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파도

D-Day + 1

by Jinw

잠은 얕다.미련, 아쉬움, 씁쓸함, 자책이 순서대로 들른다.

‘별일 아니다’고 눌러 보지만, 눌릴수록 더 선명해지는 종류의 일이라는 걸 인정한다.


칫솔질을 하는 동안에도 생각은 물거품처럼 끊임없이 올라온다.

어디서 어긋났는지, 무엇을 다르게 말했어야 했는지 같은 질문들이 되감긴다.

머리는 대충 넘기고, 손에 잡히는 옷을 집어 입는다. 거울은 아무 말이 없고, 조용함에 집을 나선다.


지하철로 향하는 발걸음은 평소와 같은 속도를 흉내 내지만, 마음은 뒤늦게 따라붙는다.

왜 하필 회사 근처에서 데이트를 했을까.

출근길이 낯설다. 어제 그 길을 손잡고 지났으니까. 이틀의 데이트가 이렇게 기울 줄은 몰랐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됐어요?” 장난 없는, 그저 안부에 가까운 질문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됐냐고.

악의 없는 질문에 웃음이 먼저 나온다. 웃음은 짧다. 씁쓸함이 뒤따른다.

자초지종을 말한다. 듣는 얼굴이 나보다 더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아닌가, 싶다가도 그냥 넘긴다.


자리로 돌아와 화면을 켠다. 커서는 깜박이지만 집중은 그 깜박임을 따라오지 못한다.

차라리 일이 산처럼 쌓여서 밤까지 붙들렸으면 싶지만, 오늘의 할 일은 애매하게 적당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헛웃음이 난다.

생각은 같은 자리에서 다시 고개를 든다.


연락을 할까, 그 한 줄이 마음 한가운데 서서 계속 깜박인다.

자존심을 접고 “그냥 옆에 있게만 해 달라”고 말해볼까, 아니면 침묵으로 정한 경계를 지킬까.

안돼. 그런데 하고 싶다. 두 마음이 서로 잡아당긴다.

너는 무슨 생각일까. 알 수 없다. 연락을 끊자고 말한 쪽이 나니까.


퇴근 시각이 오고, 머리를 비우고 싶어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소주한잔.

고민을 말로 털고, 미련을 담는다.

괜찮아지는 건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아직은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잘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길, 고민이 이자를 붙여 돌아온다.

일부러 세 정거장 먼저 내려 천천히 걷는다.

걸으면 낫겠지 하는 기대와, 별 수 없다는 체념이 번갈아 발을 내딛게 한다.


걷는 동안 ‘어떻게 했어야 했나’를 몇 번이고 되감는다.

자책은 멈추라 말해도, 발걸음은 그쪽으로만 간다.

어느 순간 마음이 터진다. 쏟아지는 것을 붙잡지 않는다. 지나가게 둔다.


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오면 공기가 다르게 들린다.

불을 켜고 컵에 물을 채워 한 모금씩 천천히 넘긴다.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놓고, 알림의 우연성을 거실 한쪽으로 밀어 둔다.

오늘을 ‘흔한 하루’라고 부르기에는 마음이 여전히 시끄럽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도 비슷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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