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한 내용을 말랑말랑하게 이야기해보다
만일 기독교 신앙에 관한 개관서를 출간하게 된다면, "질문하고 찾아가는 기독교 신앙 이야기"라고 제목을 지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질문'과 '찾아감'입니다. '잘 모른다는 것'과 '그럼에도 알아가려고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참고서나 교재들은 일목요연한 목차와 함께 될 수 있는 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데 치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들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답변의 내용이 얼마나 충분했느냐라고 따지고 들어가보면 다소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중요한 이유가 성서 내용에 관한 해석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석의 역사성을 배제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성이란 사실로서의 역사와 해석으로서의 역사의 다양성 모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참고서는 이 두 가지 의미의 역사성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서의 풍부한 내용과 기독교의 풍성한 전통은 지극히 단편적인 것으로 전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현대인이 아니라하더라도 인간이라면 역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복음서의 내용만 보아도 차이가 납니다. 성서를 진지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왜 같은 내용이 이렇게 다르게 기록되었을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서 기록의 역사성에 관한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왜 여성은 사람의 수에 들어가지 않았는가?'에 관한 질문도 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의 역사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질문들을 대면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그저 "성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라고 못 박는 것으로는 부족하단 말입니다. 누군가는 또 물을 수 있겠지요. "왜 성서가 하나님 말씀인가요?" 여러분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갖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 물음에 대한 납득할만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라도 설명할 수 있는지요?
오늘날, 기독교 신앙을 말한다는 것은 앞에서 소개한 질문들을 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물음과 대답의 과정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교회라는 공간에서 이러한 활동은 매우 미진하거나 회피되고 있습니다. 질문과 앎이라는 것이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는 없지만, 믿는 자라면 그 믿는 바에 대해 보다 잘 알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을 믿음이라는 도구로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반지성적이고 무례한 일일 수 있습니다. 신앙과 지성은 명확하게 분리할 수도 없으며, 분리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질문하고 찾아가는 기독교 신앙 이야기"를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지에 대한 구조를 짜는 일은 기존과는 다른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민스럽네요. 어쩌다 칼을 뽑긴 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