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죽은 걸 왜 국가가 책임지냐"는 말

이태원 참사를 돌아보며

by 까마귀

1. 방파제와 낚시꾼


한때 유튜브에서 낚시 영상을 즐겨 보곤 했다. 그 중에는 낚시 유튜버들이 테트라포트 위에서 낚시를 하는 영상들도 있었다. 볼 때마다 위험천만해 보였다. 테트라포트는 하나에 약 2톤씩 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고, 그런 구조물들 수백~수천 개를 쌓아놓은 게 방파제이다. 유튜버들은 대부분 영상 중간에 “테트라포트 위는 보기보다 미끄럽고, 그 사이로 빠지면 구조되기 어렵기 때문에 주의하시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낙상사고도 많이 나서 낚시 금지 표지가 붙어있는 곳도 많다고 한다. 사람이 한 번 빠지면 테트라포트에 붙어있는 굴이나 따개비에 긁혀 상처를 입기 쉽고, 떨어지면서 콘크리트 덩어리에 충돌하여 골절상을 입는 경우도 꽤 많다.


주말에 취미삼아 바닷가에 낚시를 하러 간 낚시꾼A가 방파제 위에서 추락하면 어떻게 될까? 같이 간 동행이나 주변 사람들이 경찰이나 119에 신고할 것이다. 구조대원들은 사고장소에 도착하여 어디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파악할 것이고, 가능하다면 구조를 시도할 것이다. 테트라포트는 위험하기 때문에 한 명을 구조하는데 전문적으로 훈련된 대원 4~5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4~5명이 온 힘을 다해 천만다행으로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우리의 낚시꾼을 구조했다고 하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해당 지역이 위험지역이었다면 낚시꾼은 가벼운 핀잔을 들으며 벌금을 낼 것이고, 아직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어서 아무런 표지판도 없었다면 구조당국은 이제 “주의! 낙상사고 발생지역”이라는 표지를 붙일 것이다. 만약 낚시꾼이 죽었다면, 구조대원들은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유족에게 사망 사실과 사인을 알리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표지판을 붙일 것이다. 그리고 낚시꾼이 살았든 죽었든 해당 구역을 관할하는 인력은 사고예방 및 대처 매뉴얼에 비추어서 책임소재를 파악하고 징계 혹은 포상 조치를 할 것이다.


왜 A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놀러갔다가 죽거나 다친 것인데 말이다. 나라 구하려다 죽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웬만한 지각능력이 있다면 테트라포트 낚시가 위험하다는 사실쯤은 알았을 텐데 말이다. 그 사람이 자기 좋으려고 낚시하다가 떨어져 죽은 게 나라 책임인가?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괴한의 칼에 찔리거나, 교통사고에 휘말리거나 해서 죽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놀다 죽은 낚시꾼 한 명이 뭐라고 구조대원 네다섯명을 힘들게 하냐는 것이다.

테트라포트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출처: 울산매일)


2. 방파제와 국가


그 답은 그리 간단치는 않다. “국가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왜 각자도생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서 부족을 만들고, 비교적 최근에 와서는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사는 걸까? 나는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아서”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으면 언제 호랑이한테 물려갈지 모르고, 언제 남이 내 쌀을 뺏어갈지 모른다. 자연 상태에서 개인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미약한 “나”가 “내가 아닌 것”에 맞서 내 것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가족과, 이웃과 함께한다면 더 이상 “나”가 아닌 “우리”라는 개념이 생긴다. 열 명이 따로 창을 들고 자기 집을 지키는 것보다, 열 명이 모여서 큰 울타리를 만드는 게 낫다. 맹수가 득시글한 밤마다 불침번 한 명을 세우고, 큰일이 생기면 바로 호루라기를 불어서 열 명을 깨울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나”밖에 없었던 시대처럼 열 명 모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필요가 없어진다. 개인은 가족이 되고, 가족이 모여서 부족이 되고, 규모가 커져서 국가라는 집단이 탄생한다. “나”가 “우리”로, “우리”가 “한국인”으로 정체성이 아우르는 범위가 점점 커진다. “야경국가”의 탄생이다.


