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거시기2(34)

저녁을 짓다/손택수

by 최병석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

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

공깃밥이라는 말 좋지

무한을 식량으로

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밥

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

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

저녁의 이름으로


<눈물이 움직인다/2025/창비>


♡시를 들여다 보다가


소멸을 짓는다는 것이 하늘의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 올려보지만 그 일을 연습하는 게 하필 저녁을 짓는 일 이라니?

지으면 곧 사라질 저녁 한 끼를 위해 주구장창 그렇게 애를 쓰다가 맡겨놓은 세월 다 까먹었다고 눈을 감으신 어무이를 떠 올려본다.

따순 공깃밥을 일생을 걸고 지어대면서 자식의 시간을 또 그 자식의 자식을 위하여 내 시간을 섞어내며 지극함으로 소멸을 허물고 계셨던 내 어머니들...

어찌보면 사람 사는 건 눈을 뜨는 순간부터 그 소멸을 지극한 마음으로 연습하며 보내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얻는다.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고야의 거시기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