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by 보화


가족과의 갈등은 누군가에게는 흔한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낯선 일이지만 나에게는 가족과의 다툼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가 새파랗게 어린 시절이었든, 아님 스스로 먹을 김치볶음밥을 요리할 정도로 대견해지게 된 시절이었든, 나와 나의 가족 사이에는 소소하고, 방대한 싸움이 많이 닥쳐왔었다. 하지만, 유독 이런 다툼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전국 모든 사람들이 겪은 사춘기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와 내가 동시에 사춘기가 왔던 탓에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유독 더 힘든 사춘기를 보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안방에 꼭 틀어박혀서 나오라는 소리도 억지로 외면한 체 버티고 있는다거나, 그 버팀을 끝으로 식탁 앞을 마주했을 때도 말수가 확 줄어들어든다거나, 갑자기 웃음기가 없어지고 낯선 존재들에게 호기심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들. 지금에야 그때 내가 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의 나는 그저 따뜻한 이불속이 좋았고, 혼자 있는 모든 시간들이 소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평화를 깨고 들어온 외침과 짜증 섞인 말이 너무 싫었다. 어김없이 내가 이불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면, 엄마는 이불속이 유일한 도피처인 마냥 구는 나에게 답답함을 느꼈고, 엄마의 반응은 “쟤 또 저런다” 하는 식으로 단순한 에피소드로 넘기거나, 세 번이 넘어가는 경고에도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나에게 호통을 치거나, 둘 중 하나를 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붕어빵을 최대한 따뜻하게 먹일 수 있게 코트 안에서 붕어빵이 식지 않게 막고, 내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빠보이면 시를 써서 위로해 주고, 항상 애정이 담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설정해 놓을 만큼 온화하고, 다정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그 온화함과 다정함을 표현하지 못할 때는 사춘기 시절의 나, 그리고 나의 언니와 관련된 일이 유일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식과 관련된 일에는 이성을 잃는다는 말. 난 이전까지만 해도 이 말 뜻에는 ‘자식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성을 잃는다.’, ‘자식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 같은 긍정적인 연유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딸이 동시에 사춘기가 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방법으로 저의 피를 말리게 하니 엄마도 나만큼 많이 예민해졌던 것 같다.

그날 우리는 평범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어느 때와 같이 별 것 아닌 것에도 웃음이 빵빵 터지고, 또 별 것 아닌 것에도 금방 짜증이 나는 변덕스러웠던 나를 제외하고 조금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면 일을 끝마치고 온,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극도의 피로감에 휩싸여있던 우리 엄마였을 거다. 언니는 학원에 가서 집에 없었고, 오직 나와 우리 엄마만 도란도란 식탁에 앉아 노을빛을 맞으며 달콤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밥을 먹는 도중에 배가 조금 부르기 시작할 때면 ‘쉬었다 먹을게!’라고 말하는 조금 안 좋은 버릇이 있었고, 그날에도 다름없이 나는,

“좀 쉬었다 먹을게!”

라고 말하고는 쾅 소리를 내며 안방으로 들어갔었다. 엄마는 나에게 “뭘 쉬었다 먹어, 그냥 지금 먹고 나중에 쉬어”라고 말했지만, 내가 해맑게 “응!”이라고 대답을 하곤 뱉은 말을 지킬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엄마의 쌓고, 쌓고, 쌓아온 감정들이 폭발했다. 나는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기가 팍 죽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밥을 얼른 먹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나마 덜 혼날 것 같아 책상으로 가서 책을 폈다. 나는 ‘엄마도 사춘기를 겪었을 텐데 나를 좀 이해해 줄 수 없는 건가?’, ‘먹다가 배부르면 좀 쉬었다 먹을 수도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서러움이 앞섰고, 마냥 짜증이 나서 괜히 책을 세게 피면서 인상만 찌푸리며 가슴속이 웅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나이대의 나는 내가 먼저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혼났다는 사실은 분했고, 억울했고, 온몸이 덜덜 떨리는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혼난 것 하나 때문에 엄숙해진 집안 분위기가 어깨에 무거운 돌이 올려진 것처럼 부담됐고,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했다.

그리고 차츰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옅어지게끔 무작정 책을 피고 공부를 시작한 행위가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고, 그 알람을 따라간 내 시선의 끝은 발신자 ‘I love mommy’라는 글자를 띤 한 카톡 메시지였다. [아까 짜증내서 미안해.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랬어.]라는 내용의.

초등학교 5학년의 나는 사실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랬다는 말을 그다지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내가 진작에 엄마 말을 잘 들었다면, 나 개인의 감정만 신경 쓰지 않고 피곤한 엄마의 감정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했다면, 내가 먼저 사과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꼭 이 일뿐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건이 발생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부질없는 열과 짜증을 내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와 내 몸을 붕 띄우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엄마가 했던 말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의 내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초등 5학년의 나는 미안함, 고마움, 쪽팔림 등의 아무리 견고한 가면이나 가식 따위로라도 위장할 수 없는 그저 날 것의, 그 자체의 진심이 담긴 감정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나는 미안하면 그 솔직한 감정을 떠안고 말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사과를 하면 지는 것이고, 마냥 쪽팔리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숨어버렸다. 쪽팔림이라는 거대한 장벽 뒤로. 그 뒤에 숨어서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난 잘못한 거 없어’라며 자기 합리화까지 해가면서. 그런 자기 합리화는 길어야 5분 동안에만 존재하는 나의 마음은 편하게 해 주었으나, 앞으로 평생 존재할 나에게는 양심을 찔리게 하는 독이 되었다. 어쩌면 나도 엄마처럼 상대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화가 나 그렇게 책상에 앉아 괜한 화풀이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엉뚱한 사람에게 짜증을 내버린 나, 비겁하게 보이는 감정 속에 숨어버린 나, 미안함을 진작에 깨닫지 못하고 뒤늦게 알아차리고 후회만 막심한 나에게.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그동안 곁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남아있던 어리숙한 시절의 내가 떠난 것 같아 아팠지만, 동시에 부끄러웠다.

사람은 한 번 크나큰 일을 겪고 나면, 비로소 성장하는 것 같다. 나는 먼저 사과를 건네는 게 쪽팔리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부끄럽고 스스로 쪽팔리기를 자처했던 사람은 나였다. 책상에 앉아 홀로 화를 식히고 있던 나의 모습이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이 날 있었던 일은 내가 여태껏 겪었던 다툼 중 가장 사소한 다툼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거대한 충격과 가르침이 되었다. 나는 이때의 일로 먼저 사과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배웠고,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아도, 긴 서론을 집어넣어도 되는 진심 어린 솔직한 말 한마디의 힘을 알았다. 난 그 여파로 지금까지도 다툼이 있으면 무작정 억울해하지 않고 내가 먼저 사과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랬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솔직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엄마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에.

나의 사춘기는 어쩌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초등학생 때의 나처럼 떼를 쓰고 마냥 짜증 내고, 속상해하는 시기는 지나고, 새로운 시련들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련들 속에서 과거의 나처럼 뻔뻔해하지 않고, 화해의 씨앗을 심어 성장을 이룰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먼저 사과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띄울 수 있다고. 그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성장의 발판이 되는 말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그런 믿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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