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때 외출 준비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파운데이션을 톡톡 흡수시키자 환해지는 얼굴, 갑자기 색이 쨍해지는 속눈썹, 예쁜 분홍빛으로 변하는 입술을 지켜보면 나는 항상 고요한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렇다 보니 엄마의 화장을 지켜보는 건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관찰' 이라기보다는 그저 방안을 청소하고, 집 안을 돌아다니는 척 힐끔힐끔 쳐다보는 '염탐'에 가까웠지만 나는 내 얼굴에 당장이라도 엄마가 했던 것과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그 '화장'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라인을 그릴 때는 고개를 살짝 들고 손이 떨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리고, 립스틱을 바를 때는 살짝만 묻혀 입술을 문질 문질 쓸고, 아이 섀도우를 할 때는 화려한 색상은 조금, 무던한 색상을 짙게 묻혀서 펴 바르기. 뷰티 관련 영상이나 자료들을 일절 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어깨너머 염탐한 화장을 손을 허공에 띄워 틈틈이 연습해 보면서 방법을 완전히 터득하고서는 혹시 나는 메이크업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넘실거렸다.
하지만, 화장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아무리 배우고 배워도 내가 모르는 개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건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였다. 그때도 어김없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집 안을 돌아다니며 엄마가 화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날 엄마의 화장 단계는 어딘가 낯설었다. 평소대로라면 로션을 얼굴에 나누어 바르고, 파운데이션으로 피부를 톡톡 치는 것이 일반적인 첫 단계였으나 이 날 엄마는 로션을 먼저 바르지 않고 작은 칼을 하나 꺼냈다. 나는 조용히 염탐을 하다 엄마의 손에 작은 칼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고, '칼을 꺼냈는데 괜찮은 건가?'하고 불안한 생각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엄마가 칼을 피부에 대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 모를 수 없고, 괜한 행위가 아닌 어딘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엄마를 지켜보았다.
마침내 엄마는 칼을 든 손을 점점 자신의 피부에 가까이 가져다 대더니 이내 그 얇고 작은 칼을 가로로 눕힌 뒤 위에서 아래로 여러 번 반복해서 쓸고, 또 세로로 돌린 뒤 아래쪽에서 튀어나온 눈썹들을 조금씩 떼내었다. 정말 놀랍게도, 다치지도, 상처가 나지도, 피가 나지도 않았고 그저 지저분하고 짧은 눈썹 쪼가리들만 유유하게 화장대 위로 떨어졌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 사각사각 대는 소리가 좋았고, 피부에 대어서 피부를 쓸어도 다치지 않는 칼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칼을 덴 눈썹 모양이 전보다 훨씬 보기 좋게 변했던 게 제일 놀라웠었다. 어느 하나는 왼쪽 방향이고 또 어느 하나를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고, 제각각으로 따로 놀던 눈썹들이 고작 칼 한 번 댔다고 모조리 다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다는 것. 세게 누르는 것 같은데도 많이 깎이지 않아서 여러 번 연속해서 칼을 대야 한다는 것. 이제 보니 칼 모양도 내가 평소에 알던 칼과는 많이 달랐다. 일반 칼은 손잡이가 좁고, 칼날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이 칼은 손잡이 부분이 무지막지하게 길고 칼이 쪼그마했다. 일반 칼은 칼날도 아무 문양 없이 깨끗한데, 이 작은 칼의 칼날은 가로로 선이 좁은 간격으로 그어져 있었다. 나는 이때 한 가지 사실을 학습했다. 요렇게 손잡이 부분이 길고, 칼날에 무늬가 있는 칼은 문지른다고 해서 다치지 않고, 세게 눌러도 일반 칼보다는 잘 깎이지 않아서 여러 번 갖다 대야 한다는 것을.
그 뒤로 나는 그 작은 칼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옷을 갈아입다가 화장대 쪽을 슬쩍 바라봐서 그 작은 칼을 발견하면 왠지 모르게 뿌듯했고, 그 칼을 몰래 집어서 조심스럽게 만져보며 정말로 위험하지 않고,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고, 엄마의 외출 준비 과정에 그 이상한 칼을 들고 눈썹을 깎는 일이 포함되는 날에는 이상하게 뚫어져라 쳐다보게 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확실히 그 작은 칼의 존재를 인식하고, 의식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도 어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집 안에 있었다. 저녁이었고, 저녁밥도 다 먹고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나는 화장실 문을 천천히 열고 볼일을 보고, 흐르는 차디찬 물이 온수로 바뀔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며 멍을 때렸다. 그때 내 시야에 그 이상하고 작은 칼 하나가 들어왔다. 2시 방향에 칫솔과 치약을 꽂아놓은 타원 모양 통에 그 작은 칼이 섞여서 들어있었다. 나는 뭐라고 생각하기 전에 홀린 듯이 그 작은 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 눈썹에 그것을 천천히 가져다 대었고, 사각 소리가 나며 내 눈썹 가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엄마가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왠지 모르게 둔탁한 소리였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몇 십 초 동안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울 속 나의 오른쪽 눈썹이 텅 비어있었다.
