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4 기숙학원에서
학원에서 내가 제일 좋다며 틈만 나면 와서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애교부리고 애정고백하는 여학생J.
맨날 밥이 맛없다며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생활하는 아이.
초반에는 자습시간에 맨날 엎드려 잠들어서
지겹도록 깨워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른 아침에도 절대 졸지 않고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이제 곧 수능이다.
아이들을 볼 날이 이틀 밖에 안 남았다.
매일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기가 빨려서
하루 빨리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 중에는 이렇게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내일은 휴무라서 쉰다고 했더니
또 플러팅 멘트를 마구마구 쏟아낸다.
J: 아~ 선생님 없는 학원은 칙칙해요.
나: 나도 칙칙해
J: 선생님이 계셔야 밝고 환해져요.
나: 야, 내가 무슨.. 거짓말 하지마~
환한 샘들은 저기 다른 팀 젊은 샘들이지.
J: 에이, 아니에요. 저한테는 선생님이
제일 밝고 좋아요.
우리 학원에서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나: 그래. J가 나 좋아하는 거 알지.
고맙다. 좋아해줘서~
이 친구가 하는 말은 진심이라는 걸 안다.
좋다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사랑스럽고 귀엽고 순수하다.
스무살이지만 열 두 살 같은 순수함이 있다.
무지하게 솔직하고 불평불만도 엄청 많은 아이라서
반복적으로 칭찬을 한다는 건 무척이나 진심이란 의미다.
평소에 차분한 분위기라는 말은 자주 듣지만
밝고 환하다는 말은 십수년 만에 처음 듣는 것 같다.
내가 없는 날에 나를 기다리는 아이.
지루하고 빡빡한 기숙학원생활에
선생님의 존재는 소소한 흥미거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애들은 좀 산만하고 잡담이 많고
학업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지만
잔정이 많고 붙임성이 좋다.
작은 간식을 나눠주는 아이들도 있고
엄마가 귤 농장을 하신다고 귤을 건네는 아이도 있다.
맨날 찾아와서 언제 퇴근하냐,
내일은 언제 출근하냐 물어보는 애도 있었다.
다 여자애들이다.
공부 외적인 것들에 관심 많은 아이들.
학원을 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새 잊혀질 걸 안다.
그래도 애정표현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날려주고
나를 일년 동안 만나며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줘서 고맙다.
너무 가까이에서 매일 보면서
부족하고 미숙한 모습도 많이 봤을텐데 말이다.
나 역시 작년 아이들이 기억 속에서 거의 지워졌지만
아주 가끔은 흔치 않은
따뜻한 순간들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