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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Oct 07. 2024

인간이 짐승과 달라야 하는 건 과연 뭘까?

인간도 먹고 자고 배설하는 점에서 짐승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짐승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것이 몇 있다. 본능적이고 단순한 동물이 가지지 못한 '사고력'이 있어 삶의 수준을 계속 발전시킨다. 또한 '양심'이란 게 있어 본의 아니게 남에게 가벼운 피해를 준 경우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사과를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인간은 짐승과 달리 자살도 하는 모양이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짐승들은 가지지 못한 '사고력'과 '양심'이 있는데 여기에 하나를 추가한다면 인간은 동물과 달리 '멋'이란 걸 추구한다. 인간도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실 짐승과도 별반 차이는 없다. 하지만 기본 욕구로부터 해방되어 여유로워지면 확연히 달라진다. 옷이나 신발도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 멋을 추구하는 수단이 된다. 옷은 다양한 디자인과 형태로 유행을 창출한다. 70년대 때 미국에서 들어온 미니스커트는 여성의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며 남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집의 경우도 비나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 외에 시각적으로 어떤 경우는 궁궐 또는 마치 예술 작품처럼 지어놓고 그 안에서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게 또한 인간이다.


옷이나 집 이외에도 인간의 멋은 다양하게 발휘된다. 군인의 경우 강직하고 절도 있는 복장과 말 혹은 행동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강인함을 연출하며 운동선수의 경우 발달된 근육과 균형미 그리고 빠른 동작과 스피드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마라톤 선수의 경우 42.195km의 거리를 사투를 벌이며 뛰어 최종지점까지 달려와 종착점에서 탈진하여 쓰러질 때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그 투혼에 매료되는데 이는 멋의 극치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인 멋 이면에 존재하는 게 바로 인간의 내면적인 멋이다. 멋이란 말은 본래 돈이나 집안배경과 같은 겉치레와는 상종하지 않는 남다른 소신과 정의감을 동반하기에 내면적인 멋을 가진 이는 곧 바른 길을 걷는 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내면적인 멋이 있는 이의 '의로움'이나 '희생정신'과 같은 고귀한 정신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넘어 찬사를 불러낸다. 내로남불과 기만 그리고 거짓말이 판치는 진흙탕과도 같은 정치권에서 지금껏 국회의원 한번 당선되지 못한 채 늘 음지에서 옳은 말만 하던 한 인물이 최근 숨을 거두었다. 그는 가난한 살림에도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수억의 보상금을 완강히 거부했다. "민주화운동을 무슨 대가를 바라고 했느냐" 하는 게 그의 변이었다.


왜 이런 멋있는 의인은 없고 하지도 않은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허위로 신청하고 보상금을 받아먹는 이들은 있는 걸까? 이들은 허위 보상자를 가려내려 보상자명단을 요구하는 이들을 위협하는 법령까지 발의하였다. 이러한 이들 가운데에는 고가 아파트에서 살며 고급 외제차를 몰고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고 온갖 외형적인 멋을 부리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하리라 보인다.


본능에 의존하는 짐승이 가지지 못한 '사고력'이라는 인간만의 특권은 자칫하면 짐승보다 못한 게 될 수도 있다. 좋은 머리를 이용해 자신만의 이익을 좇다 많은 이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경우가 그러하다. 또한 동물은 접근조차 못하는 '멋'이라는 것도 옷이나 집 그리고 자동차와 같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쪽으로만 사용된다면 이 또한 짐승보다 별반 나을 수 없다. 하지만 '내면적인 멋'이란 건 그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자 세상이란 밭을 기름지게 하는 비료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향수처럼 가공된 향기를 풍기며 이성을 마비시키기보다 묻혀서 자신은 죽지만 땅 위의 오곡백과를 살찌우고 그것을 섭취하는 이들에게도 에너지를 공급하는 생명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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