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듀밸리와 세로 시작하는 남성에 대하여

게임 에세이 01

by 우주


‘스타듀밸리’라는 게임이 있다. 1인 개발 도트 게임이며, 농장 게임이다. 기본 콘텐츠 자체는 고전적이다. 농사, 낚시, 채광 및 전투, 채집. 도시에서 일하다 사람 같지 않은 생활에 싫증을 느낀 주인공 ‘나’가 펠리컨 마을이 있는 시골 ‘스타듀밸리’에 가서 귀농한다는 스토리다. 스팀 기준 플레이 시간이 222시간인데, 모바일과 아이패드로 스듀를 한 시간을 합친다면 훨씬 많이 했을 거다. 전에 저장 공간이 부족해서 한번 지웠다가 깔았더니 모바일 기기에서의 플레이 시간은 날아가서 확인이 불가하다.


나는 게임에 현질을 안 하는 주의이다. 게임 같은 비생산적인 것에 내 돈을 소비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게임을 하지 않았겠지. 그냥 돈이 없어서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이 게임을 알았는데, 그때는 스팀 계정도 없었을뿐더러 당시 한 달 용돈이 5만 원이었나 그랬는데 1-2만 원짜리 게임을 구매하는 게 망설여졌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나중에 어른 되면 사야지!’ 하고 참았다. 내가 그전까지 했던 게임들은 게임 자체는 무료여서 구매부터 해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쿠키런, 모두의마블, 롤, 로스트아크처럼.


그렇다면 ‘게임에 쓸 돈이 없는 거 아니고?’라고 물으실 수도 있겠다. 정확히는, 현질을 시작하면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워서다. 자본주의 시대의 게임에서의 현질은 당연히 상업적인 의도를 가졌다. 돈을 내면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쁜 스킨이라거나, 희귀한 한정판 아이템이라거나. 나도 자본주의에 찌든 개인인지라 그런 것들이 갖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에 끝이 없다는 건 게임에서만 통하는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욕심이 생겨서 모든 것을 탐내는 마음보다 귀차니즘이 강한 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본격적으로 스타듀밸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 사람마다 돌잡이에서 잡는 게 다르듯, 이런 힐링 막노동 게임에서도 좋아하는 분야가 다 다르다. 나의 경우 낚시를 제일 좋아한다. 물론 현실 낚시에는 정말 요만큼의 관심도 없다. 현실에서 낚시 얘기가 나오면 안광이 죽을 정도로 흥미가 없다. 그러나 스듀에서의 낚시는 다르다. 낚싯대를 던지고, 물고기가 물 때까지 기다린다. 내 캐릭터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뜨고, 물고기가 잡혔다는 신호음이 들리면 재빨리 클릭해서 마우스를 눌렀다 뗐다 하며 완벽한 낚시에 집중한다. 산의 호수, 마을의 강, 바다, 숲, 동굴 등 각 위치와 시간과 계절에 따라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다 다르다. 어떤 물고기는 비 오는 날에만 잡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일단 낚싯대를 들고 신나게 뛰어가면 된다. 게임 중독자 같은 얘기지만, 혼자 스듀를 할 때 낚시하면 물고기를 잡는 동안은 시간이 멈춘다. 스듀에서의 하루는 현실에서의 20분 정도에 해당하는데, 만약 당신이 하루 종일 낚시만 한다면 20분은 가뿐히 넘길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스타듀밸리를 연애 시뮬레이션 비슷한 것으로 아실 것이다. 시골 마을에 사는 여러 캐릭터에게 말을 걸고, 선물을 주며 호감도를 높이면 연애할 수가 있다. 심지어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거나 입양해 올 수 있다. 나는 애니메이션도 더빙보다 원어로 보는 걸 좋아하는지라 스듀도 기본적인 이미지를 좋아한다. 이른바 순정파인 것이다. 리텍이라고, 금손들이 만든 아름다운 이미지로 모드를 변경하면 세상 잘생기고 예쁜 애들과 연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원작의 애들이 원작 캐릭터 설정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가끔 못생겨서 리텍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취향은 존중하지만, 나의 취향도 존중해주셨으면 한다.


내가 연애할 수 있는 NPC 중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세바스찬이다. 외관은 스네이프 교수님을 닮은 것 같다. 옷도 어둡고, 머리색도 어둡다. 재혼 가정에서 새아빠, 친엄마, 새아빠의 딸과 함께 산다. 목수의 아들인데, 혼자 지하실을 쓴다. 컴퓨터를 쓰는 직업이라 주로 방에 틀어박혀 있는데, 게임 초반의 봄에는 저녁 7~8시쯤 그의 집 근처 호숫가에 가면 담배를 피우러 나온 그 녀석을 만날 수 있다. 사회성이 없을 것같이 생겨서 은근히 대화가 되고, 가끔 웃는 얼굴이 어딘가 처연해서 마음이 가는 녀석이었다.


