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기능성 자폐인의 레고랜드 취업기(1)
2025년 8월 4일부로 호야의 레고랜드 인턴십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Options For ALL이라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Project SEARCH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샌디에고에서는 레고랜드에서 11개월간 인턴십을 한다. 올 초에 지원서를 받았고, 지난 6월 초에 최종적으로 선발 여부가 통보되었다. 지원서로 대표되는 서류 심사 후 Zoom 인터뷰, 그리고 최종적으로 레고랜드 캘리포니아 회사에서 기능(?) 테스트를 가장한 현장 면접까지 거쳐 9명이 선발되었고, 호야도 그중 한 명에 포함이 되었다.
2025년 8월 4일부터 약 11개월간 진행될 것으로 애초에 지원할 때는 무급 인턴십으로 알고 지원했으나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급 프로그램이라고 안내를 받았다, 우리가 이 프로그램에 더욱 희망을 걸었던 것은 약 1/3 정도가 정직원으로 채용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레고랜드 정도라면 지난 씨월드에 재취업에 실패한 호야의 상처도 어느 정도는 치유되리라 생각하며 지원을 했다.
6월에 최종 선발이 된 후, 여름 내내 호야의 체력을 키우는 것에 우리 부부는 집중했다.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호야도 피곤해지면 컨디션이 확 나빠지면서 급격히 짜증을 내는 일이 빈번해지기 때문이다. 호야는 발달 장애인들을 전문적으로 PT 하는 경험이 많은 트레이너와 1:1로 운동을 했고, 7월부터는 서핑도 시작했다. 서핑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함께 서핑을 즐기려고 시작한 것인데, 일단 서핑 수업이 시작되고 나니 호야는 서핑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서핑 개인 레슨은 3일 차가 되던 날, 호야는 발목 부상을 당했다.
그날따라 호야는 버스를 타고 서핑 레슨에 가겠다고 했다. 서핑 레슨을 받는 Pacific Beach가 워낙 붐벼서 차대기도 쉽지 않은 터라, 나는 호야가 수업을 마치면 그 시간에 맞춰 차를 대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인 3시 반 전에 도착하려고 열심히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서핑 스쿨에서 연락이 왔다. 니 아들이 다쳤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별 일 아닌 줄 알았다. 바닷속에서 다쳐봐야 얼마나 심하게 다쳤으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에게는 천천히 연락해야겠다 생각하며 계속 서핑 스쿨 쪽으로 가고 있는데, 또 연락이 온다. 언제쯤 도착하냐며, 도착 시간을 묻더니, 아무래도 나보다 구급차가 더 먼저 도착할 거 같으니 병원으로 오라 한다. 그러면서 어느 병원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냐고 묻길래 익숙한 UCSD 응급실로 와 달라고 하고는 차를 오던 방향으로 되돌렸다. 그때부터는 손이 덜덜 떨렸다.
남편과 나에게는 암묵적인 프로토콜이 있다.
어지간히 급한 일 아니면 톡으로 상황을 주고받는다. 바꿔 말하면 전화를 한다는 것은 급한 상황이라는 의미이다.
운전 중이라 톡을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전화를 했더니,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다. 상황을 간략하게 알리고, 일 마치는 대로 병원으로 오라고 알리고는 작은 아이에게 연락했다. 마침 친구네 집에 있었던 터라 친구 엄마에게도 상황을 알리고 일단 그 집에 있으라고 하고는 응급실로 갔다.
내가 호야보다 먼저 도착했길래 구급차가 들어오는 입구를 확인하고 먼저 응급실 수속을 시작했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호야가 구급차를 타고 들어왔다. 구급대 위에 실린 호야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응급처치 과정에서 서핑할 때 입는 웻슈트 위에 그대로 누워 왔기 때문에 덜덜 떨고 있었다. 애가 혼자서 구급차를 타고 오게 한 것이 죄책감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얼마나 아플까. 그리고 혼자 여기까지 왔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미안해.. 아들아, 미안해...
구급 요원이 호야를 응급실에 인수인계를 하며 나에게 들려준 것은 보드 위에서 미끄러져서 발목을 다쳤다는 것이었다. 나를 보자 안도감에 눈물이 터진 호야를 진정시키고 응급실 복도에 대기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 등을 마쳤을 때 즈음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담당의는 엑스레이를 보더니 오른쪽 발목의 경골과 비골이 모두 완전히 부러졌다고 말하고는 수술 바로 해야 한단다. 오늘 밤 당직의가 정형외과 치프기 때문에 여기서 수술을 받을 수도 있으나 안되면 다른 분원에서 받을 수도 있단다. 결국 UCSD 힐크레스트 캠퍼스에서 다음 날 새벽에 수술받기로 결정이 되면서 전원 하라는 오더가 떨어졌고, 호야는 이번에는 아빠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새벽 1시에 힐크레스트 분원으로 이동했다.
응급실에서는 보호자가 한 명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엑스레이를 호야의 깁스를 풀 때 처음 보았다. 두 개의 발목뼈가 완전히 골절이 되어 어긋난 상태였다. 발목이 덜그럭 거리는 게 느껴진다고 호야가 말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심하게 부러진 것인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정도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하던 호야다.
또래의 아이들이 흥미 있어할 만한 것들을 보여주어도 10개 중 1개 정도나 흥미를 보일 뿐이었고, 매번 같은 놀이, 같은 운동만 하는 녀석이었다. 수영도 물속에 얼굴 담그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뭐든 무서워하고, 움추려들던 녀석이다. 그런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간신히 재미있어할 만한 것을 찾았는데, 이렇게 부상을 당해 버렸으니.. 남편은 엑스레이를 본 충격에 속상함까지 겹쳐 눈물을 쏟았다.
독한 진통제에 취해 내내 침대에 누워 자던 호야는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나를 찾았고, 내가 옆으로 다가가면 나를 으스러져라 꼭 껴안았다. 그리고는 '사랑한다'며 나에게 뽀뽀를 하고는 또 잠이 들었다. 이런 호야의 모습에 나도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밤 12시에 친구 집에서 딸을 데리고 집으로 온 나는 6시 40분에 수술실로 이동한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전날 챙겨둔 호야의 짐을 챙겨 작은 아이와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서둘러 간 덕에 수술 대기실에서 호야를 만날 수 있었다. 어제 엄마를 찾았다며 어디 갔었냐고 나를 또 끌어안는다. 엄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수술 잘 받고 나오라고 나도 같이 꼭 안아주었더. 그리고 7시 40분부터 네 시간 동안 호야는 뼈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진행 과정은 남편 텍스트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회복실로 이동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대기하고 있는데 집도의에게 전화가 왔다. 수술 잘 끝났고, 회복도 빨라서 바로 병실로 내려가니 병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호야는 수술을 받았고, 통증 관리와 경과가 좋아서 다음 날 퇴원할 수 있었다.
호야는 수술받기 전 응급실에 있는 동안에도 인턴십을 못하게 될까 봐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걱정을 했다. 엄마가 알아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은 했지만, 레고랜드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우리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올해 안되면 내년에 다시 지원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이 사고에 대해 호야의 자폐 관련 서비스를 지원하는 리저널 센터와 인턴십 주관 단체에 이메일을 보냈다.
뜻밖에도 호야가 원한다면 인턴십에 참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대답이 왔다. 우리는 크게 안도했다.
이 사고가 호야가 인턴십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가족이 겪을 마지막 난관이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호야에게 뭐든 쉽게 가는 것은 없는 법. 우리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2025년 8월 27일
E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