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가끔 생각난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다. 꿈속에라도 한 번쯤 나타나주시면 좋으련만,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으셨다. 혹시 하늘나라에서도 몸이 불편하신 건 아닐까, 괜스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끔 꿈속 저 멀리서 보이곤 한다. 아버지의 모습은 흐릿하지만, 그래도 반갑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를 만난 기쁨보다는 엄마가 그리워 더욱 마음이 울적해진다. 엄마를 생각하면 생전의 모습이 떠오르고, 후회와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우리 엄마는 평생 고생만 하셨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가족이 먼저였다. 본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셔도, 지친 내색 하나 없이 우리를 챙기셨다. 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셨고, 그 사랑은 때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런 엄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엄마/Al그림
하지만 엄마의 인생은 마지막에 가서 너무 가혹했다. 말년에 치매라는 병이 찾아왔다. 엄마는 그 병 앞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셨다. 예전의 엄마는 사라지고 낯선 모습만이 남아갈 때, 나는 가끔 당황하고 두려웠다. 병든 엄마를 마주하며 때로는 귀찮고 짜증스럽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엄마의 반복된 말과 행동에 지칠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불만이 드러나곤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눈빛은 마치 나에게 ‘왜 그러냐’고,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초점이 사라진 눈빛 속에는 엄마의 슬픔과 혼란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충분히 따뜻하게 엄마를 안아드리지 못했다.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결국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엄마가 떠난 후에야 깨달았다. 나의 무심함과 이기심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돌아가신 엄마를 보며 미안함과 후회만이 남았다. 살아생전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 더 많이 웃어주지 못한 것이 한없이 후회스럽다. 따뜻한 손 한 번 더 잡아드리지 못했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네지 못했다. ‘사랑해요, 엄마’라는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이제는 그 후회만이 남았다. 그 후회는 날마다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채근한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품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따뜻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품이 그리워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꿈속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조용히 엄마에게 말을 걸어본다. “엄마,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비록 엄마가 대답해주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말해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어머님의 은혜는 하늘 같다’고 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엄마가 주신 사랑은 한없이 넓고 깊었다. 엄마는 평생 내게 주기만 하셨다. 돌이켜보면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서, 내가 엄마에게 되돌려드린 것은 너무나 작았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그 사랑을 다 갚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그 후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엄마가 나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셨는지,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엄마가
나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고, 엄마는 곁에 없다.
가끔 나는 상상해 본다. 만약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까. 꼭 그 시절의 엄마로 돌아와 나를 바라보시며 환하게 웃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엄마에게 말할 것이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정말 사랑해요.” 그 말을 전하고 나면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시겠지.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진다.
엄마는 나에게 나타나지 않으시지만, 어쩌면 엄마는 이미 나에게 나타나고 계신지도 모른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나의 삶 속에서 엄마는 여전히 존재하고 계신다. 엄마의 사랑과 희생은 지금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엄마는 비록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나에게 주셨던 그 사랑은 언제나 내 곁에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나도 하늘나라에서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날이 온다면, 꼭 엄마에게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엄마, 정말 사랑해요. 이제는 제가 엄마를 지켜드릴게요.”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엄마를 기억하며, 엄마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