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자퇴

목격

by 민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세특 챙기랴, 동아리 챙기랴, 진로 챙기랴, 교과 챙기랴 하며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1학기는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는 우매함의 극치다. 세상 돌아가는 것조차 모르고 느적느적 하라는 것 하고 하지 말라는 것 하지 않으며 살던 와중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반 인원이 줄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결석을 반복하던 한 남학생이었다. 나기를 사근사근하지도 않고 살갑지도 않았던 터라 말을 섞어 본 것이라고는 학기 초반 조별과제 때 딱 한 번이 다였다. 그럼에도 네 번째 열 맨 앞자리가 텅 빈 것은 유달리도 눈에 밟혔다. 후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자퇴했다고 한다. 자퇴. 그 별 것도 아닌 두 음절이 이상하리만치 뇌리에 깊게 새겨졌다. 아, 자퇴하고 싶다. 아, 그냥 확 자퇴해 버릴까. 아, 그냥 검정고시나 칠까. 중간고사를 앞두고, 수행평가를 끝내고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 정말로 자퇴한 사람이 생겼을 때의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든 기분은 당황스러움이었다. 혼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둘의 중간 즈음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묘한 결집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절대적으로 수시가 정시보다 편하다는 것이었다. 아, 물론 꼬리표로 생기부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달려왔지만 가볍게 흘렸다.


분명 내 기억 속의 그 남학생은 그다지 성적 면에서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지도, 유들유들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주도하지도, 모의고사 성적이 높지도 않았으니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의 나는 아마도 대학과 입시라는 것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서인지 특성화고에 진학한 친구들에 대한 무시가 은연중에 깔려 있었고, 대학을 가지 못하면 곧 실패라는 인식을 묻어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남학생이 자퇴했다는 소식에 당황했던 것 같다. 그나마 쉽다는 수시까지 버리면 대학은 어떻게 가려고? 이런 생각은 빙산의 일각. 소위 '인생 하드 모드'를 스스로 택하는구나, 하고까지 생각했다. 지금 와서는 참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 학생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정도는 가끔 생각한다. 그 학생에게 있어서 자퇴는 어떠한 생각의 산물이었을까. 한순간의 유수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계기마저도 불순하기 그지없는 나이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그 학생이 자퇴 이후로 소위 '인생 하드 모드'에 돌입했다면, 나는 약간의 안도를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기대심이 그 생각의 원천이었다. 지금은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할 일이나 잘 하자는 일념으로 그 관심을 죽이고 있지만···. 여전히 생각이 많은 것은 부정치 못하겠다.


그렇게 암류와도 같은 학교 생활을 지속하던 와중, 여름 방학이 끝나기 직전이라는 핑계로 무려 반년만에 중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났다. 주변과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던 나와 달리 친구들은 모이자마자 온갖 화두를 진열하듯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귓가에 맴도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자퇴, 자퇴. 새로운 두 명의 자퇴 소식이었다. 먼저 특성화고에 간 친구 한 명. 요리 관련으로 갔던 것 같은데, 적성과 맞지 않아 자퇴를 택했다고 한다. 이쪽은 당황보다는 황당에 가까웠다. 겨우 반년도 다니지 않았는데 맞지 않아 자퇴···. 누군가는 시원하고 빠른 결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굉장히 놀랐다. 아무래도 고입은 한 번 포기하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거기다 내년에 다시 입학한다고 해도 한 살 어린 학생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정말이지 굉장해 보였다. 그러나 이윽고 빠르게 생각을 접었다. 남의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해서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은 지긋지긋하게 깨달은 사실이다. 나중에 만나면 어느 과로 갈 생각인지 한번 물어나 볼까, 하는 작은 여지 하나로 그녀를 일축했다.


두 번째는 인문계 여고에 간 친구였다. 사실 이 친구의 소식에 가장 놀랐다. 중학교 때 가장 친했기도 하고, 같은 자사고를 준비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하면서 갑자기 왜 자퇴···?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 놓기도 전에 수다스러운 말상대는 눈치 좋게 답을 꺼내 주었다. 수시 포기하고 정시에 올인한대. 그 말을 들은 순간 잠시 주변이 고요해졌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순간 멍해졌다.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웅웅거려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혼돈에 휩싸인 기분이었다.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과, 멍청한 선택이라는 상반의 극치를 달리는 두 생각이 넝쿨처럼 단단히 엮여 어느 하나를 떼어낼 수조차 없게끔 얽히고설켜 버렸다. 천천히 숨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자. 그 여자애는 원체 야무지고 칠칠했으니 알아서 잘할 것이었다. 아니, 그렇더라도 훨씬 유리한 수시를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 이런 수도 없는 전음이 소곤거리며 제 의견들을 피력했다. 그러나 곧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단히 달아올라 아지랑이 피는 대지에 쏟아져 내리는 소낙비처럼 순식간에 그 모든 말을 싸늘하게 식히는 하나. 체념이었다. 그 친구의 의도, 현황, 미래까지 모든 것을 요란스럽게 추측해 나가던 의견들은 그럴 수 있지, 라는 한 마디로 단호히 일축되었다.


그 한 마디와 함께 순식간에 화두는 전환되었다. 침울하던 자퇴 스캔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케데헌 봤어? 비주얼 끝장나던데. 하는 가벼운 재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애니메이션을 보지도 않았음에도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가장 먼저 겪었던 남학생의 자퇴에는 몇 날 며칠이나 신경을 쏟았다. 내 일인 것마냥 고민했다. 잘한 일일까? 왜 그런 걸까? 그러나 어느덧 세 번째에 달한 가장 친했던 친구의 자퇴는 그럴 수 있지, 라는 무감각한 공감으로 마무리했다. 나 역시 자퇴에 익숙해진 걸까? 혹은 타인의 일에 쏟을 여력이 없는 걸까. 세 번의 자퇴는 아득한 질문 몇 개만을 던져둔 채 서서히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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