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세차
당해씨는 최근 닭장 같은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다. 평소의 당해씨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야 만 것이다. 그는 우선 그 답답한 곳엘 왜 들어가 사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멀쩡한 생활에 층간소음을 집어넣은 채 꿍시렁거려야 하는 상황자체가 너무 싫었던 그였다. 그래서 당해씨는 가능하면 아파트보다는 개별주택 혹은 단독주택을 선호했다. 아파트를 싫어하다 보니 그의 바운더리가 줄어들었다. 건설사들이 돈이 될만한 아파트들을 자꾸만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끌어들이다 보니 복잡한 상가들 주변엔 죄다 아파트다. 역설적으로 당해씨가 거주하는 곳은 상대적으로 덜 복잡한 곳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해씨의 퇴근 이후의 시간은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기 일쑤였다. 일이 바빠 퇴근시간이 늦어지기라도 한다면 주차할 곳을 찾아 온 동네를 이잡 듯 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사는 동네는 복잡하지도 않고 인구 수도 그리 많지도 않은데 퇴근 후에 주차하기는 왜 이렇게 힘이 든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동네는 허구한 날 쓰레기더미에서 지내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야 만다. 쓰레기 수거일이 아닌데도 대책 없이 길 옆에 너도나도 내놓는 바람에 악취가 진동하고 쥐들도 생난리다. 도대체 왜 이런 덜 복잡하다는 이점이 최악의 스트레스가 되어 최근접으로 다가오는 걸까?
당해씨가 곰곰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한적하고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공공부문에 대한 서비스혜택을 받아내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시 의원이나 국회의원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혜택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연히 행동으로 옮겨 버리게 된 거였다. 가슴이야 답답하지만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먹게 된 것.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니 일단 주차문제가 해결되었다. 퇴근 후에 온 동네를 몇 바퀴나 돌게 되는 일은 이제 안 해도 되었다. 게다가 쓰레기더미에서 벗어났다. 분리 수거일만 잘 지켜내면 되고 주변정리를 관리실 직원들이 다 해 주니 깔끔했다. 이런 쾌적한 아파트 생활을 무턱대고 싫어했던 당해씨가 후회하는 중이다. 괜한 고집으로 아내와 아이들의 기회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이제라도 아내와 아이들한테 잘해주리라 다짐도 해본다. 그가 다소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하고 주차까지 완료한 후에 차문을 막 닫으려는 찰나였다.
"아이고 사장님! 퇴근하고 오시나 봐요?"
"네? 아 넵 무슨 일이시죠?"
"혹시 <출장세차> 들어보셨나요?"
"저희가 이번에 새로 개업했는데요, 저녁에 퇴근하고 차를 맡겨 주시면 한 시간 내로 깨끗하게 세차해 드리거든요"
"특별히 개업기념으로 3회는 무료로 해드리고 4회째부터 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계약, 의향 없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당해씨가 움찔했다. 평소에 세차하려면 수도꼭지에 고무호스를 연결해 시원하게 거품을 닦아내던 습관이 있었는데 아파트에선 그게 안되어 곤란하던 차였다.
"근데 이건 외부세차만 가능한가요?"
"아하.. 둘 다 가능하고요 일단 오늘 외부세차 결과 보시고 전화 주시면 내부 세차일정 잡아서 연락드릴게요"
무료세차를 허락하고 집으로 올라가 있던 당해씨에게 한 시간이 지난 후에 완료문자가 왔다. 당해씨가 확인해 본즉 세차가 아주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서 내부세차의 욕심도 생겨났다.
"사장님 담주 월요일에 저녁 10시쯤 오실 수 있나요?"
"아, 넵 가능합니다. 그럼 그때 뵐게요"
당해씨는 뿌듯했다. 생전 자기 손으로 세차를 하다가 모처럼 남의 손으로 그것도 깔끔하게 해 주는 세차서비스는 처음이었다.
'아파트에 살면 이런 서비스도 받을 수 있구나!'
'역시 사람이 많이 몰려 사는 곳이 좋은 곳이구나!'
다시 한번 감탄을 하며 두 번째 무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차키를 들고 출장 세차대표를 만났다.
"대표님, 일전에 세차해 주신 것 보니 아주 프로이시던데요"
"아, 그럼요 저희는 최고의 서비스만 제공합니다. 열쇠 주시고 편안히 쉬고 계시다가 문자 받으시면 내려오세요"
당해씨가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TV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다. 스포츠중계에 빠져있던 당해씨가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혹시나 문자를 보냈는데 그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문자를 뒤집어봐도 와 있는 문자가 없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봤다. 차가 없다. 전화를 걸어본다. 연결이 안 된다. 예감이 안 좋다.
112에 전화를 걸었다. <차량전문 절도범소행>이란다.
성이 황가요 이름이 당해씨 <황당해>씨가 평소의 습관을 이어준다는 <무료 3회 서비스>의 유혹에 빨려 들어가 황당한 일로 차를 잃어버리고 황당해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