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서 하늘과 달리는 법

01 자연과 환경

by 우주

중학생 때였다. 경북 예천의 큰이모 댁에 가서 며칠 지내다 온 적이 있다. 워낙 소심하고 여렸던 나이라 친구 관계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그곳에서 뜻밖에도 큰 위안을 얻고 오게 된다. 그 위로 받은 기억으로 남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이었다. 아주 늦은 밤도 아니었다. 시골길을 잠깐 산책하러 나가고 싶어져서 그렇게 했다. 문밖을 나서서 도로까지 올라가는데, 도시와는 사뭇 달랐다. 가로등이 켜진 자리만 빛을 받아 밝았는데 가로등이 도시처럼 자리마다 서 있지 않았다. 어렸을 때 귀신 이야기를 보고 잘 때 이후로는 처음으로 밤이 무섭게 느껴졌다. 밤은 정말로 깜깜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무서워져서 돌아가야 하나 싶어 별이라도 보고 가려고 고개를 하늘로 들었던 그때였다. 무수히 많은 별이 하늘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흰 별들이 조용히 찬란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몸을 빛내고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을 처음 봤다. 도시에서 살 때는 별이 많아 봤자 4~5개가 보였다. 별이 이렇게 많이 보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별이 나의 속도에 맞춰 걸음을 함께해 줬다. 내가 뛰면, 흰 별들도 파도치며 나와 함께 뛰어줬다. 그 순간 나는 캄캄한 밤 아래 혼자가 아니었다. 말 하나 없이도 서로 통하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환희에 차 시골길을 따라 달렸다. 일렁이는 별들과 함께 달렸다. 내게 골칫거리였던 크고 작은 문제들을 그 순간에는 전혀 떠올리지 않았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땅을 달렸고, 별도 나를 보며 하늘을 달렸다. 그게 오직 전부였다. 그날 밤 두근거리는 마음에 쉽게 잠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날 낮에는 예천의 냇가로 놀러 갔다. 옷이 물에 젖는 게 싫어 망설이는 것도 잠시, 누구 하나가 물 안으로 발을 담그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물에 들어가서 다슬기를 잡으며 놀았다. 물은 맑고 차가웠다. 맑은 하늘 아래 태양이 내리쬐고, 차가운 물에 어느새 온몸이 다 젖은 채 웃고 있으면 걱정도 고민도 하찮게만 느껴졌다. 얕은 물이라서 수영을 할 수는 없었지만, 몸이 젖을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그날 거기서 놀던 우리들은 그 기억을 먹고 자랐다.

큰이모는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소도 키우셨다. 소에게 밥 주는 일을 해보고 싶어 자원했던 기억이 난다. 여물을 주려고 작은 외양간 안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소와 거리가 가까워서 놀랐다. 소는 배가 고팠는지 내가 조금만 손을 뻗어 밥을 주려는 자세를 취하면 긴 혀를 내밀어 닿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어린 마음에 처음 보는 소의 기세 좋은 혓바닥에 놀라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소는 필사적이었다. 그런 몸부림이 무섭기보다는 애처롭게 느껴져서 도망가지 않고 밥을 줄 수 있었다. 소는 꼭 며칠 굶은 사람처럼 크고 맑은 눈을 치켜뜨고는 목을 빼 혀를 휘두르며 받아먹었다.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밤하늘과 별, 차가운 물과 다슬기, 소와 혓바닥에는 생명이 있었다. 생명이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나의 생을 살아가는데 급급해서 자주 잊을 뿐이지, 자연은 인간과 공존하며 내가 그러하듯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지고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을 본받아 내게 남은 생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것들과 앞으로도 함께 잘 살고 싶다.



오늘 새로운 에세이를 못 쓸 것 같아서 작년에 썼던 글을 올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글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한 주간 고생하셨습니다!

주간 에세이 01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