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ya의 ‘나의 선생님’ (6)
어른들도 그러할진대, 아이들이야 뭐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해 경험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호야에게 그런 면에서 생일 파티 취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들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열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파티였다. 설마 이 귀빠진 파티를 진짜로 취소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음에는 엄청 화를 냈으나, 이내 잘못을 깨닫고는 속상해서 엉엉 울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일 파티를 친구들과 다 같이 하지 않는 것이었지, 아이의 생일날을 축하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기에, 남편과 상의 끝에 아이의 실수를 계기삼아 다른 방식으로 축하해 주기로 했다. 마침 킨더에 간 딸내미가 한참 라푼젤에 꽂혀 있었다. 디즈니 랜드는 아이가 생일을 보내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티켓을 끊고 들어가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 생일 배지를 받았다. 그 배지를 달고 다니면 디즈니랜드 직원들이 생일 인사를 건넸고, 그럴 때마다 속상해 움츠러들었던 아이의 마음도 점차 회복되었고, 샌디에고로 돌아오는 차에서 '오늘 정말 재미있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생일 파티 취소'라는 극단적인 방법밖에 아이를 훈육할 다른 방법이 없었던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부모인 '우리의 역할'과 '교사의 역할'에 대한 바운더리를 설정할 수 있었다. 학교와 교사는 아이를 긍정적인 점들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우리는 부정적인 행동을 제거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내가 아이를 키우는 이 방향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호야처럼 힘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자신 있게 아이의 부정적인 행동을 제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호야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제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엄마, 아빠를 실망시키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엄마, 아빠가 실망하거나, 울거나, 야단치는 상황은 아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아주 단순한 계기로 파악되었다.
아이가 문제적 행동을 하면 선생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학교에서 잘못한 거, 엄마, 아빠한테 말하실 거예요?
이 말을 Mrs. Rayle을 통해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우리 아이 훈육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엄마, 아빠에 대한 사랑과 인정으로 가야겠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엄마로서 한참 부족하지만, 내 장점 중 하나는 사람에 대한 파악을 잘한다. 나의 이런 장점이 육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이 몇 번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이런 기본적인 심리적 성향을 파악한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일으키는 사고들을 통보받는 기분은 언제나 비참하고, 좌절스럽지만, 점차 이를 통해 훈육의 토대를 세우고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으로 삼았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아이가 사고를 쳐도 한결 감정적으로 컨트롤하기가 쉬웠다. 이때 세운 이 훈육 방향은 아이가 17살이 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생일 파티를 취소했다고 해서 아이의 협박이 순식간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몇 년 간 아이의 생일 파티는 열리지 못하고 식구들끼리 조용히 치러졌다. 이와 달리 아이의 문제 행동이 순식간에 없어진 사건이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지만 상황이 마음에 안 들면 닥치는 대로 발로 차고 때리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선생님에게도 이러는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인 Mrs. Taylor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동안 의례 있어 왔던 문제들을 이메일로 보낸 것이지만, 이 이메일은 우리 부부 모두와 교장 선생님에게도 보내진 공식적인 통보였다. 더는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교감 선생님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도록 집에서 아이를 다잡겠다는 의례적인 이메일을 보냈지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문제 행동이 기존의 방식인 경고 수준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경고 이상의 처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임을. 아이는 분명 자신의 문제 행동이 '경고' 이상의 제지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한 것임에 분명했다. 그 고정관념을 깨야 했다.
하굣길에 하교 지도를 하던 교감 선생님과 만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전해 들었다. 호야의 특수 교사인 Mrs. Rayle과 가볍게 언쟁이 있었는데, 그 원인은 호야의 문제 행동에 대한 처리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하셨다. 오늘도 여김없이 호야가 Mrs. Rayle을 때렸는데, 이에 대해 자신은 '교칙을 적용해서 정학을 줌으로써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나, Mrs. Rayle은 '자기가 아는 한 우리 아이 같은 아이들은 왜 집에 가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모를 것이며, 자신의 문제 행동의 결과로 집에 일찍 가는 것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럼 집에 가고 싶을 때마다 이런 문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으로 맞섰다고 한다.
나는 이미 suspension, 즉 정학이라는 단어가 이메일에서 언급된 이상, 이미 힘들게 결론을 내린 터였다.
한 번 더 이런 문제 행동을 하면 교칙대로 하세요.
나머지는 집에서 우리가 가르치겠습니다.
교감선생님께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Mrs. Rayle을 만났다. 우리 아들을 이렇게까지 이해해주고 감싸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한 뒤(진심이었다. Mrs. Rayle은 우리 아이를 이해해 준 최초의 타인이었다), '더 이상 '주의 warning 조치'가 작동하지 않으니, 이런 경우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그다음 날, 학교 일과 중에 교장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또 선생님을 때려서 정학 처리되어 아이가 교무실에 있으니, 와서 아이를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2022년 3월 24일
E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