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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희 Apr 21. 2022

[지하철 단상] 5호선을 타며

그리운 아버지



5호선을 이용할 땐 정신을 잘 차려야 한다.      

천호역 다음 역인 강동역에서 두 줄기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은 하남 검단산 쪽인데      

마천행을 탔던 적이 여러 번이다.      

광화문이나 종로에서 전철을 탈 경우가 있다.     

집에서 좀 멀다 싶은 거리이기 때문에      

전철이 늦게 오면 조바심 난다.     

빨리 귀가하고 싶은 마음에     

들어오는 전철을 안 가리고 냉큼 타고 봤다.      

다행히 하남 검단산행이면 그대로      

타고 가면 되고 마천행이면      

강동역에 내렸다가 다시 하남 검단산행으로      

바꿔 타면 되는 거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가 낭패를 본적이      

한두 번 아니다.     

깜빡 잠이 들거나      

급한 문자에 답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다가      

내려야 할 강동역을 지나쳐버리기 일쑤였다.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조카 녀석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연락이 없는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반대로 가는 마천행을 탄 거다.      

되돌아오자니 시간이 훨씬 더 걸려버렸다.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고 투덜거리는      

조카한테, 어디에서 타든      

마천행은 통과시키고 하남행만 타라고 당부했다.      

그건 나한테 입력시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 후론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하남행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올라탄다.     

          

     


오늘도 5호선을 타고 들어가는 길이었다.      

동네 주거래은행에 볼일이 있는데      

마감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아직 10분이 남아 있으니 문 닫기 전에      

은행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괜찮을 일이었다.     

     

막 내릴 준비를 하는데 어느 분이      

"아이코, 난 마천으로 가야 하는데."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내려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같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아가씨가 승차장까지      

안내해주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가씨는 총총히 계단으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그분을 안내해드리고 싶었지만      

은행 마감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얼핏 70 후반은 넘어 보이는 분이      

지팡이에 의지해      

불안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늙수그레하고 움직임이      

어눌한 그분을 보다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강인한 분이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느 날부터인가 걸음이      

부자연스러워졌고,      

초라한 노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나이엔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      

살펴드리질 못했다.     

          

     


     

아버진 무릎관절이 안 좋으셨던 것 같다.     

드시는 약이 무척 많았는데      

어떤 성분인지 몰랐고 별 관심도 안 두었다.     

     

그런데 아버지 몸이 점점 풍선처럼 부풀었다.     

배가 남산만 해서 맞는 옷이 없을 정도였다.     

걸음을 몇 발짝도 못 걸을 지경이 됐다.     

아버지를 모시고 나들이하려면 양쪽에서      

부축하고 느리게 가야 했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주범은 스테로이드      

과다 복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릎 통증을 없애기 위해 아버지는 약국에서      

꾸준히 약을 지었고     

단골약국 약사는 점점 스테로이드 양을      

늘렸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 약사가 통증을 낫게 해주는      

최고의 약사라고 늘 칭찬하셨다.     

     

약에 대해 무지했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오래 방치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사망에 이르셨을 거라 했다.     

당장 그 약을 끊으라고 했다.     

의사의 처방으로 약 부작용은 가라앉았지만     

아버지의 다리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화장실 이용조차 어려운 상태가 되자      

엄마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문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으셨더라면     

백수를 누리셨을까.     

수술 한번 못 해 드린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     

     

*     

전철에서 만난 그분은      

헤매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을까.     

불편한 걸음으로 계단은 못 오를 텐데      

엘리베이터를 잘 찾았을지.     

오후 내내 마음이 쓰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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