야경국가란 복지국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가 공안(공공의 안전)과 국방 등 국가와 그 국민의 기본적인 존립과 안전만을 책임지는 국가형태를 말한다. 공안의 범위는 정의하기 나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개념을 범죄통제를 뜻하는 치안과, 화재진화/구조/재난대비 등 전반적인 사회안전 두 가지를 포괄하는 뜻으로 이해한다. (야경국가는 원래 시장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탄생한 국가철학으로, 국가는 사유재산의 보호만 담당하면 된다는 개념이지만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맥락으로 사용한다)


3. 방파제와 대한민국


“놀다 죽은 걸 왜 국가가 책임지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 노는 것은 행복 추구를 의미하고, 죽은 것은 생명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즉 해당 질문은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다가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해 국가가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로 바꿀 수 있다. 이 질문을 우리 사회의 최상위규범인 헌법과 대응시키면,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생명권이 대립할 때, 국가의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로 해석할 수 있다.


정답은 없다. 국가의 역할의 범위는 그 구성원 간의 합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이 질문에 대해 그동안 어떻게 답해왔는지는 알 수 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위 예시를 해석해보자. 낚시꾼이 방파제 위에서 추락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소방대는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출동한다. 이는 개인이 자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이 다소 위험에 처할 만한 상황에 스스로를 빠뜨릴 경우라도, 대한민국은 그 구성원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투입해 왔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는 적어도 (가장 작은 정부형태인) 야경국가가 보장하는 “공안”이라는 개념을 비교적 넓게 해석하는 사회라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재해 등 철저하게 외부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가 촉발한 안전사고에도 국가가 개입해 왔기 때문이다.


4. 방파제와 이태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거리(출처: 국민일보)

2022년 10월 대한민국에서는 이태원 거리에서 159명이 압사당하고, 195명이 부상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 중에는 할로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나온 남녀가 많았다. 죽고 다친 인원 전부가 “놀러” 나온 것은 아니겠지만, “놀다 죽은 걸 왜 국가가 책임지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들이 모두 놀러 나왔다고 하자.


이들이 위 낚시꾼A와 무엇이 다른가? 테트라포트에 낙상사고의 위험이 있듯이 이태원의 좁은 골목도 많은 인파에 취약하다. 낚시꾼이 취미생활을 즐기러 나왔듯이 이들도 이성을 만나기 위해서든, 코스튬을 입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든 놀러 나왔다. 한 가지 미세하게 다른 점을 찾자면, 잔뼈 굵은 낚시꾼은 테트라포트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이날 이태원을 찾은 사람들은 이태원 거리에서 인파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방파제 앞에 사고방지를 위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그동안 이태원 거리에도 할로윈 때가 되면 질서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경찰력이 투입되어 안전을 보장했고, 그 덕에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낚시꾼처럼 개인의 행복추구를 위한 선택의 결과 위험에 처한 것이라면, 대한민국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투입했어야 한다. 통상 투입한 규모의 인력으로는 예방이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면 사후적으로 빠른 대처를 했어야 하고, 사후적으로 빠른 대처를 했어도 인명피해가 불가피한 일이었다면 정말 그랬는지를 확인했어야 한다. 낚시꾼 한 명이 죽으면 소방대원 4-5명이 투입돼서 사망원인을 파악하고 추후 사고예방을 위해 신상필벌, 표지판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하듯이, 사람 159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죽으면 왜 죽었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사고예방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했어야 한다. 집권여당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을 건의하는 것, 행정”안전”부 장관이 예방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나로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놀다 죽은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이유는, 대한민국은 놀다 죽은 것도 책임지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이에 장애가 되는 위험요인을 개인이 아닌 국가가 가능한 범위까지는 제거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대한민국은 그런 국가라고 합의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질문, “놀다 죽은 것을 왜 국가가 책임지냐?”는 질문을 단순히 비아냥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여태까지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합의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관을 주장하는 반문이라고 진지하게 해석하고 싶다. 즉 국가라면 보장해야 하는 “공공의 안전”의 범위를 오로지 “치안유지와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만으로 해석하는, 야경국가 중에서도 가장 협소한 의미의 야경국가가 이상적인 국가형태라는 주장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것이 아니라면, 국가관에 대한 새로운 고찰에서 비롯된 질문이 아니라면 너무나도 슬플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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