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집은 자연과 맞닿으면서도 삶의 편리함을 잃지 않는 곳이다. 고요한 숲 속이나 강가 옆에 자리 잡고, 도시의 혜택도 손 닿는 거리에서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런 집에 대한 나의 바람은 아마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배산임수 지형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마을은 산이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앞으로는 맑은 개울이 흐르는 아늑한 곳이었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함께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손으로 고기를 잡아 올리고, 자그마한 폭포 아래서 물살을 가르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겨울이 오면 개울은 꽁꽁 얼어붙어 우리에게 얼음 놀이터를 내주었다. 스케이트를 타고 넘어지며 손발이 시려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어머니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셨다. 맑은 물에 손을 담그고 빨래방망이를 두드리시던 모습, 개울가에 울려 퍼지던 맑은 소리는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운다.
고향은 이제 많이 변했다. 개울에는 더 이상 맑은 물이 흐르지 않고, 주변은 콘크리트로 뒤덮였다. 하지만 내게 고향은 여전히 따뜻한 기억이다. 그 기억이 내 마음속에 '살고 싶은 집'이라는 바람의 씨앗을 심었다.
얼마 전, 구기동에 있는 한 지인집에 초대받았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그 집은 내가 그리워하던 이상적인 집에 가까웠다. 남쪽으로 열린 정원에는 감나무, 밤나무,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히 감나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감은 마치 계절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잊고 있던 고향의 정취를 떠올렸다.
그 집은 단순한 거처를 넘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텃밭에서는 싱싱한 채소를 키우고, 닭장에서는 신선한 달걀을 얻는 자급자족의 기쁨이 있었다. 정원 한쪽에 자리한 바비큐장은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집은 마치 삶의 쉼표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 집을 보며 상상 속에서 나만의 집을 더 꾸며 보았다.
감나무/인터넷 다운
정원의 한쪽에는 작은 퍼팅 그린을 만들어 가벼운 운동을 즐기고 싶다. 안쪽에는 군불 떼는 따뜻한 온돌방을 하나 더 두고 싶다. 겨울밤이 오면 온돌방에서 차를 마시며 창밖의 눈 풍경을 바라보고, 봄이 오면 마당에 나와 풀 냄새를 맡으며 한가로이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손수 빚은 막걸리를 친구들과 나누며 지나온 추억을 이야기하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이런 작은 요소들이 모여 내게 진정으로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완성할 것이다.
게다가 그 집은 자연과 조화로우면서도 편리함을 갖추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시장과 마트가 있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었고, 북한산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 산책하며 자연을 누릴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 하루의 무게를 덜어내고, 도시의 혜택을 곁들일 수 있는 이 집은 내가 꿈꾸는 삶의 터전에 다름 아니었다.
밤이 되면 정원의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싶다. 별빛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나누고, 계절이 주는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의 풍경이 달라진다. 그 안에서 나와 가족의 삶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집이다.
언젠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그 집은 단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집을 마음으로 짓고, 꿈을 손으로 빚을 것이다. 자연과 사람, 추억과 일상이 어우러지는 그 집에서, 나와 사랑하는 이들이 웃고 떠드는 삶을 꿈꾼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