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가 시작될 때는 뭔가 달라질 것처럼 기대도 가져보지만 봄, 여름, 가을을 거쳐 12월에 와서도 별반 달라진 건 없고 살기 힘들다는 소리만 들린다. 올해는 여름이 무척 더워 모두 애를 먹었는데 특히 양식업자들은 높은 기온을 견디지 못한 어폐류나 생선들을 마구 내다 버리며 망연자실해하기까지 했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발표되는 실업률과 실제와의 차이는 벌어지기만 한다. 가계 및 정부 부채 또한 위험 수준이며 정부 재정도 적자를 보이고 있다. 내년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의 구조조정까지 거론되니 과거 IMF금융위기 때처럼 국가부도 얘기가 나올지 걱정이다. 이렇듯 경제사정은 어려워만 지는데 정치권에서도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방탄과 탄핵에 목을 매고만 있다.
세상은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만 간다. 소수의 가진 자들과 중하류층 간의 격차가 커지기만 하는데 이를 좁힌다는 건 인력으로는 어려운 문제인 듯싶다. 부유한 누구든 가진 것 일부라도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게 내어놓으면 어떨까 싶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기만 한다. 나부터도 내 주머니에 있는 건 내 자식 한 테라면 몰라도 길에서 구걸하는 누구에게 선뜻 내어줄 마음을 갖기 어려우니 말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획기적인 대안이란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핵개발 하나에 모든 걸 걸고 주변국가들을 위협하는 북한이 개과천선하여 협력 내지 상생하자는 제안이라도 한다면 모를 일이다. 이러한 소설과도 같은 얘기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조지 프리드만'은 2030년 전에 남북통일은 갑자기 올 것이라는 예측을 내어놓기도 했다. 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는 중남미 오지에 식민지 개발을 하려다 크게 실패하여 국가부도에 이르자 앙숙이던 잉글랜드에게 합병을 제의했고 드디어 대영제국이 탄생된 사실을 보면 우리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북한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될 때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시나리오가 중국에 편입되는 것이라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그런 결정을 하기 어려울 것이고 러시아와의 동맹관계도 결국 예속을 가져온다면 최후의 선택은 대한민국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경제나 국방 문제도 중요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인간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그 근본에 있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다. 돈이 있으면 인간으로 대접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물건 취급을 한다고 한다면 그건 돈이 주인인 세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러한 궤변은 학교교육에서도 원인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나 자신도 인간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인간이 가진 배경이 아닌 인간 자체를 중시하는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그러하다.
한 해를 보내는 기분이 어찌 인생을 정리하는 듯한 기분이다. 어차피 영원히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보니 가진 재산과 타이틀 혹은 명예나 축적된 지식까지도 세상을 떠날 때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진 것에 연연하는 게 인간이니 한심해지기도 한다. 한 인간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뭘로 하는 게 적절할까? 가진 현금재산으로 평가를 한다면 좋지 못한 수단으로 돈만 많이 번 이들이 존경받는 일도 생길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올바르게 살았는지를 반영하는 잣대라도 있어야 하건만 그런 걸 보여주는 자격증이나 하다 못해 영수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갈수록 현금이 최고인 세상이 되는지 모를 일이다. 새해에는 뭔가 인간적이고 가치 있는 일들이 일어나기라도 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