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 5.5
술을 끊겠다던 말이 무색하다.
친구와 잔을 마주한다. 오늘도 비슷하다. 하소연.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
어떤 친구는 응원하고, 어떤 친구는 나를 다그친다.
웃긴 건, 모두가 내 편이라는 사실은 같다.
같은 나를 보고, 다른 각도로 말이 나온다.
상황이 조금은 재미있다. 술 탓이겠지.
주변에 내 편이 많다는 걸 새삼 안다. 가족도 아닌데, 거의 무조건적인 편.
잘 살았다, 라고 생각한다.
조용히 잔을 내려놓는다.
집에 와 노래를 틀어 둔다.
가사를 알아듣는 곡은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모르는 팝송을 듣는다.
찾아보면 슬플 가사겠지. 굳이 찾지 않는다.
노래는 좋고, 날씨는 맑고, 일도 손에 잘 잡힌다.
모든 게 조금씩 맞물리는 기분. 나만 빼고.
가장 그리운 건, 아무렇지 않게 너에게 연락하던 순간들.
기억의 편린이 불쑥 올라온다.
내가 이 관계를 망친 걸까 하는 두려움이 여전히 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싶고, 다 내려놓고 희생하고 싶다는 충동도 있다.
‘내 마음만 숨기면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유혹이 고개를 든다.
뒤에서 ‘그게 정말 내 행복일까’가 따라붙는다.
묻는다. 널 보는 게 행복일까. 널 지우는 게 행복일까.
사실 답은 안다. 나는 나를 안다.
곁에 있으면, 나는 너를 더 많이 좋아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 관계는 끝나야 한다.
언젠가 내가 더 행복해지려면.
문제는 지금이 너무 힘들다는 것.
몸에 좋은 약이 쓰듯, 이 결정도 쓰다. 오래 남는 쓴맛.
내일은 네가 조금 더 희미해지기를 바란다.
아마 더 선명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