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력이 중요해

by 송곳

유튜브에서 '트래킹'을 검색했다.


얼마 전부터 걸을 때, 왼쪽 고관절이 시큰거려 걱정이 생겼다. 필라테스 시작했다가 병원비가 더 들었던 나로선, 걷는게 좋겠단 생각에, 어제밤 유튜브 삼매경에 빠졌다.


조회수로 금메달을 단 영상을 쭉 눌러봤다. 와. 대중교통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많다니. 보기만 해도, 트래킹 전문가가 된 거마냥 신난다. 걷다가 바다를 만나고 맛집을 만나게 된다는, 속초에 욕심이 난다. 아. 잠시만. 뇌 회로에 브레이크를 걸고 정신을 차렸다. '오바 하지 말자'


한강을 만나고 브런치 카페를 만나게 된다는, 남양주 부근을 둘러보고, 3시간 반 걸리는 남한산성 5코스를 구경했다.


마음이 또 변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귀찮은데. 집에서 좀 멀다. 조금전엔 속초에 마음을 빼앗겼었는데, 왜 성남이 멀디 멀어졌담.


다른 유혹에 빠졌다. 피로에 지친 몸은 숙면으로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 고관절은 정말 걸으면 좋아 지나? 잘 먹고 푹 자는게 약이야 하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이 딱 떠졌다. 일단 일어났다. 가볍게 가방을 쌌다. 그냥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코스는 매우 짧지만, 나름 전망도 좋고 전설이 있는 수도권 명소로 꼽히니까. 뭐.


둘레길을 돌다가 산을 타기 시작, 능선을 좀 걷다가 하산. 산 입구 작은 도서관에 앉아서 삶은 달걀과 오이, 아이스커피를 먹었다. 오전 햇살이 적당히 따사롭고, 바람에 풀잎이 바스락 하는 소리에 기분이 상쾌했다.


야외 벤치에서 책 읽는데, 바로 옆 할머니가 보시던 책을 '툭' 덮으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미망인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방금 책에서 봤는데 여성을 차별하는 말이라며 살짝 흥분하셨다. 나는 읽고 있던 책에서 "권력에 '눈 먼'" 할때 '눈 먼'에도 차별이 담겼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코 앞에 있는 집으로 향하기 시작. 걷는 내내 오길 잘 했다, 토닥토닥, 나를 칭찬했다. 가볍게 발을 떼서 좋았다. 거창한 명소와 풍경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좋았다.


일주일에 한번은 뒷산을 올라볼 생각이다. 가벼운 간식과 커피, 바람소리와 함께, 나를 아껴줄 생각이다. 작지만 꾸준하게, 한발한발 해봐야지. 그럼 내 몸과 마음에 근력이 생겨서, 더 성큼성큼 앞으로 갈테니까.


내일 모레면 대통령 선거다. 한겨울 온 마음을 다해 응원봉을 쥐며 소리를 지르고, 눈을 맞으며 거리에서 밤을 지샜는데... 어느새 대선이다. 이제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아니, 어떤 세상을 펼쳐볼까.


댓글조작 리박스쿨, 지상파 생중계 성폭력 토론회...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내란세력과 계속 싸워야 한다. 이름과 얼굴만 바꾼 그자들은 지난 100년 우리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었을 테니까 말이다.


한발 한발 뒷산을 올랐던 마음으로, '다만세' 를 위해, 한발씩 걸어갈 테다. 그냥 꾸준히, 나를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한줌이라도 보태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3 노동자 삼대를 만들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