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애환

D-Day

by Jinw

이틀을 되짚어 본다. 좋았고, 많이 웃었다. 마음은 편안했다.
데이트는 분명 좋았다. 다만 나는 그녀에게 남자가 아니었다. 친구였다.

돌아오는 길, ‘내가 뭘 달리 했어야 했나’ 같은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든다.

지하철에서 내려 환승을 망설인다. 생각이 무거워 그냥 걷는다. 서른 분 남짓.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가 담배를 문다. 불을 붙이고 가로등을 올려다본다.
십 분쯤 그 자리. 사람과 차만 흐르고, 나는 정지된 듯하다. 숨만 들이마시고 내쉰다.


우리는 오래 친구였다. 그 즐거움이 어느 순간 설렘으로 급격히 부풀었다.
그래서 더는 친구로 남기 어렵다. 너무 좋아졌으니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치밀 때가 있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네가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좋지만 친구 이상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 말 앞에서, 내가 힘들다고, 당분간 연락은 멈춰 달라고 전했다.
그녀는 슬퍼했고, 나를 잃는 일이 두렵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나는 더 기울 것 같다. 그건 나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이기심과 배려가 한데 섞이고, 결국 멈추기로 마음을 정한다. 말로 정리하고, 몸으로도 거리를 둔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사이에 놓인다. 둘 다 씁쓸하다.

헤어지기 전까지 평소처럼 짧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나는 속을 감춘다. 표정은 가볍고, 마음은 무겁다. 더 붙들면 더 무너질 것 같아 생각을 접는다.


다시 걷는다. 집에 닿으니 조용하다.
이틀의 장면은 꿈처럼 남아 있고, 문이 닫히자 현실의 냉기가 따라붙는다.

꺼져 있던 맥북을 켜고, 플레이리스트에서 흔한 노래 하나를 튼다.
‘오늘은 흔한 하루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인다. 그 말이 버팀목 같다.

그럼에도 마음은 이미 넘쳐 있다. 예상보다 많이 쏟아졌다. 그래도 버틴다.

연락은 하지 않는다. 휴대폰을 뒤집어 두고, 물 한 컵을 천천히 비운다.
별일 없는 밤처럼 굴어 보고, 별일 많은 마음은 조용히 쓸어내린다.


이 밤을 흔한 하루처럼 마무리한다.

내일도 비슷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