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에세이 01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부터 밤 11시까지 알바를 한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알바를 하면 좋은 점은 비싼 아이스크림을 소확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서른 한 가지 맛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초콜릿 칩이 박혀있는 초콜릿 무스다. 초콜릿도 맛있다. 그러나 너무 클래식이고, 엄마는 외계인은 배라 알바생이라면 정이 떨어질 녀석이다. 이번 달 맛인 위대한 비쵸비도 맛있긴 한데, 내 순정은 초무다. 워낙 초콜릿을 좋아하는 데다가, 무섭게 맛있는 아는 맛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그 아이스크림을 이번 주에 먹지 못할 뻔한 사태가 일어났다. 이유는 바로 오늘의 주제인 무뼈 닭발에 있었다.
월요일이었나, 오랜만에 막내가 집에 들렀다. 연애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로 해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먹을 안주 겸 야식을 골랐다. 후보로는 닭발, 골뱅이무침, 치킨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주 목요일에 나에게 너무 맛있는 닭발집을 추천해 준 알바 동료와 함께 ‘닭발…. 닭발이 먹고 싶어요’ 하며 농구가 하고 싶은 정대만처럼 울먹인 기억에 닭발로 목적지를 정했다. 밤에 카페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가 왔는데, 집에 와보니 아직 닭발 님께서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후다닥 샤워를 했다.
저녁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었을까? 그래도 계란찜에 주먹밥까지 있어서 안심했는데, 여기 닭발이 꽤 매운 편이긴 했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직장인들은 금요일 밤이 제일 신나듯, 알바를 하는 사람들도 주중에 알바가 끝나는 날이 지나면 가장 신날 것이다. 내가 그런 상태였다. 진상 손님과 미치도록 딱딱한 아이스크림에서 해방이 된 것을 자축하며 닭발이 포장된 플라스틱 용기 뚜껑을 열었다. 방금 막 배달이 온 용기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뚜껑을 열자마자 갇혀 있던 아름다운 향기가 퍼졌다. ‘아, 이거 먹으면 내일 배 오지게 아프겠구나.’ 하는 설레는 생각을 했다. 서둘러 같이 온 미니 플라스틱 칼로 계란찜과 주먹밥의 비닐을 뜯어냈다. 집에 있는 커다란 그릇에 밥과 김 가루를 붓고, 숟가락으로 대충 섞었다. 술집에서 알바한 경력이 있는 막내가 자신이 주먹밥을 만들어 주겠다며 나섰다. 뜨거워하면서도 열심히 만드는 게 당차길래 냅뒀다. 그동안 나는 냉장고에서 준비된 칭따오 캔맥주와 작은 캔콜라를 꺼내 입구를 휴지로 닦았다.
대망의 첫입을 먹기 전에 우선 계란찜부터 한 입 먹었다. 당장 닭발을 입에 넣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내 예민한 속이 버텨내지 못할 걸 알았다. 계란찜은 뜨겁고 포슬포슬했다. 말캉한 식감이 부드럽게 입안에 퍼졌다. 달콤하고 짭짤한 온기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행복했다. 그다음에서야 메인 요리인 닭발을 조심스레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진짜 맛있었다. 닭발의 생김새 때문에 못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평소에는 별생각이 없지만 저 순간만큼은 ‘닭발의 맛을 모르는 당신들이 불쌍해요’ 모드였다. 나도 초면엔 약간 징그럽게 생겼나? 싶었지만 한번 그 맛을 느끼고 나면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돌뼈에 비하면 말캉하지만 씹기는 해야 하고, 괜히 피부가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에 제일 중요한 건 불맛. 이 불맛과 불향이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든다. 내게 닭발 하면 떠오르는 건 식감이 둘째고, 첫째가 불맛이다. 불맛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음식이 몇 없다. 기억해라, 닭발은 불맛이다.