캐릭터들과 호감도를 쌓으면 일정 구간마다 이벤트가 발생한다. 그 이벤트를 통해 캐릭터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으며,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말을 걸었을 때 하는 대사를 통해 다른 NPC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세바스찬의 경우 새아빠 드미트리우스가 친딸인 마루와 양아들 세바스찬을 차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드미트리우스가 세바스찬이 만든 눈사람은 치워버리고 마루의 눈사람만 남겨두었다고 불평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애초에 목수네 아들인데 혼자 지하실 쓰게 하는 것부터가 너무하다. 그럼 나 같은 인간은 ‘내가 이 녀석의 구원이 되어주마’ 하고 마는 것이다. 결혼하면 NPC가 내 집으로 들어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의 애칭은 세비다. 이름이 네 글자면 부르기에 길기도 할뿐더러 세비라는 애칭 자체가 귀엽지 않은가? 이 녀석과 연애하면 퍽 다정한 말을 해서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데, 문제는 결혼하면 가끔 속을 뒤집어놓는다는 것이다. 원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애라 그런가 은근히 독립적이다. 그것까진 괜찮은데, 아침부터 집 나가서 오토바이 아래 들어가 뚱땅대고 있는 꼴을 보면 뒷목이 살짝 뻐근하다. 비 오는 날이면 개구리를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꼬실 땐 귀여워 보였는데 결혼하고 들으니까 ‘하이고 이 철부지야….’ 싶다. 이것이 연애와 결혼의 차이일까? 슬라임 키우자고 해맑게 얘기하는 것도 킹받지만 나는야 사랑에 약한 여자, 그냥 로빈한테 가서 슬라임 사육장을 건설해달라고 한다. 농장의 미관을 해치는 것이지만 남편이 원한다면 해줘야지.


늘 혼자서 스듀를 하다가 요새 함께 협동 플레이를 해주시는 분이 나타나셔서 주기적으로 스친자 생활을 하고 있다. 비록 그분에게 나의 세비를 빼앗겼지만…. 호감도는 내가 먼저 진작에 다 올려뒀는데 방심하다가 뺏겼다. 지대 짱나지만 덕분에 흑화해서 모든 연애 가능 NPC들을 다 꼬시고 다녔다. 덕분에 관심 없던 캐릭터들의 서사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다들 사연을 알고 보면 미운 애가 없다. 호감도가 높으면 가끔 NPC들이 아침마다 편지와 선물을 보내주기도 한다. 셰인이 이 분야 갑이다. 얼굴과 정반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 자신이 일하는 마트 뒷방에서 슬쩍했다나 하며 피자 같은 걸 보내주는데, 알코올중독 이력이 있으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제법 기특하다.


다들 초반엔 좀 싸하고, 도시에서 이사 온 나에게 쌀쌀맞다. 꼭 섬 사람들이 육지 사람에게 정을 안 준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생일에 사랑하는 선물을 주면, 호감도 3씩 오르고, 그 정도만 올라도 금방 마음을 열어준다. 마을의 의사인 하비는 커피를 사랑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헤일리는 해바라기와 핑크 케이크를 사랑한다. 헤일리의 언니 에밀리는 보석을 사랑하고, 알코올중독 엄마와 함께 사는 페니는 에메랄드와 양귀비를 사랑한다. 조각가인 레아는 염소 치즈와 와인을 사랑하고, 앨리엇은 석류와 바닷가재를 사랑한다. 셰인은 맥주를 사랑한다. 초사이언 머리를 한 샘은 피자를 사랑하고, 헬스 광인 알렉스는 계란을 좋아하며 연어 정찬을 사랑한다. 마루는 금 주괴를 사랑하고, 탐험가 기질이 있지만 헬리콥터 아빠를 가진 애비게일은 호박과 자수정을 사랑한다. 최근에 애들이 사랑하는 선물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줘서 그런가, 찾아보지도 않고 술술 써 내려가는 나 자신을 보니 멋지기도 하고 썩소가 나오기도 한다.


아, 그리고 호감도가 빨간빛으로 많이 올랐을 때쯤엔 뽀뽀가 들어가는 이벤트가 나오는데 그게 참 귀엽다. 내가 먼저 하는 경우도 있고, NPC가 먼저 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애들마다 각자의 성격이 보여서 귀엽다. 이건 혹시라도 스듀를 직접 플레이하실 분들을 위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힐링 노동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바로 스타듀밸리를 하세요! 다만 현재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꼭 나중에 하셔야 합니다. 이거 한번 시작했다 하면 드라마나 웹툰 정주행하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농사하고, 물고기 잡고, 베리 따러 다니고, 돌 캐고 다닙디다.


모드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건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주관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괴출밸리라는 모드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거라면 해보고 싶을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협동 플레이를 하면 같이 하는 사람도 그걸 깔아야 하나보다. 그럼 또 굳이 싶어서 아마 깔지 않을 것 같다. 연애 가능 NPC 모두와 한 번씩 결혼하는 날까지 아마 내 스듀 라이프는 계속될 것 같다. 그래도 새벽에 하면 다음날이 아예 망가지니 이젠 낮에 하기로 약속했다. 낮에 12시간을 하는 건 또 그거대로 문제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세비나 셰인이랑 다를 게 뭔가 싶기도 하다.


적다 보니 지금도 스듀에서 낚싯대를 잡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할 일을 다 끝내기 전에는 절대 게임을 켜지 않겠다. 불편한 마음으로 하는 게임보다 할 일을 다 끝낸 뒤에 가상의 현실 속에서 제대로 된 무제한 힐링을 제공받는 편이 나도 즐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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