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피아노

by 정성희


그리운 나의 피아노


30년을 내 몸처럼 같이 했던

피아노를 떠나보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3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피아노의 존재감.

이제야 제정신이 드는지

간절하게 보고 싶다.


피아노는 나의 친구였고 연인이었다.

다른 사람이 반려동물을 품을 때

나는 피아노를 품고 살았다.

종일 집 안에 있어도 답답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피아노가 나를 위로해주었고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출중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갖추었거나 프로

피아니스트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인생사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무딘 내 손놀림을 투정 없이 받아주던

고마운 피아노였다.



그런 피아노에게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2018년 인사도 못 한 채 엄마를 떠나보낸

충격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피아노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때 이후로 피아노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서른 살에 드디어 내 집 마련을 했다.

결혼 5년 차가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회사 조합아파트라 기회가 좋았다.

강동구 천호동에 29평형 아파트로 입주하면서

가구를 새로 들였다.

새 집 분위기에 맞춰 피아노도 바꿨다.

결혼 전 피아노 교습소 하면서 사용하던

키 높고 무거운 업라이트 피아노를

팔고, 아이보리 예쁜 피아노를 산 것이다.


아이보리 피아노는 나의 역사가 되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냈을 때,

급하게 합의금 5천만 원 마련하느라

세를 놓고 이사할 때도 같이 했다.


고덕동 5층짜리 연탄보일러 아파트에

살다가 광주까지 먼 길을 떠날 때도

따라갔다.

광주에서 사업하다 부도를 내고,

수억 원의 연대 보증을 떠안고 이혼을 하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살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고

비참하게 쫒겨날 때도 아이보리 피아노만은

나와 꼭 붙어 다녔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월세방을

전전할 때도

피아노는 나와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30년, 희로애락을 묵묵히

지켜보아 준 산 증인이었다.


나의 분신 같은 피아노를 버리다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이제 와 깊은 후회가 남는다.


3년 전, 같이 일하던 운전기사에게 속아

8천만 원 정도를 날리고 공황장애에 허우적 댔다.

바보 같은 삶 정리하고 싶었다.

가지고 있던 책이며 침대, 냉장고,

사랑스러운 피아노까지 미련 없이

모두 내다 버려야 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피아노.

글을 쓰며 알았다.

얼마나 그 피아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건반의 감촉을 느끼고 싶어

몸살 날 지경이다.


어디서 푸대접을 받고 있지나 않는지.

중국으로 싸그리 수출한다는데

함부로 부서지지는 않았는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리다.


어느 누구에게 가 있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스몸비'가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