오돌뼈도 그렇지만, 닭발만 하나 입에 넣어 본연의 맛을 즐겼다면 그다음은 김에 싸 먹어야 한다. 김, 이 얇고 짭짤한 것은 참 대단하다. 한국인은 김과 김치, 밥만 있어도 한 끼를 해치울 수 있다. 아무튼 이 김은 닭발과도 조합이 좋다. 매콤하고 물렁물렁한 닭발을 얇고 바삭한 김에 싸서 입에 넣으면 맵짠단짠한 것이 군침이 싹 돈다. 잃어버린 식욕도 저세상에서 버선발로 달려오는 맛이다. 그렇게 두 입을 먹고 나면 다시 한번 계란찜을 먹고 주먹밥으로 입과 속을 달래준다. 이곳의 주먹밥에는 날치알 같은 건 없지만, 참기름이 있다. 아주 크게 될 집이다. 밥+참기름+김 가루? 게임 끝이다. 참기름은 냄새부터 지고 들어갈 일이 없다.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니 냄새만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200% 해내는 게 참기름이다. 주먹밥은 별거 없어 보이는데 닭발과 함께 존재해야 하는 소울메이트다. 동글동글하게 말린 주먹밥을 먹고 나면, 귀찮으니 다 만들지 않아서 그냥 밥의 형태로 있는 것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는다. 그리고 새로운 닭발을 입안에 하나 추가한다. 내내 행복하다.
맥주가 뒷전이 됐다. 미리 따 두면 김이 빠져서 맛이 없기 때문에 맥주를 먹기 직전에 개봉한다. 치이익, 하면서 열리는 소리는 요즘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내게 설렘을 안긴다. 동생과 캔맥주를 부딪치며 육성으로 “쨘!”을 외친다. 흘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다 대면 맥주 향이 훅 끼친다. 방금 딴 맥주 냄새는 신성할 지경이다. 디오니소스가 왜 기타를 좌우징좌우징 쳤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 녀석은 포도주와 음악이니 좀 더 고급스러웠겠지만. 맥주를 입에 넣으면 알코올 향이 확 느껴진다. 소주에 비하면 약하지만, 사실 난 원래 소주보다 맥주 파다. 다만 방광이 너무 작아서 밖에서 술을 마시면 맥주보다 소주를 먹는 거다. 화장실 자주 가기 귀찮으니까. 그래서 집에서는 소주보다 맥주를 마신다. 덜 취하고, 배부르고, 화장실 가는 것도 몇 걸음만 떼면 문제없으니까. 큰일 났다. 적다 보니 또 맥주가 땡긴다. 일단 참고 마저 쓰겠다. 이 맥주도 은근히 호불호 갈리는 술이다.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맥주에서 나는 보리 같은 맛이 별로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그냥 시원하면 장땡이다. 시원하고 차가운데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어라? 적다 보니 금주 캠페인 공익 광고 멘트로 쓸 수도 있겠다.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한입 먹고 다시 닭발을 먹는다. 이제 슬슬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알레르기 이후로 체질이 바뀌어 남들보다 땀이 엄청 잘 나게 되었다. 그런데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샘이 더 개방되지 않는가. 어느새 내 옆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 있다. 땀은 신기하다. 조금 난다 싶었는데 어느새 송골송골 맺혀서 휴지로 닦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개체수가 늘어나 있다. 약간 나면 신경 쓰이지 않을 텐데 적당히 매워야지, 거슬릴 정도로 땀이 난다.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땀을 빠르게 닦은 뒤 다시 미식 산업에 착수한다.
음식 에세이라고 너무 먹는 얘기만 한 것 같다. 어느새 2페이지를 꽉 채워가는데, 이게 다 먹을 거 얘기라니. 요즘 가을이라 입맛이 돌아왔나? 닭발을 이렇게 저렇게 어느 정도 즐긴 후에는 새로운 안주를 본격적으로 꺼낸다. 바로 술과 안주에 빠질 수 없는 ‘이야기’다. 새벽까지 진대를 하며 계획대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상세한 이야기는 당사자에게 허락을 구하기 귀찮으니 생략하도록 한다. 이상으로 9월의 행복했던 찰나에 대한 기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