀리는 문제를 계속 풀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다른 문제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바로 해설을 찾아보는 식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알아채는 게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은

’안 풀리는 문제 -> 짜증 -> 회피’가 자동 프로세스였다면,

이번엔

‘안 풀리는 문제 -> 짜증 -> 잠깐 멈춤 -> 다른 선택이 가능해짐’을 경험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비단 문제가 안 풀리는 상황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저의 생각과 행동에는 어떤 경향성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저의 취향이나 기질 같다는 생각도 들고, 더 나아가 누구나 다 그런 경향성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경향성을 부정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 경향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우리의 경험을 이끄는 이 경향성은 꼭 부정해야 할 대상일까요?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경향성을 부정한다고 해서 경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 경향성이 한편으로는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가진 이 경향성 때문에 생각에 앞서 빠르게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분명 우리의 경향성은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경향성이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우리의 경험을 이끈다는 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각이 들고 행동을 하게 되니, 내 뜻과 내 행동이 내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 불편함이 생깁니다.


분명 좋은 의도였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건 이 경향성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경향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고 도움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만 이용할 수는 없을까요?



4. 경향성을 통제할 수 없는 이유


현실적으로 그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부분 결과가 발생한 후에야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을 뿐, 우리의 경향성이 우리의 경험을 이끌 때에는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어떻게 경험될지는 결과가 일어나 봐야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어떤 경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나에게 그런 경향성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런 경향성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도 인정하고, 그 경향성에 휘둘릴 때가 많다는 것도 인정하면, 뭔가 죄책감이 조금은 줄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니었어…. 경향성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고 나도 모르게 경향성에 휘둘리는 게 너무 순식간이었기 때문에 내 의지로 그걸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었어…’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도 똑같은 관점을 적용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경향성에 휘둘리고 있다고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5.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사라진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 행동이 일어났으니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떤 경향성에 휘둘려 내 경험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모두 내 책임이라고 하면 억울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데…’

이런 마음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생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경험에서 내가 경향성에 휘둘리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경험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경향성이 분명 나의 경향성인 건 맞습니다. 이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완전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입니다. 이것 또한 인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6. 책임과 무책임 사이의 절충


그렇다면 완전히 내 책임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닌 뭔가 절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억울하지도 않으면서 뭔가 무책임한 것도 아닌 제3의 입장은 없을까요?


잠정적으로 제가 내린 결론은 ‘내 책임인 것도 있고 어쩔 수 없던 것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정도였습니다. 이러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또 너무 큰 죄책감은 들지 않는 수준으로 결과를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7.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그리고 이 입장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했을 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상황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경향성에 휘둘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경향성’으로 보게 되고,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경향성’을 비난하게 될 때, 뭔가 상황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생활 속에서 해보고 싶은 연습들


그래서 앞으로의 한 주 동안은 이러한 경향성을 알아채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확인해서 나의 경향성을 확인해 보고,

마음속에서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 감정에 바로 휘둘리지 않게 연습해 보고,

감정이 올라왔을 때 잠깐 멈춰 서서 어떠한 선택지가 올라오는지도 관찰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그 사람의 경향성’으로 바라보는 연습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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