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외로 반도체 한 방이 있는 BYD
비야디가 중국 전기차 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는 중국 내에서의 독보적인 판매량이나 승용차 뿐만 아니라 전기버스를 비롯한 각종 상용차 라인업을 갖춘 이유도 있지만 그 중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비야디는 자체적으로 전기차 제조에 필요한 3대 핵심 요소인 배터리, 모터 그리고 전자제어장치(ECU)*를 모두 자체적으로 조달 가능한 중국 유일, 아니 전 세계 유일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테슬라도 당연히 전기차 분야를 선도하는 뛰어난 기업으로 ECU를 자체 개발 및 조달하긴 하지만 지난 번에 살펴보았듯 배터리만큼은 자체조달을 못하고 있고, 물론 모터도 협력업체로부터 납품 받는 중이다.
* 참고: 전기차 ECU의 주요 역할
1) 투입되는 연료의 양 조절
2) 점화 타이밍 조절
3) 엔진 회전 속도 조절
4) 가변 밸브 타이밍 조절 외 다수
(여기에 최근 전기차에 탑재되는 ECU의 Cost는 전기차 전체 가격의 30~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큼)
최근 미중 무역 분쟁에서 미국이 각종 반도체 수출 공급을 틀어막음으로서 ZTE,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의 목을 조른 것처럼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서 반도체가 없다면 모든 전자 제품의 생산이 막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비야디는 사실상 이런 목졸림의 우려에서 상당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전자제어장치(ECU)를 비야디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주요 반도체는 IGBT(Insulated/Isolated Gate bi-polar Transistor, 절연 게이트 양극성 트랜지스터)이며 간단하게 전력반도체로도 불린다. 즉, 전력반도체는 전기를 공급하고 제어하는 핵심 부품으로서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와 모터(직류-교류 전환용 인버터)에 컨트롤에 활용된다. 모터의 전류 제어가 핵심인 전기차에서는 바로 이 전력반도체가 차량의 전체적인 성능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비야디는 처음으로 자사에서 연구개발한 IGBT 1.0를 출시하고,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2018년 12월 비야디는 IGBT 4.0을 공개했으며 이를 통해 비야디 전기차 출력을 경쟁사 대비 15% 향상, 에너지 소모를 20% 이상 절감했다고 발표했다. 그 뿐 아니라 반도체 모듈의 수명도 10배 이상 향상시켰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과거 내연기관 차량에서는 성능 개선의 중요한 부분이 남자들의 기계 본능을 자극하는 우람하고 멋진 디자인을 가진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의 연구개발에 있었다면 전기차에서는 기껏해야 손톱만한 혹은 그보다도 작은 IGBT라는 반도체와 자체 밑에 깔린 배터리 효율이 성능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즉, 중국의 오랜 염원대로 전기차 시대로 접어드니 자동차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2018년도 12월에 비야디의 IGBT 4.0 발표 자료를 보면 비야디는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IGBT의 전체 공급체인을 보유한 자동차 기업이라고 당당하게 홍보하고 있다.
'원자재 연구개발 - 칩셋 설계 - 웨이퍼 제조 - 모듈설계 및 제조 - IGBT를 차량탑재'까지 모두 다 비야니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자제어장치에 관련된 부분일 뿐이며 배터리와 모터 자체 생산능력까지 따지면 위에 언급한대로 비야디가 전 세계에 유일하다.
최근 2021년 5월 업그레이드된 버전인 IGBT 6.0를 공개했으며, 비야디 측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100만대 이상의 차량에 자사의 IGBT를 탑재했으며 해당 차량들의 주행 거리는 총 1,000,000Km를 초과했다.
비야디도 당연히 처음부터 이렇게 전력반도체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을 리 없었다. 다만 전기차 시대에는 분명히 전력반도체의 경쟁력이 전체 자동차 경쟁력을 가늠하게 될 것이라는 왕촨푸의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그 분야에 투자하고 관련 기업들을 인수합병한 결과이다.
왕촨푸는 2008년에 닝보에 위치한 중웨이반도체(中纬半导体)를 인수했다. 왕촨푸는 예전에 이렇게 밝힌적이 있다.
내가 만일 배터리에서 자동차 산업으로 전향하지 않았다면 아마 반도체 산업으로 갔을 것이다
하여간, 대부분 잘 나가는 경영자들은 보면 사업 선구안이 상당하다.
참고로 중웨이 반도체는 2002년 중국 닝보시에서 30억 위안을 투자해서 설립한 반도체 회사였으며 이 회사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큰 기대주였다. 그러나 설립 후 2년 간의 긴 기다림 끝에 중웨이의 첫 반도체칩이 생산되기 시작했으나 처음에 구매했던 반도체 생산 설비들이 대만의 TSMC(台积电宁波中纬半导体有限公司)가 1987년 생산된 구식이었으므로 잦은 고장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매달 고작 1만 개의 칩셋 생산만 가능하였으며, 이런 생산물량으로 인해 매달 약 5,000만 위안의 적자를 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파산 직전 상황에서 비야디가 2억 위안에 중웨이 반도체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07년 중웨이 반도체를 인수하기 전에 비야디는 첫 전력반도체 관련 특허 신청을 낸 바 있다. 사실 이 전력반도체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긴 하지만 그 외 각종 전자 부품에도 많이 사용되므로 산업 영역의 CPU라고도 불린다. 십 수 년 전부터 이미 중국은 자체적인 전력반도체 생산 능력이 없었기에 관련 글로벌 선도 기업들에게 압박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당시 중국 기업이 전력반도체를 사려면 예를 들어 오직 컨버터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등의 전제 조건이 붙었으며 전기차에 사용가능한 고성능의 전력반도체는 아예 중국으로 수출이 금지되었다.
