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시죠.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은 중국 태항산 천계산 노야정으로 오르는 언덕배기에 한글로 표시된 푯말이다. 가파른 계단을 약 20분 정도 오르면 목적지 2/3 능선에서 만날 수 있다.
태항산 풍경구 천계산 셔틀버스 정류장에 들어서면 멀리 까마득히 산 정상 능선이 보인다. 실낱같은 점선이 능선을 따라 지그재그로 펼쳐져 있다.
그 위에 개미 크기만 한 작은 물체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팀은 저곳에 오르지 않겠지.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만 가겠지. 라고, 은근히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살짝 있었다. 가기 전에 미리 위축되었다. 노야 정은 1,570m로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다는 천계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도교를 창시한 노자가 42년간 머물며 도를 닦았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그날은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섭씨 약 40도의 한낮 찜통 더위였다. 우리를 실은 셔틀버스는 산허리 천 길 낭떠러지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펼쳤다. 창 쪽에 앉은 아내는 무섭다며 안쪽으로 자리를 바꿨다. 창밖에 펼쳐지는 협곡의 웅장함에 감동한 일행들의 탄성으로 버스 안을 시끌벅적하다.
절벽 옆을 파내어 뚫은 불가사의한 터널(괘벽공로)을 통과하는 순간은 경건해진다. 주민 7명이 곡괭이와 정으로만 15년간 뚫은 7.5km 바위 터널이다. 이들의 피와 땀이 노야정길을 단축했다. 터널 입구에 세워진 이들의 동상을 향해 잠시 감사함을 표했다. 천계산 초입에서 2인용 케이블카로 1,000m 길이의 허공을 약 10분 정도 올랐다. 멀리서 보이던 실낱같은 점선은 가까이서 보니 절벽의 가파른 계단으로 나타났다.
노야정 오르기는 일행 28명 중 대부분 포기하고 10여 명만 올랐다. 888개의 돌계단이다. 나는 평시 등산으로 단련된 몸이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선뜻 나섰다. 포기할 줄 알았던, 아내도 호기롭게 따라나섰다. 약 60-80도 이상의 경사진 계단을 오른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아내는 중간쯤에서 현기증이 난다며 가다 쉬기를 반복한다.
뒤에서 따라오는 아내의 가쁜 숨소리와 “더는 못 가겠다”고 하는 엄살을 묵살했다. 그러나 나는 주변의 풍광과 멀리 펼쳐진 웅장한 협곡을 바라보며 가슴뛰는 등반을 즐겼다. 무거운 몸을 움직이던 그녀는 3분의 1 지점, 약 300계단 지점에 다다르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난감했다.
노야정 계단 길 등반은 심리적으로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계단 등반 중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한 계단의 끝자락에 하늘이 보인다. 거기가 끝이겠지 하는 희망을 품게 되지만, 올라가면 또 다른 언덕과 계단이 나타난다. 이런 반복이 십여 회 이어지며 더욱 지치게 만든다. '노력과 인내를 포기하지 말아야만 이룰 수 있다'는 노자의 가르침이 묻어있다.
아내는 “토할 것 같다”며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여기서 그녀를 두고 혼자 올라갈 수 없다. 남편의 결기가 발동했다. 뒤에서 두 손으로 그녀를 밀었다. 그녀의 허리춤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그동안 살을 좀 뺏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텐데. 밀고 당기며 40분 만에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구름과 안개가 휘감아 하늘 위에 떠 있는듯한 목적지가 나왔다.
하늘과 맞닿아 있다는 명성이 실감 난다. 이곳이야말로 신선들이 노는 천상의 낙원 같다. 웅장한 태항산 협곡, 아시아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계곡을 360도로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풍경이 아름다워 '백리화랑'으로 불린다. 복을 기원하고 도를 구한다는 천하제일의 명소 신성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의 많은 무속인들도 하늘의 영험한 기를 받고 복을 빌기 위해 정초에 많이 방문한다는 가이드(안내원)의 설명도 있었다. 도교의 시조인 노자를 ‘현천상제’로 신격화한 전각이 노야정 최정상에 있다. 달려가 노자 님께 인사드리고 우리 가족의 소소한 복을 비는 기회도 가졌다.
언덕배기에 표시된 ‘우리 인생사’는 계단 오르듯이 힘들다. 그러나 그 과정을 이겨내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는걸 실감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라 했다. 이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의미로' 작은 시작이 큰일을 이룰 수 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잊고 있던 삶의 여정에서 금쪽같은 교훈을 새삼 일깨우는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