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여름 방학을 맞이한다는 기대감과 함께 한 장의 종이가 손에 들려졌다. 학생이라면 어련히 짐작했을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성적표였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행평가의 점수가 합산되어 최종 등급이 표기된, 성적표. 괜스레 벌새마냥 파닥거리는 심장을 애써 모른 척 교탁 앞으로 타박타박 걸어가 조심스럽게 그 낱장을 받아 들었다. 순번이 정확히 중간 즈음인 터라 이미 교실의 반 정도는 웅성거리며 주변과 등급, 성취도, 석차까지 모든 것을 낱낱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 정보는 원치 않음에도 흘러들어와 애꿎은 긴장만 돋우었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을 때와는 묘하게 다른 공기였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성적. 속으로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은 파닥거리고 —벌렁거린다, 쿵쿵거린다 따위의 표현은 맞지 않았다. 정말 벌새의 날갯짓처럼 빠르지만 미약하게 맥동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부실한 손목은 손 하나 제대로 지탱치 못해 손끝은 덜덜 떨렸다. 자리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서 눈높이까지 그 종이를 들어 올렸다. 공통수학, 공통국어, 공통영어, 통합사회, 통합과학, 한국사, 정보. 예체능으로 음악과 체육까지. 천천히 읽어 내린 등급은 다음과 같았다. 2, 1, 1, 1, 1, 1, 1, A, A. 공통수학이라는 글씨 옆에 떡하니 박힌 2라는 숫자가 거슬렸다. 중간고사 때 유독 긴장해 시험을 망쳤던 것이 화근이었는지 석차가 평소의 세 배는 떨어졌었다. 그나마 기말고사 때는 나았는데, 그것만으로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새그럽게 뛰어다니던 심장은 누군가 손으로 콰득 움킨 듯 순식간에 차게 식었다. 후우,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나직한 숨이 새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었느냐, 아쉬움의 탄식이었느냐 묻는다면 나조차도 대답하지 못하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2라는 숫자가 아주, 아주, 상당히 거슬렸다는 점이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A를 받는 것이 당연했다. 반 1등, 전교 1등이 너무나도 당연했으며 B와 2등은 내게 있어서 치욕이었고 실패였다. 고등학교에 와서 친 첫 모의고사, 3월 모의고사. 4월 즈음 성적표를 받았을 때 적혀 있던 석차는 국어, 수학 모두 반 1등이었다. 등급은 2~3등급 정도였지만. 절대평가 과목들도 영어 1등급, 한국사 1등급, 탐구 1등급. 여전히 중학생 수준의 정신 상태를 장착하고 있던 나는 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성적표를 대충 던져둔 채 사물함이나 뒤적거렸다. 몇 분 후 교실로 돌아오자 말도 한마디 섞어 보지 않은 자그마한 여자애 하나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하며 입을 떼길래 대충 짐작했다. 아, 성적 질문이겠구나. 잠깐의 머뭇거림 후 이어진 말은 예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네가 수학 1등이야? 중학교 때부터 성적을 이야기하고 다니면 썩 좋은 결과가 닥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뼈저리게 통감해 왔다. 매 시험이 끝날 때마다 점수를 물어보고, 수행평가 같은 일정이란 일정은 전부 내게 묻는다. 아, 물론 이 정도는 약과. 조별과제를 떠넘기거나, 공부 좀 잘하는 거 하나로 잘난 척한다며 아니꼽게 보는 놈들이 있었다. 그 이후로 입을 사리는 습관이 생겼다. 이번에도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정도였어, 하며 얼버무리려던 찰나 그 조그만 여자애가 다급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내가 2등이라! 남자애들 중에는 1등이 없는 것 같아서 너한테 물어봤어! 그 말에 나는 순순히 내 성적표를 넘겨주었다. 나의 핑계는 이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2등이면 쟤도 꽤 할 테니 함부로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겠지, 하는 어물쩍한 공감의 존재였고, 진심으로는 내가 너보다 우세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주었으면 하는 비열하게 스물거리는 바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교실 가운데 책상 종이 한 장을 둘러싸고 방금 그 여자애와 남자애들 몇 명이 웅성거렸다. 그다지도 놀랍지도 않은 놀라움. 와, 국어 수학 둘 다 쟤가 1등이야? 저 전교 석차 좀 봐, 탐구 등급은 또 어떻고. 아무리 진부한 찬사더라도 한 무리의 정점에 선다는 것은 늘 짜릿했다. 연이어 들려오는 감탄을 하나하나 새기면서도 무감한 척 다음 교시의 교과서나 꺼내는, 그런 모범생-우등생이 나였다. 그러나, 7월 22일 받아 든 그 종이 한 장으로 산산이 깨졌다. 2. 그 숫자를 본 순간 얼마 전 전해 들은 한 구절이 번뜩이며 뇌리를 스쳐갔다. 야, 요즘 대학들 2등급은 점수로 쳐 주지도 않는대. 세특, 진로, 동아리, 자율까지 챙기느라 발발발발 발에 불나랴 돌아다니고 나니 돌아온 것이 저 소리였다. 5등급제. 그놈의 5등급제 때문에···.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 제도를 만든 사람은 교육 실무에 관여해 본 적이 있기는 한 걸까. 주절주절 한탄만 늘어놓는 글이 되어 버렸다. 요즘 5등급제, 고교 학점제 때문에 자퇴율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던데, 정말이지 탁상공론의 산물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