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은 다르다

프롤로그

by 루비하루

공상을 받았다.
천일 넘게 걸린 싸움 끝에 받은 결과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다.
마치 누군가가 “그래, 공상은 줄게. 대신 조용히 사라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세 번 연속 승진에서 탈락했고,
내년이면 근속 승진 대상이었다.
그걸 앞두고 날아온 건, 본청 발령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본청이면 좋은 거 아니야?”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빅엿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그 손은 나를 조용히 책상에서 밀어냈고,
회의실에서 밀쳐냈고,
삶의 가장자리를 향해 떠밀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눈물은 흐르는데,
고통은 없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들기 직전,
“내일 아침, 안 일어나게 해 주세요.”
그게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 유서를 쓰지 못했다.
너무 피곤했고, 너무 지쳐 있었다.
유서를 써야 했는데,
잠이 쏟아졌다.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마치 수면내시경 때처럼.
프로포폴이 혈관을 타고 흐르듯,
의식이 조용히 꺼졌다.

그렇게,

유서를 못 썼다.
그리고 나는 또 하루를 살아버렸다.

살아 있다는 게 죄처럼 느껴졌던 날.
그래서 오늘,
유서를 대신해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오늘도,
그저 또 하루를 살아버린다.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내렸다.
비닐가방엔 책과 개인 물품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이 낯설지 않았다.
2년 전에도,

비 오는 날 나는 그렇게 돌아왔다.

집 앞 주차장.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엄마…”

뒤를 돌아봤다.
아이는 오른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소리의 방향조차 알 수 없는 몸.
딸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아… 슬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또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싶었다.



다음날 오전, 시청으로 인사를 갔다.
병가 신청을 하기 전에 국장을 뵙는 자리였다.

국장은 예전 본청에서 함께 일하던 팀장이었다.
그 시절, 민원이 폭주하던 어느 겨울.
나만 30대 초반.
다른 팀원들은 모두 40대, 50대.
당연히 대부분의 일은 내 몫이었다.

잠시 눈을 마주친 국장이 조용히 말했다.

“일단 병가 처리하고, 빠른 인사 때 다시 돌아오세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돌아서며, 눈물이 났다.
그가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 날,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심리검사부터 시작이었다.
지문을 읽는 도중,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코를 풀고, 다시 읽는다.
머릿속에 문장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이곳까지 왔다는 자각만 남는다.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목소리가 잠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진단서는 다음 주에 주겠다고 했다.
내 상태를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이었다.
약 처방을 받고 나왔는데,
지갑을 두고 온 걸 알게 됐다.
남편이 차로 데리러 왔지만,
나는 그 차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빵—’
경적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차에 올라

"내가 정상은 아니지...

힘나게 우리 집 보러 가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 두었던 집들이 있는 동네.

2018년,

수많은 불안 속에서도 내가 미래를 걸었던 곳.
그 집들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어떤 건 조금 더 멋져졌고,
어떤 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아이들이 자라듯,
그 집들도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근처에 자주 가는 동태찌개 집이 있다.
늘 맛있지만, 한 번은 국물이 썼다.
전세 재계약 날,
세입자의 입금이 지연되어 가슴 졸이던 그날.
식사를 하면서도 입에 쓴맛이 돌았다.
그날의 국물 맛은 아직도 기억난다.

오늘은 달았다.
내 마음이 달라서였다.

식당에서 계산을 하려는데
젊은 사장님이 남편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계속 사진 찍으시던데... 사모님을 많이 사랑하시네요. 두 분 참 닮았어요.”
우리는 웃으며 식당을 나왔다.

이번 병가는,

2년 전과는 다르다.
그때는 절망뿐이었고,
정신과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회복 중이고, 이미 많은 것을 이겨냈다.
공상 승인, 세입자 셀프소송 승소,
이제는 글을 쓰고 있다.

그날, 나를 부르던 딸의 한 마디.
“아… 슬퍼.”
그 슬픔을 나는 글로 옮기고 있다.
내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다시 걸어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