'어? 뭐지? 한 번 쓴다고 이렇게 까지 눈썹이 떨어지진 않았는데.'
거기에서 멈췄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불어 일으킬 수 있었을 거다. 어린 나는 한쪽 눈썹이 완전히 깎였는데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며 반대쪽 눈썹에도 마저 작은 칼을 가져다 대었다. 역시나 남은 왼쪽 눈썹도 오른쪽 눈썹과 마찬가지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세면대 위로 떨어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양쪽 눈썹이 파운데이션으로 꼼꼼히 지운 것처럼 삭제되어 있었다. 마치 모나리자 같았다. 그때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서히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작은 충격 하나는 절망이 되고, 그 절망은 내 몸속에서 눈물이라는 형태로 기어 나왔다. 한쪽 눈에서 한 방울, 또 한쪽 눈에서 두 방울. 눈물방울들이 세면대 위로 떨어졌다.
나는 손을 떨며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달려갔다. 엄마! 갑자기 들린 내 목소리에 엄마가 깜짝 놀라며 왜?라고 대답했으나 곧이어 엄마의 얼굴도 충격으로 물들었다. 양쪽 눈썹이 사라진 나의 얼굴을 본 것이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 더 눈물이 나왔다. 그런데 엄마는 찰나의 충격을 뒤로하고, 펑펑 울던 나를 뒤로하고, 조금씩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방 안은 엄마의 분노를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함박웃음을 마주하고 희미해지는 나의 울음소리와 내 울음소리가 작아질수록 더더욱 선명해지는 엄마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엄마. 어떡해요? 나 눈썹이 사라졌어......."
"대체 어쩌다가 눈썹을 자른 거야?"
"몰라. 그냥 화장실에 있는 거로 잘랐는데. 엄마가 쓰던 거 있잖아."
내 말을 듣자 엄마는 잠시 갸우뚱하더니 이내 또다시 하하하! 하고 큰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나에게 말해주기를, 엄마 자신이 쓰던 건 '눈썹칼'이라는 눈썹을 깎기 위한 도구였고, 내가 쓴 건 아빠가 면도할 때나 쓰는 '면도칼'이었다고 한다. 나는 면도칼을 보고 눈썹칼로 착각해 무심코 눈썹에 가져다 댔다가 홀라당 눈썹을 벗겨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건의 전말을 들어도 서러움이 가시질 않았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울자, 내 언니도 따라 같이 펑펑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그런 우리 둘을 보며 웃겨 죽겠다는 듯 웃고, 핸드폰으로 우리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때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우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면서 덩달아 서럽게 우는 우리 언니의 사진이. 나와 엄마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그것도 다 추억이지."라고.
솔직히 이상했다. 당시에는 과감하게 나에게 직접적인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들이 이제서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넘길 수 있다는 것이. 이 민눈썹 사건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발표를 하다가 말을 절었던 것, 간식을 먹고 치우지 않아 엄마에게 대차게 혼났던 것,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거리에 꽈당하고 넘어졌던 것, 모르는 사람을 우리 엄마인 줄 알고 착각했던 것 등등 모두 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인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다 추억이지'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고, 시간을 딱 10초만이라도 좋으니까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나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감정들을 떠안고, 나중에 다시는 그러지 않으면 된다. 본연의 감정들을 굳이 이겨내려 애쓸 필요 없고, 막심한 후회도 할 필요 없다. 추억이 항상 이롭지만은 않으니까. 추억은 때때로 떫은맛도 나니까. 그 떫은맛, 낯선 맛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도, 짐도 되지 않게 하는 것. 훗날 떠올리며 단순한 에피소드로 소비할 수 있는 것. 그게 추억이다. 순간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추억이 되는 그런 순간이 오면 '그것도 다 추억이지'라는 말이 나오고, 그 말이 나오면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