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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 랄라 Jan 03. 2023

세신

씻어 새로이 하는 것 (사진=픽사베이)

  딸아이가 이른 아침부터 욕실에 걸려있던 분홍색 물안경을 쓰고는 어푸 소리를 내며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딸아이의 웃는 얼굴에 침대에 붙어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다.


 코로나19로 목욕탕에 가지 못한 것이 몇 달은 된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승용차를 몰고 30분가량을 달리다 큰길을 벗어나 좁은 골목길을 퍼즐 맞추듯 돌다 보면 낡은 간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일 듯 말 듯 깜빡거리는 불빛이 들어오는 간판은 마치 등대인양 오랜 시간 목욕탕 지붕 위를 지키고 서 있다.


 이사 온 지 5년이 지났지만, 예전 살던 동네에 있는 온탕과 냉탕이 전부인 수정탕으로 목욕을 하러 간다.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해 준다. 삐걱거리는 미닫이문을 열고 파란 물방울무늬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면 1번부터 89번까지 숫자가 적힌 옷장이 줄을 맞춰 서 있다. 다행히 가장 좋아하는 78번 옷장이 비어있다. 따스한 수증기를 잔뜩 머금어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온탕에 천천히 발을 담근다. 다리 끝에서부터 전해오는 온기가 몸을 서서히 붉게 물들인다.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몸이 따듯해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콤한 냉커피를 주문한다. “이모~커피 둘 설탕 둘~” 얼음이 가득 담겨 뚜껑이 닫히지 않는 커피를 내려놓은 세신사 이모는 “30분, 알제?”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진다. 30분의 시간은 누구의 방해도 없는 온전한 나의 쉼이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세신대에 몸을 눕힌다. 세신의 시작을 알리는 이모의 박수 소리가 귓바퀴를 맴돌아 귓속으로 파고든다. 박수 소리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묘한 설렘이 느껴진다. 노란 이태리 수건이 덮인 이모의 양손이 파도를 타듯 몸 위에서 춤을 춘다. “살이 올랐네! 아도 잘 크는 가베” 이모의 격한 반김에 좁은 목욕탕 안이 시끌벅적해진다.      


 이모를 알고 지낸 것이 올해로 딱 10년째이다. 나를 반기는 이모를 보니 10년 전 첫 아이를 낳고 태어나서 세신이라는 걸 처음 받아 본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목욕탕 가기 전 남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부끄러워 주저하는 나와 세신을 하고 나면 분명히 좋아할 거라는 엄마와의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목욕만 할 요량으로 엄마와 집을 나섰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모자를 눌러쓴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엄마는 늘 낯선 이에게 말을 걸곤 했다. 오늘 처음 본 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거는 엄마를 서른 살의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오랜 기간 목욕탕을 가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의 채근은 멈출 줄 몰랐고, 결국 태어나 처음으로 세신대에 몸을 눕히기로 마음을 먹었다. 쭈뼛쭈뼛 세신대 위에서 꿈틀거리던 나를 본 이모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목욕관리사답게 조용히 세신을 시작했다. 배꼽 아래 위치한 10cm가량의 상처 자국을 밀며 “아가 아를 낳았네~엄마 되는기 쉬운기 아닌기라~”이모의 투박하지만 진솔한 그 말이 내 마음의 빚장을 열었고, 그날 처음 보는 이모에게 그동안 마음속에만 켜켜이 쌓아왔던 설움의 응어리를 토해내듯 쏟아냈다. 매일 밤 잠들지 않는 아이를 안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서른 살 나의 설움을 이모는 묵묵히 다 받아주었고, 그날 처음 만나 몸을 맡긴 이모에게 남편에게서는 받을 수 없었던 위로를 선물 받았다. 지금까지도 이모는 내게 아무런 걱정 없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다. 이모를 알기 훨씬 전부터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했었다.      


 여덟 살 때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들이 우리 집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고, 갑작스러운 가장의 부재로 생계에 육아까지 책임지게 된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다. 말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한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싶은 기억 한 조각이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와 목욕탕 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목욕탕에서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온탕에 들어가 몸을 불린 뒤 세신사 이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를 씻겨 주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엄마의 그 미소가 좋았다. 보물처럼 꼭꼭 숨겨왔던 엄마의 미소를 본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따뜻했던 온탕의 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목욕탕을 찾지만, 목욕탕은 몸만 깨끗이 하는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욕탕에서는 몸과 더불어 마음도 새로이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세신을 씻을 세(洗) 몸 신(身)- 몸을 깨끗이 씻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나는 세신을 씻을 세(洗) 새로 신(新)-씻어 새로이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각기 다른 모양의 그릇에 담긴 물도 비우지 않고선 다시 채울 수 없듯이 우리 사람의 마음도 비워야만 다시 채울 수 있다. 비우지 않고 따르기만 한다면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이 몸 밖으로 흘러 넘 칠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을 바꿔놓았다. 대면 활동보다 비대면 활동이 늘어난 지금 감정노동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팬데믹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새로 채우기 위한 비움의 시간이 간절히 필요하다.     

 

 지금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마지막 남은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해 목욕탕을 찾는다. 머릿속에 꽈리 튼 갖가지 생각들과 마음속 복잡한 감정들을 비우고 나면 새로운 것들로 다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비움의 시간에 목이 말랐었다. 웃는 얼굴이 나보다 엄마를 닮은 8살 된 딸아이와 분홍색 물안경이 담긴 목욕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선다. 오랜만의 목욕탕 나들이에 나도 다시 아이로 돌아간 듯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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