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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Aug 08. 2023

추모함속 고양이들에게 한마디하겠어

8월8일이 니네 날인건 알겠는데 예의는 좀 지켜줄래.

간밤에 고양이들이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꿈을 꾸느라

덕구를 못 만났다. 또 뒷통수...

그놈의 뒷통수만 본다.


네이버가 세계고양이의날이라 열일을 좀 한 듯하다.

제법 많은 고양이들이 소리까지 내며 고양이판을 만든다. 한 자리에 앉아 컴퓨터로 수십번은 눌러본 것 같다.

네이버 PC와 모바일에서 모두 고양이가 나온다.


그래. 오늘이 니네 고양이의 날이야.

우선은 축하하고.

이따 살짝 덕구 홍삼 좀 올려줄게.


근데 고양이들아. 오늘은 아줌마가 할말이 있거든.

사실,

니네 귀엽고

니네 앙칼지고

니네 매력 철철 넘치는 거 다 안다 이것들아.


그래서 우리 덕구도 사는동안 매일 니네 찾아다니고

혹시라도 만나면 냄새맡고 싶어 다가갔다가

번쩍 하고 앞발톱에 눈구녕 앞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뚝뚝 흘러도 니네한테 가려고 했어.


개한테는 세상 으르렁에 이빨보이기 바쁘던 녀석이

왜 너희 앞에선 세상 모르는 눈을 하고 입을 다물고 걸어나갔을까.


덕구는 개로 태어났지만 어쩌면 너희의 목줄없는 삶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목줄없이 훨훨 날아다니면서 지금 시바산 평정중이거든?

그래서 내가 추모함에 불켜놔도 잘 안들어와.

복구가 밥도 간식도 다 뺏어먹어도 모를만큼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고.

아무리 추모함에 덕구 혼자 외로울까봐 니네들을 집단으로 넣어주고 엽서까지 모셔놨다고 해도

주인이 너네인 건 아니란다.


덕구 외롭지 않게 함께 놀아줄거라 생각하니 너희가 기특해서 따뜻한 잠자리도 밥도 챙겨주긴 하겠지만

엄연히 그 집 주인은 부재중이어도 주인이란 말이야.


그러니 내 꿈에 나오면 좀

예의있게 굴어줄래?

덕구가 아줌마 꿈에 나올 때는 늘 너네 따라가느라 어디론가 가고있어.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덕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덕구가 꿈에서 아주 너네랑 놀다가 너네형상을 하고 나를 지나 달려가다보니,

매번 그렇게 뒷통수만 보여주는 덕구가

늘 따라다니는 너희들이 부럽기만 하거든.


아줌마가 요새 아주 예민해.

지난주부터는 덕구가 꿈에 안온지 한참 됐어.

49재 지나면 이제 니네 별로 시바산평정을 끝내고 떠날지도 모르는데,

니들이 다 차지해버린 추모함에 덕구가 혹시라도 환생을 기다리며 잠시 쉬고 싶을 때 못 쉬면 이 아줌마가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49재날 니들 먹을 것도 많이많이 챙겨줄테니

배불리 먹고 우리 덕구

예쁘게 좀 봐줘.




자꾸 가위가 눌리는 틈에 불면증이 시작되면서, 몸무게가 또 줄었다.

원인은 역시 덕구 니놈인가.

아니 이번은 달라.

덕구는 나와의 교감보다는 고양이와의 조우를 더 좋아하던 녀석이어서 그런지, 꿈에 부쩍 고양이들이 더 많이 나온다.

마치 고양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혼자 베란다에서 또 잠들까 싶어서.

얼른 에어컨을 풀로 켜주고 추모함 촛불과 램프 불빛도 켜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혹시라도 잠시라도 쉬었다 갔으면 해서.

그렇게 잘 있다는  소식을 말이 아니어도 눈빛으로,

꿈에 한번만 더 나와주었으면 해서.


덕구가 어느 지점에서도 숨을 고르다 갈 도자공원.
덕구를 지켜주는 고양이 친구들아 고마워

오늘도 어떤 고양이는 길에서 자유를 누리고

어떤 이는 새끼나 어미를 잃고

어떤 이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이는 집사간택의 축복으로 또하나의 인간을 살리고 있겠지만.


덕구가 죽은 지 한달이 채 안됐을 때, 우리집 앞동 바닥에 더위와 배고픔 때문인것으로 보이는 작은 고양이의 시체를 보며 덕구를 위해 흘리던 눈물을 잠시 멈췄다.


덕구만의 죽음이 아니었는데.

덕구가 죽던 장례식장에도 덕구 혼자만 떠난 게 아니었는데.

내 편협한 슬픔은 오로지 나의 이기적인 슬픔이었기에

다른 생명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새끼고양이의 죽음에 가슴이 저릿해진 건

이제 조금은 덕구로 인해 슬픈 날들이 익숙해지는것 같기도.

모든 생명이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기를 빈다.

저마다의 슬픔이 새겨지고

각자의 업을 끝내고 유유히 무지개다리 건너의 저마다의 천국으로

안전하게 떠났다가 그들의 원하는 새 모습으로 날아가기를.


8월 8일 고양이의 날.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행복하길. 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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