어찌보면 비야디는 화웨이보다 먼저 반도체 목졸림을 당했던 한참 선배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왕촨푸 눈에는 비록 중웨이 반도체의 품질경쟁력이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반도체 산업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중웨이 반도체를 인수합병 한 후에 기존의 주요 업무이던 웨이퍼 대리생산(OEM) 업무를 모두 없애버리고 전문적으로 전력반도체 생산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전력반도체 개발에 몰두한 지 2년 후인 2010년 비야디는 처음으로 자사에서 연구개발한 IGBT 1.0를 출시한다. 그 이후로 중국 시장에서 인피니언(Infineon), 세미크론(Semikron), 덴소, 미쓰비시 등 서방 및 일본 기업이 독점하고 있던 전력반도체 시장에 비야디의 이름을 비집고 올려놓는다. 2007년 완전히 망해가던 중웨이 반도체(비야디 인수합병 후 宁波比亚迪半导体 닝보비야디반도체로 사명변경)는 중국 반도체의 유니콘 기업으로 엄청난 몸값으로 성장해버렸다.
2019년 기준 중국 전력반도체 시장에서 비야디의 시장 점유율은 20% 정도로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약 20만개 IGBT 모듈세트를 공급했다. 1위를 차지한 독일의 인피니언의 시장점유율은 58%(기관마다 통계치가 상이, 하단 자료는 약 49%로 명기)로, 약 62.8만개 IGBT 모듈세트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차이가 많이 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이 아예 하나도 없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발전 속도다. 게다가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반도체 분야에서의 이 정도 엄청난 선전(善战)은 중국 선전(深圳)을 대표하는 제조기업인 비야디에 명성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사실 비야디 반도체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자사의 홍보 자료로는 결코 믿을 순 없고, IGBT의 시장 점유율이야 말로 객관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반도체 기술력이 生구라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2020년에 비야디는 2004년 전장개발을 위해서 설립했던 비야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比亚迪微电子)와 위에 언급한 닝보 비야디반도체(宁波比亚迪半导体, 과거의 중웨이 반도체), 광둥 비야디에너지세이브테크놀로지(广东比亚迪节能科技) 3개사를 합병했고 비야디 반도체(比亚迪半导体)를 비야디 모회사에서 분리해서 상장 예정이다.
이 준비 과정에서 샤오미, 레노버, SAIC(상하이자동차), BAIC(베이징자동차) 등 30여개 중국 기업들이 비야디 반도체에 8억 위안을 투자해 지분 7.84%를 확보했으며 한국의 SK(실제 투자주체는 SK차이나) 역시 비야디 반도체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1.5억(약 250억원) 위안 투자하여 지분 1.47% 확보하여 주요 주주로 올라선 바 있다.
비야디는 과거 도요타에서 분리되어 현재 승승장구 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자동차 1차 부품업체인 덴소(Denso)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비야디의 배터리, 반도체 등을 별도로 분리해서 비야디 외의 타사 고객들에게 관련 제품을 납품하는 독립적인 자동차 부품 회사로 키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반도체로서도 나름 중국 내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비야디는 최근 미국 반도체 제재로 빈사 상태에 놓인 화웨이에게도 협력 방안을 같이 찾아보자고 한 상황이다. 화웨이의 기린 반도체 칩셋(麒麟, 화웨이 휴대폰에 들어가는 칩셋) 설계 도면 및 제조에 필요한 사항 등을 알려주면 비야디가 제조를 해볼 수 있는지 연구 계획이 있다고 한다. 중국 내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화웨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지만 비야디는 중국 내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완전한 반도체 생산 및 공급 사슬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아예 넌센스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런 비야디의 전기차와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전방위적 광폭 행보를 보고있노라면 지금 한국의 삼성과 SK가 갖고 있는 몇 년의 반도체 격차 우위를 계속 지키기 위해선 필사적인 대규모 선행 투자와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삼성 이재용의 수감 생활은 어땠을런지..감방 선배(?)인 SK 최태원에게 자문을 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죄를 저질렀다면 응당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나 공교롭게 한국 반도체의 조타수를 잡은 두 수장이 모두 교도소에 갇혔거나 갇혀있는 상황은 한국을 제외한 중국, 대만, 미국, 일본 등 여러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국가들에게 큰 기회로 비쳐지는 이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 시점 기준으로 이재용 부회장 역시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서 자유의 공기를 마시는 중이기는 하다.
---
더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은 검색창에
'진격의 비야디'
찾아보시고 발간된 서적에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