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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 랄라 Oct 19. 2022

끌어당김과 밀어내기

명품 가방에 대한 나의 생각

연애 시절 우리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겼다. 12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자석의 같은 극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간 거리만큼 더 멀어진다. 주말 동안 집안일을 서로에게 미루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급하게 집을 정리한다. 출근하기 싫은 건 남편도 매한가지 인지라 거실에 있는 긴 소파 양쪽 끝에 앉아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월요일 점심시간은 다른 요일의 점심시간보다 늦게 찾아온다. 월요병에는 결정하기 어려운 음식들이 나열된 메뉴판이 최고의 처방전이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90년대생 후배 어깨에 못 보던 가방이 매달린 채 자신을 보라는 듯 옆으로 흔들리고 있다. 멀리서도 하얀색 가방 중앙에 금색 쇠로 된 G 로고가 먼저 시선을 낚아챈다. 패션을 모르는 내가 봐도 그 가방은 명품이었다. 후배에게 새로 샀냐며 예쁘다고는 말했지만, 괜스레 속이 상해 마른침만 자꾸 삼킨다. 여자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오늘 점심 메뉴는 따끈한 국물에 목 넘김이 좋은 부드러운 면과 아삭한 숙주를 한 아름 품은 쌀국수다. 먼저 쌀국수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고기부터 입속에 털어 넣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찔 것 같다는 생각에 거침없이 젓가락을 움직인다. 일하고 난 후에 먹는 음식은 오늘도 밥값 잘 해냈다는 안도감을 준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커피를 마셔야 퇴근 시간까지 버틸 여유가 생긴다. “커피는 내가 살게~”라며 적은 돈으로 생색을 내며, 나는 꽤 괜찮은 선배라며 자신을 토닥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배부르게 먹었지만, 영혼을 달래주는 따뜻한 커피와 코를 찌를 듯한 버터의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 뱃속에 빈방이 다시 생긴다. 여자들은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후식 먹을 배는 따로 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후배가 새로 구매한 명품 가방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 눈에는 부러움과 시샘을 담고 부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로 멋지다, 예쁘다는 판에 박힌 말을 쏟아 놓았다. 마지못해 나이가 제일 많은 내가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부럽다.”라고 말하자 후배는 명품 가방 다 있는 건데 부럽긴 뭐가 부럽냐며 되묻는다. 이미 승리가 확정된 경기였건만 내게 다시 묻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난, 하나도 없어~”라며 당당한 어투와 꾸부정한 몸짓으로 한 글자씩 내뱉었다. 후배들은 일제히 눈들이 커졌다. 진짜 명품 가방 하나 없냐며 야생마처럼 달려들었고, 그 말은 화살이 되어 내 가슴을 할퀴고 남편의 심장에 정확히 꽂혔다.


 퇴근 후 남편과의 전쟁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남편과의 투덕거림 후 찾아온 정적에서, 불현듯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공개수업에 가던 날이 생각났다. 그날도 나의 머릿속에는 명품 가방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껏 꾸미고 나가려는데 마땅히 메고 갈 가방이 없었다. 어째서 스물네 살 때부터 직장생활을 했는데 명품 가방 하나 못 샀을까?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옆에 있던 엄마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왔는지 “니는 우째 직장생활을 그마이 해도 명품 가방 하나 없노?”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 집을 나서며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에게 최면을 걸듯 엄마에게 “가방? 뭐 필요하노? 내가 명품인데!!”라며 멋쩍게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명품 가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조금은 사라졌다. 하루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내 노력이 명품 가방보다는 훨씬 더 값지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 자신을 명품이라 최면을 걸고 살아왔지만, 일상 속에서 명품 가방에 대한 시련은 땅속에 묻힌 지뢰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 숨겨져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그날도 그랬다. 엄마가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이 있다며 1시간 일찍 조퇴하라고 말했다. 내가 도착하니 엄마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중문 앞에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손에 들린 가방을 쳐다보았다. 아니 저건 명품 가방? 누가 봐도 알만한 얼룩덜룩한 무늬의 명품 가방이 엄마 손에 떡하니 들려져 있었다. 엄마에게 명품 가방 언제 샀냐고 물었고, 엄마는 씩 웃으며 “짜가지~모임 나가 봐라, 내 또래 명품 가방 없는 사람이 어딨노? 라고 말하며 나를 흘려본다. 엄마에게 나는 최소한 가짜는 안 멘다며, 자존심도 없냐며 괜히 핀잔을 줬다. 이제껏 명품 가방 하나 못 사준 못난 딸이 큰소리만 쳤다는 생각에 엄마가 나가고 없는 현관문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동네 아줌마들도 다 커피 마실 때 명품 가방 들고 나오는데, 나는 그깟 가방 하나 없어서 핸드폰만 들고나간다며 가방 타령을 한 적도 있었다. 자신을 명품이라고 자처하지만, 남들이 맨 명품 가방을 보면 부러움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마음을 에둘러 남편에게 쏟아냈다.      

 

 내 인생에도 명품 가방을 구매할 기회가 있었다. 3년 전 생일날이었다. 그렇게 갖고 싶으면 생일선물로 명품 가방을 사주겠다며 남편이 상품권 뭉텅이를 내밀었다. 순간 정말 살까?라고도 생각했지만, 남편이 회사에서 눈칫밥 먹으며 어렵게 번 돈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 상품권으로 갖고 싶었지만, 아이들 학원비 걱정에 사지 못했던 노트북을 샀다. 남편이 몇 번이고 괜찮겠냐고 되물었고, 나는 좋아하는 글을 한번 써보고 싶다며 그 돈을 꿈을 위해 쓰겠다고 말했다. 노트북을 사고 나오며 몇 년간은 명품 가방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을 명품이라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명품에 대한 질투와 갈망이 나를 찾아와 괴롭힌다. 가진 것이 많아 가방을 사는 것이 고민스럽지 않다면야 몇백만 원이 훌쩍 넘는 가방을 구매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달 월급과 맞먹는 가방을 단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구매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만 의식한다면 내 삶의 주체는 더는 내가 아니다. 타인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 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회사 동료 Z 세대 후배는 열심히 일한 자신을 위한 선물로 명품 가방을 구매했다고 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한 가방. 그것 또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채워진 가난이라는 족쇄를 벗지 못해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후배들의 거침없는 행동이 멋있고, 부럽기도 하다.      


 달콤한 빵을 먹고 버터처럼 말랑해진 내게 후배들이 왜 명품 가방을 사지 않냐며 물어온다. 난처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들은 16년이나 일했는데 자신을 위한 선물조차 하지 않았느냐며 나에게 화를 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내가 명품이야~”라고 말한다. 나와 그들에게 이 최면이 통하길 기대해 본다.       


 명품 가방이란 내게 갖고는 싶지만, 선뜻 살 수 없는 것.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 마주치겠지만, 결코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마치 자석의 같은 극과 닮았다. 나이가 들수록 명품 가방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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