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육아가...

by 시월밤

결혼을 하고 6개월이 지나 아이를 가졌다.


그땐 모든 것들이 다 좋았던 것 같다.


지금 아이를 가지기 전 한 번의 유산이 있었지만 걱정하던 것과 다르게 아이가 다시 내게 와주었으니 말이다. 출산만 하면, 난 아이를 잘 키울 사람이라고 자신했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였고 친척 동생들과도 잘 놀아주었던 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집에 오던 날부터 내 육아에 대한 자신감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아이 낳아 직접 24시간 365일 곱하기 무한대로 키우는 것과는 정말 달랐다.


1-2시간마다 깨는 아이, 쉬도 수시로 갈아줘야 하고, 모유수유도 2시간마다 하는데 잠을 못 자니 사람이 거의 기절 직전이었다. 잠이 많았던 나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 입에선

<살려주세요.... 제발 누가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계속 나왔다.


그때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남편이 시댁으로 가서 몇 달만 있다 오자 했다. 너무 힘들 땐 좀 도움을 받자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100일까지 나는 시댁에 있었다. 어머님도 많이 힘드셨을 거다. 시댁에서 지낸 덕분에? 100일까지 힘들었던 그 시기를 조금이나마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니 또 지옥 시작이었다.

모유수유를 1년간 했기에, 애 6개월까지는 4-5시간 이상 잠을 자본적이 없다. 게다가 내 아이는 통잠이라는 것과는 먼 아이였다. 남들 100일쯤 통잠을 조금씩 잔다는 이야기를 듣던 때, 우리 아이는 밤잠도 2시간 3시간 간격으로 깼다.


안 그래도 힘든 육아에서 모유수유라도 놓아볼까 생각했지만, 한 번 먹이고 나니 속에서는 <진짜 모유라도 안 나오면 안 먹이겠는데... 이렇게 잘 먹는데 어떻게 안 먹여> 하며 나도 모유수유를 끊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유식까지 시작되고 시판으로 하려다 아이가 많이 안 먹어서 상해서 버리게 되고 너무 아까웠다.


내가 만들어보자 하며 만들기 시작했던 이유식.

아이가 너무 잘 먹어 시판은 안 먹고 내가 만든 것을 잘 먹었다. 게다가 이유식을 직접 만드니 식비 절약도 컸다. 입주를 앞두고 있었기에 아낄 수 있는 것 최대한 아껴보자 했던 이때였다.


그래서 6개월부터는 모유수유와 동시에 이유식도 만들었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침대에 눕히면 금방 깨기에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이유식 재료들을 손질했다.


생각해 보면 이때 힘들었던 것은 잠을 못 자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게 컸다. 잠을 못 자는 상황에서 모유수유와 이유식을 만들었으니 거의 사람이 폐인 직전이었다.


그리고 온전히 아이를 내가 보아야 한다는 갑갑함도 있었다.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이 참 원망스러웠던 때였다. 내 신세를 한탄했던 시기였다. 너무 힘들 때 시댁에 도와달라 말씀드릴까? 싶다가도 <아니다... 그냥 내가 봐야지 뭘 도와달라고 그래...> 하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는 저녁 8시까지 남편만 목 빠져라 기다렸다.


친구들에게 전화도 안 했다. 친구들은 일을 하고 있고 미혼이었기에 전화해서 뭐 하나라는 생각에 그냥 아기띠 하고 베란다 밖만 본 것 같다.


그나마 친한 동생이 같은 시기 아이를 낳아 공감대가 많았는데 지인 남편은 출퇴근이 자유로운 편이라 아이를 혼자 보는 시간보다 남편과 같이 보는 시간이 많았다.


내 남편은 새벽 6시에 나가 저녁 8시에 들어오기에 나는 그 시간 동안 오로지 아이를 봐야 했다. 그래서 그 당시엔 친한 동생에게 연락하면 늦게 퇴근하는 내 남편을 나도 모르게 비교하는 마음이 들어 그러고 싶지 않아 연락을 잘 안 했다.


정말 정말... 육아가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미치게 힘들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지만 이렇게 힘들 수가 있을까 싶었다.


속에선 <누가 나 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가슴이 답답해서 폭발할 것만 같았고 이 육아의 굴레에서 내가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다.


남들 아이는 통잠을 저리도 잘 자고 순한데 왜 우리 아이만 이리 예민하고 잘 깰까 싶어 잠을 못 자 너무 힘들어 운 적도 많다. 그리고 내 애만 이리 예민하고 고되고 힘든 것 같아 억울한 마음도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36개월이 넘어가면서 잠자는 것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그제야? 통잠다운 통잠을 잔 것 같다.


48개월을 향해가는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겪어야 할 것들이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 어머님께 좀 도와달라 부탁드릴까...?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던 날들도...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남편 퇴근 목 빠지게 기다리던 날들도...


육아하며 친정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떨어지던 날들도...


육아에 지쳐 예민해져 우리가 서로에게 날카롭게 말하던 날들도...


결국은 다 내가 겪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렇게 죽을 것 같이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들었던 육아가, 4년이 되어가니 이제는 조금은 살 것 같다.


아이가 어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 결혼해서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5살 아이 입에서 물방울 같은 목소리로 저런 말을 하는데 참... 말이 안 나왔다. 어디서 저런 말을 배운 거지? 싶었다.


육아는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다가도 또 어떤 날은 세상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아이가 예뻐 보이기도 한다. 반복의 반복이다.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네가 내게 온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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