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
앞으로의 내용들은 제가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서 느낀 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나누는 경험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체험일 뿐,
여러분에게 “이렇게 봐야 한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라, 제 일상 속에서 관찰한 마음의 움직임을 함께 살펴보자는 초대에 가깝습니다.
일상적인 경험 하나를 예로 들어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차를 몰고 아이 학원을 향해 가던 길이었습니다.
신호에 걸려 멈춰 서 있다가, 파란불로 바뀌어 출발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옆 차선에서 차 한 대가 방향지시등도 없이 제 앞으로 끼어들었습니다.
순간 제 마음에는 놀람과 동시에 화가 불같이 올라왔습니다. 크락션을 세게 누르고 싶은 충동, 그 차를 따라가서 따지고 싶은 충동, 상대 운전자를 마음속으로 심하게 비난하는 생각 등 여러 가지 감정과 충동과 생각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평소보다 훨씬 강한 감정이 일어났기 때문에, 제 마음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관찰하기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예전 같았더라면, 크락션을 누르고 화를 분출하고, ‘어떻게 저렇게 운전을 하지?’ 하며 상대를 질책하는 정도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분명 제 마음속에는 분노가 일어났고, 동시에 ‘지금 화가 났다’고 알아차리는 어떤 앎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일어나는 여러 감정, 충동, 생각들 역시 그러한 일어남을 알아차리는 앎이 있었습니다.
먼저 '감정'이라는 것은 제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자동으로 올라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 경험에서도 화라는 감정은 분명 그 사건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저절로 올라왔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감정과 충동, 생각들도 마찬가지로, 제가 일부러 불러낸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번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마음은 마치 경로가 미리 설정된 내비게이션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경로를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과 생각의 흐름이 반복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제 마음이 예전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강한 '경향성'을 느꼈고, 여전히 그 경로 자체를 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제 마음속에 그런 경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경로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왜 늘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러할 것이라는 점도 예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마음속에서 경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의 경험 내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일어나는 감정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감정의 연쇄에 휘말리는 것은 매우 쉬워도, 애초에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제게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리고 감정과 충동과 생각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그 안에서 작은 변화의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 감정에 바로 휩쓸리지 않는 것은 가능해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감정과 감정이 너무 빠르게 이어져서,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감정에 올라타 버렸다면, 이번에는 그 흐름 사이에 잠깐 틈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감정과 충동, 생각들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일어난다는 사실에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비단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어떤 사건을 겪으면 감정이 일어나고, 그 뒤를 따라 감정과 충동과 생각이 자동으로 이어지고, 그 감정에 올라타 버리는 경우가 저와 같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틈이 생겼다고 해서 일어나는 감정을 바로 알아채고 휘둘리지 않는다는 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감정이 일어났을 때, “지금 감정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부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도 순식간이고, 그 뒤이어 올라오는 여러 감정과 생각들도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에 바로 알아채지는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난 뒤에라도 “아, 그때 이런 감정과 생각들이 일어났었구나” 하고 다시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비슷한 상황에서 감정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감정이 일어났을 때 그 감정에 올라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거의 자동적으로 감정이 ‘내 감정’이 되어버리고, 그 감정에 휘둘려 행동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알아채고, 그 감정에 바로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은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또 그대로 휩쓸렸구나” 하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라도 나중에 다시 돌아보는 일 자체가, 다음번에는 조금이라도 덜 휘둘릴 가능성을 높여주는 연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의 시간 동안, 제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에 뒤이어 일어나는 충동과 생각들을
일어나는 그 순간에 최대한 알아차려 보려고 하고,
그게 잘 안 되었을 땐, 시간이 지난 뒤라도 다시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또한, 감정의 연쇄에 바로 휘둘리지 않으려 시도해 보고,
마찬가지로 이미 휘둘려 버린 뒤라면, 나중에라도 다시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들을 일상 속에서 반복하다 보면, 감정이 일어나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니 그대로 두되, 그 감정에 완전히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여지가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