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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 Young Oct 21. 2024

(04)낙원과 기억의 섬, 하와이의 두 얼굴

진주만의 뼈아픈 역사 현장

   하와이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지상낙원이다. 자연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수채화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만나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곳이다." 고 표현한다.내가 느낀 소감도 이렇다. “하와이는 천혜의 기후조건과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나라다.“ 와이키키 해변은 에메랄드빛 파도와 황금빛 해변,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반드시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신혼여행의 성지이자 은퇴자들이 힐링을 위해 찾는 최고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하와이는 단순히 유명한 관광지로만 알려진 게 아니다. 그 이면에는 슬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중요한 전략자산이 배치된 핵심 군사도시이기도 하다. 미국 국방 수호와 태평양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은 군사도시로 군인을 최고로 존경하고 감사해한다. 하와이의 모든 시내버스 앞 출입문 왼쪽에 손바닥 크기의 미국 성조기와 노란 리본 스티커가 나란히 부착되어 있다. 노란 리본 위에는 'Support our Troops'라고 새겨져 있다.
 
 처음에는 우리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 리본과 똑같아 너무 놀랐다. 확인해 보니, 이 표시는 국가를 위해 희생된 군인들을 추모하고 국가방위를 위해 수고하는 군인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표시다. 얼마 전 우리도 휴가 나온 군인에게 무료 음료를 제공한 미담이 뉴스가 된 적이 있었다. 하와이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들에게 음식값 등 각종 서비스 제공은 당연시된다. 공공시설은 무료이며 군인 우선이다.
 
  나는 지난 2023년 12월 와이키키 해변 가까운 숙소에 묵게 되었다. 평소와 달리 해 넘어갈 저녁 무렵이 되자 숙소 주변이 시끌벅적하며 분주했다. 궁금해서 나가보니, 수천 미터 해변도로는 군중들로 꽉 차 있었다. 오늘이 펄 하버 데이(Pearl Harbor Day)라고 한다, 1941년 12월 7일에 일어난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희생된 군인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국경일이다. 매년 국가행사를 개최한다. 다양한 기념식과 헌화, 문화행사 등 시가행진을 개최한다.
 
 미국은 “펄 하버데이 이날을 잊지 말자”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대적인 행사 개최하며 국민들이 단결하고 있다. 저녁 7시가 되자 군. 관. 민의 시가행진이 시작되었다. 형형색색의 복장과 장구를 갖춘 단체들의 행렬이 시작됐다. 육해공군, 소대별 군악대를 따라 무장 행진이 이어졌다, 수많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참가한 학생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살려 악대행진, 춤, 카드섹션 등을 선보였다, 취미그룹별 일부 단체들은 수십 년이 된 희귀 차량, 오토바이 등을 특별 개조하여 괴상한 굉음을 내며 행진에 참여했다. 각종 중소형, 대형 버스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조명으로 치장하여 참여했다. 각 단체의 시가 행렬이 지나가면 운집한 연변의 시민들은 같이 춤추며 환호했다.
 
 300여 단체가 2시간여 진행한 행진은 볼거리가 풍성했다. 누구나가 참여하는 자유로운 이러한 문화가 오랫동안 형성되었다. 비극적인 날을 잊지 않고 상기하며 애도하고 뭉치는 미국인들의 단결력이 오늘의 최강을 만들었다. 진주만 참사 현장이 궁금했다.
 
  다음날 나는 와이키키 해변 북쪽 진주만(Pearl Harbor)에 있는 USS 애리조나 (USS Arizona Memorial) 기념관을 찾았다. 시내버스로 30여 분 거리였다. 이곳은 태평양전쟁 당시 '진주만해전'에서 일본군의 공습으로 침몰한 ‘USS 애리조나’ 전함이 있다. 그날의 기억과 명예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기념관이다. 각종 전시물, 사진, 영상물 등이 그날을 상기하게 한다.
 
 오전 9시경 기념관 광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미국국가가 크게 연주되며 국기게양 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모두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동참했다. 과거 우리 70년대 국기게양, 하강식의 추억을 되살리며 경건해졌다. 남의 나라 국기 게양식이지만 나도 모르게 거수경례를 하며 울컥했다.
 
  기념관 입구 휴대품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입장표를 쌌다. 일본 공습 23분짜리 다큐 영화에 이어서 보트로 약 5분간 'USS 애리조나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침몰당한 애리조나 호의 배 위였다. 배가 침몰하고 일부 남아있는 애리조나호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밑에 가라앉은 애리조나 전함은 공습 당시의 참상을 떠올리게 했다. 슬프고 경건해진다. 아직도 배에서 조금씩 기름이 샌다고 한다.
 이 기름은 '검은 눈물'이라고 불리는 뼈아픈 역사를 상기시킨다. 배 밑에는 1,100명의 전사자가 수장되어 있는 해양 무덤이다. 지금까지 수천만 명의 참배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세계 최고 부자나라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같으면 인양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건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인양하지 않는 이유는, 그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보존하며 유적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는 해군, 해병대의 역사적인 기념비로서 존중되고 있다. 하지만, 철저히 실리주의적인 미국인들의 성숙한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들의 선진화된 의식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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