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대장부'라는 말이 있는데 '대장부'란 말은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자를 놓고도 '여장부'라는 말을 쓴다. 용기가 남다르거나 굳세고 기개와 풍모가 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내가 지금껏 만난 여자 가운데 여장부라 불릴만한 여자는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는 시시한 남자라면 쉽게 말을 붙이기조차 어려운 여걸들이 등장한다. 2011년 말 70~80년대의 밤무대와 연예계에 관한 스토리를 다룬 MBC TV의 미니시리즈 '빛과 그림자'에 등장했던 나이트클럽 사장 송미진(이휘향분)이란 배역이 문득 떠오른다. 키가 큰 미인으로 선이 굵고 호탕한 여성이었다.
전통적인 여성상은 외향적이거나 활달하기보다 정숙하거나 단정한 모습에 가까우리라 보인다. 남존여비인 유교사회에서 여자는 남자 곁에서 살림이나 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역할을 맡아왔기에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한다면 주변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일쑤였다. 오죽하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그러한 시각이 바뀔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만일 가장인 남자가 제구실을 못한다면 여자라도 나설 수밖에 없다. 어릴 적 나의 주변에는 남자는 집에서 놀고 여자가 나가서 돈벌이를 하는 가정이 있었다. 이 경우 남자는 위신이야 서지는 않겠지만 여자라도 일을 했기에 자녀들이 공부를 하며 가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그나마 그런 일도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십중팔구 이혼소송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 사실 과거에 비해 이혼율이 급증한 걸 보면 여성들이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던 과거에는 설령 집에서 구타를 당하는 경우에도 여자가 선뜻 이혼할 맘을 먹기는 어려웠다.
남녀가 함께 살면서 남자가 하는 일이 잘 될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이 잘 된다고 가정이 늘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남자가 우쭐하며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 마음이 가정에서 멀어진다면 행복대신 불행이 찾아오기도 한다. 만일 남자가 사업에 실패할 경우 여자는 과연 어떻게 나올까? 남자를 이해해 주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며 재기를 하도록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여자도 있지만 모르긴 해도 남자를 잘못 만나 고생한다고 신세한탄을 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여자도 있다. 이 경우 남자는 사업에 실패한 걸로도 모자라 배우자로부터 배신감까지 느끼는데 심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한다.
사업을 시작해 일이 잘 될 때엔 근사한 집도 하나 지으며 여유 있는 생활을 하던 나의 한 지인은 사업이 기울며 적자가 이어지던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가진 재산은 송두리째 날라가고 졸지에 전세 세입자로 전락한다. 그러자 간호사로 고정수입이 있는 배우자의 입에서 드디어 이혼얘기까지 나왔다. 그는 난감했지만 자구지책으로 대출을 받아 상가를 구입해 임대를 놓고 경비원 생활까지 하며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세입자가 보증금까지 탕진하자 내보냈는데 상가는 공실이 되고 임대수입은 없이 몸소 대출이자까지 갚느라 압박감만 커져 그는 주야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가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 늦게 그를 발견한 그의 가족은 그를 급히 응급실로 옮겼는데 이미 숨은 끊어진 상태였다. 만일 간호사인 배우자가 남편을 좀 더 편하게 지내도록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직 한창인 한 가정의 가장은 사업실패 이후 강박관념 속에서 과로로 인해 숨을 거두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건 다름 아닌 배우자의 냉대였다.
과거 다들 힘들게 지내던 시절에는 온정이란 게 있었는데 선진국이 되면서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온정이 있던 자리를 무관심과 냉대란 침입자가 강탈했는지 모른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던 여장부들은 현실 속에서는 왜 그리도 보기 힘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