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ya의 ‘나의 선생님’ (7)
조만간 벌어질 일이라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지만, 막상 그다음 날 일이 벌어지고 나니 충격이 상당했다. 그나마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 다행이랄까. 아이든, 어른이든 이래서 벌을 받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할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이래서 중요한 것 같다. 감정이 앞서는 사건을 이성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교문을 통과하면 바로 오른쪽에 교무실이 있다. 그리로 들어가 호야를 데리러 왔다고 리셉셔니스트한테 말하니 안 쪽 교장실로 가란다. 거기에 아이가 교장 선생님과 함께 있다고.
수없이 아이를 데리러 왔었지만, 교장실에서 픽업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도 긴장이 되었다.
교장실 안 원탁 테이블에 아이는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얌전히 앉아있었다. 교장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래며 긴장한다. 교장 선생님인 Mrs. Moore 앞에 공식 문서가 한 장 놓여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건조한 목소리로 종이 위에 쓰인 항목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하며, 나에게 이러이러한 이유로 아이가 정학 처분이 되었으니 학부모가 이 처분에 동의하면 사인하면 된단다. 그리고 호야에게도 다시 한번 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는 선생님을 발로 차고 때렸기 때문에, 여기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없어. 정학은 이번이 처음이니 오늘 하루 정학에 그치는 것이지만, 이런 일이 또 반복되면 학교에 못 오는 날이 더 길어질 거야. 앞으로는 절대 누구든 때리면 안 된다.
예상했던 일이 결국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발생하자 한숨부터 나왔다. 마음의 준비를 이미 했는데도 눈물이 났다.
정학 절차는 간단했다. 통지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아이 가방을 가지러 교실로 가려고 하니, 교장이 교무실 직원에게 아이 물품들을 가져오라고 시킬 테니 여기에 있으라고 한다. 정학 통지서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교실로 가면 안 된다고. 심지어 우리 학교는 아이 가방과 런치박스가 교실 밖 실외에 있는데도 가면 안 된단다. 정학 처분을 받은 것이 확 실감이 났다.
가방과 런치박스를 챙겨서 아이 손을 잡고 교무실을 나왔다. 수업 중이라 학교가 조용하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왁자지껄 떠드는 방과 후의 익숙한 풍경과 달리 정적 속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교문 밖으로 나오는데, 순간 이 상황이 아주 익숙하게 느껴진다. 기시감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바로 그 느낌이다. 유치원 때, 수도 없이 아이를 먼저 데리고 나와야 했던 지난 날들. 그 잊고 싶었던 과거가 오늘 다시 재현된 것이다. 그 순간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아이가 엄마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몰래 울지 않고 아이 앞에서 울었다. 아이를 데리고 차에 타니 쏟아지는 눈물이 주체가 안 되었다. 그렇게 차 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내가 울면 '엄마 왜 우냐'며 함께 따라 우는 아들은 그날 엄마가 왜 우는지 너무나 잘 알아서인지, 왜 우냐는 질문조차 나에게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눈물만 닦았다. 엄마가 분명 자기에게 소리 지르고 화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엄마가 울기만 하자 그날 우리 아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엄마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면 나에게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구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끝날 때 까지는 약 두 시간 정도 남았다. 이날의 정학 처분은 결국 두 시간짜리였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혼자만 집에 일찍 가는 그 생소함, 항상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어조인 선생님들이 건네는 사무적이고 건조한 말투와 표정, 그리고 가방조차 가지러 교실로 다가갈 수 없다는 규칙의 엄격함, 그리고 다른 때와 완전히 다른 엄마의 태도에서 아이는'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지를 경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정학에 되느냐보다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계속된 ‘경고’를 무시하면 발생하는 다음 단계인 ‘정학’ 그 자체였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에게 단 한 번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호야는 그날부터 때리는 나쁜 버릇을 완전히 없앴다.
한동안 지적받았던 나쁜 행동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제일 놀란 사람은 Mrs. Rayle이었다. 정학맞은지 약 한 달 후에 만난 선생님은 정말 거짓말같이 때리는 이슈가 없어졌다며, 자기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폐 아이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흥분하셨다.
맞다.
우리 아이는 그 전에도 그랬고, 저 때도 그랬고, 11학년인 지금도 전형적인 자폐 아이들과 다르다. 이 점은 우리 아이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가르쳐 본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일반적인 자폐 아이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우리 아이. 그래서 부모로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자꾸 좌절한다.
2022년 3월 29일
ECHO
P.S. 오빠가 정학맞던 그날, 학교를 마치고 온 둘째 아이가 자꾸 내 표정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만 5살짜리 킨더 아이 눈에도 엄마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었나 보다. 오빠한테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오빠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그 일이 무엇인지는 너에게 말해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너의 프라이버시도 오빠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 그냥 '엄마가 힘들구나'라는 것만 알고 넘어가 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고, 둘째는 흔쾌히 "Ok!"하고 넘어갔다.
그 후로 호야가 이런저런 일을 일으켰지만 둘째에게는 '프라이버시'를 앞세워 넘어갔다. 큰 아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작은 아이에게 시시콜콜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고, 자칫 오빠를 우습게 여기고 존중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도 부모로서 솔직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둘째는 아직도 오빠가 정학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게 되기 전까지는 모르게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