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에서 드론으로 급선회
왕타오는 2006년 홍콩에서 선전으로 넘어와서 홍콩과기대에서 졸업 과제를 같이 진행했던 동기 2명과 함께 DJI를 창업한다. 선전에 자리 잡은 이유는 홍콩의 바로 인근으로서 수많은 크고 작은 제조 공장이 밀집되어 있었으므로 시제품을 싸고 빠르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도교수인 리저샹의 지원 자금, 두 번의 로봇 대회에서 받은 상금, 그리고 같은 대학 동기들에게서 빌린 돈과 로봇 대회에서 출품한 로봇을 판매한 돈인 200만 홍콩달러(약 3억 원)가 바로 창업 자금이 되었다. 리저샹 교수는 DJI의 고문 겸 투자가로서 여전히 DJI의 10%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제자인 왕타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 왕타오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워커홀릭 증상을 보였다. 초창기부터 연구실 혹은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모든 숙식을 하며 일주일에 최소 80시간씩 일했다. 이런 일 중독의 모습과 왕타오 특유의 완벽주의적 까칠함이 같이 창업한 동업자들과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본인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전심전력으로 모든 걸 다 갈아 넣고 일하기 바랐다. 그런 부분에서 갈등이 지속되었다.
설립 초창기 DJI는 무선 모형헬기 관련 FC 시스템 구축 및 관련 부품 회사였다. 무선 모형헬기 FC 시스템 개발 시부터 안정적인 운영에 필요한 표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의 노동 집약적 실험을 해야 했는데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업자들에게 연락을 해서 회의를 소집하며 괴롭혔고, 결과에 한 치의 오차라도 생기면 그 실험은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했지만 또 역설적으로 실험 결과는 당장 가져오길 희망했다.
이는 아주 작은 예시에 불과했으므로 2명의 동료는 모두 설립 2년도 안된 2008년에 다 떠나고, 다른 직원들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오죽하면 신규 직원 입사 시에 3년 되기 전에 퇴사할 경우 3만 위안(약 5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3만 위안을 내고 퇴사하는 직원도 생길 지경이었다. 또한 지분도 나눠주지 않고 미친 듯이 일만 시킨다는 불만도 가중되었다. 따라서 왕타오는 DJI의 초창기에 리저샹 교수 등의 격려와 재정적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 버티기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설립한 지 3년 만인 2009년에 비행 제어시스템인 XP 3.1을 출시하고, 이듬해인 2010년에 비행 제어시스템 ACE 1 출시를 한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DJI는 선전의 수많은 스타트업 중에 그다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고만고만한 기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사업 분야를 무선 모형헬기에서 드론으로 변경하면서 급격한 전환기를 맞게 된다.
DJI 설립 시기인 2006년만 하더라도 민간용 드론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 시장이었고 왕타오 역시 어린 시절에 날리던 무선 헬기 및 FC 시스템에만 꽂혀있었을 뿐 이를 드론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던 때였다. 아마 왕타오도 당시에는 드론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다. 이렇듯 왕타오의 꿈은 소박하게 그저 무선 모형헬기를 만드는 회사를 차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항공촬영 영상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찾던 미국의 한 사업가가 왕타오의 FC 시스템과 자동제어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고 그 미국 사업가는 왕타오에게 FC 시스템과 자동제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의 90%가 드론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무선 헬기보다는 드론이 훨씬 더 유망한 시장이라는 조언을 했다.
이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은 왕타오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드론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한 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헬기가 아닌 여러 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으로 과감하게 자신의 사업 분야를 전환한다. 왕타오의 이런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은 DJI 성공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였다.
그때까지 왕타오가 집중적으로 연구 개발하여 무선 모형헬기에 적용하려던 FC 시스템과 특히 공중정지(hovering, 호버링)의 기능은 바로 드론을 사용하려던 수많은 항공 촬영 수요자들이 찾고 있던 바로 그 기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업 분야를 무선 모형헬기에서 드론으로 전환하고 난 후 DJI는 2012년 드디어 첫 번째 일체형이자 완성품 드론인 '팬텀(Phantom)'을 출시하고 공전의 대히트를 친다. 2011년 420만 달러에 불과하던 매출이 2012년 2600만 달러, 2013년에 1.3억 달러까지 로켓 상승을 해버린다. 2년 만에 매출액 30배를 찍어버리는 기적을 달성한 것이다.
DJI가 2012년 완성형 드론을 내놓기 전까지 민간용 드론 시장은 마치 과거의 조립형 피씨 시절과 같이 수요자 개개인들이 각 부품을 여기저기서 사서 조립해서 자신만의 드론을 만드는 DIY(Do it yourself) 시장이었다. 그리고 일부 항공 촬영 등에 수요가 있는 개인들도 있었지만 주요 고객은 거의 기업과 대학 등의 법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DJI 역시 이런 DIY 수요에 따른 부품 및 FC 솔루션을 공급하다가 시장에서 분명히 드론의 완제품의 수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왕타오는 비즈니스 기회를 직감하고 본인과 직원 전부를 통째로 갈아 넣고 최대한 빠르고 완벽하게 DJI의 첫 번째 완제품 드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추가적인 부품 구매나 조립할 필요 없이 완벽하게 조립된 본체와 최적으로 설정 완료된 컨트롤러와 내장된 FC 시스템을 비롯한 소프트웨어를 갖춘 드론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위에 언급한 대로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기존에 DIY로 자체적으로 드론을 제작해서 날리던 수요자들은 물론 드론이 뭔지 잘 모르지만 호기심으로 끌려온 새로운 고객 수요까지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완제품인 '팬텀'이 드론을 날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아서 다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진입 확대로 시장의 파이 자체가 엄청나게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연달아 내놓은 제품들 또한 기존의 제품의 단점과 고객들의 피드백을 보완하면서도 고작 5~6개월 만에 신제품을 내놨으므로 계속해서 시장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2013년도 출시한 '팬텀 2'는 기존의 드론이 카메라를 매달고 하늘을 날아다리는 비행체의 역할만 했던 것에서 한 단계 진화하여 드론 자체에 카메라를 내장하여 출시해버린 것이다.
이로서 '팬텀 1'에서는 비록 완제품 드론이지만 거기에다가 추가로 카메라(주로 고프로의 액션캠)를 달아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했었지만 후속작인 '팬텀 2'는 카메라 장착마저도 DJI에서 자체적으로 전부 해결해 주었으므로 더욱 편리하게 항공 촬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선전의 한 수많은 전자부품 제조공장을 기반으로 한 엄청난 가성비까지 더해져서 DJI의 명성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드론처럼 하늘로 치솟는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내놓음으로 인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기업이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차원에서 왕타오는 드론 업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없던 스마트폰을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물론 독단적이고 완벽주의를 추구해서 주위 사람들을 무척이나 괴롭게 만드는 성격이 스티브 잡스와 유사해서 붙어진 측면도 없잖아 있다.
---
더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은 검색창에
'중국 테크 기업의 모든 것'
찾아보시고 발간된 서적에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986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